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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뱀이 아닙니다출애굽기 강해 7(출애굽기 7:10-13)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3.17 02:28
▲ 모세가 일으켰던 기적과 똑같은 일을 해냈던 애굽의 술사들. 모세가 보여준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을까. ⓒGetty Images

1.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축제가 둘 있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활절이 제일 중요한 날입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거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며 사순절을 보내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사셨던 것을 기념하면서 주현절을 지내고, 예수님이 태어나심을 기념하며 성탄절을 지냅니다.

그런데 성탄절과 부활절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성탄은 즐거운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 아기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날,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 기다립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까지 다 들떠서 난리입니다.

부활도 기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절을 앞두고서는 교회에서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는데, 오히려 영원히 태어나신 것인데, 성탄절보다 더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히려 사순절이라고 슬퍼하고 애통해하면서 지냅니다. 금식하고 놀이 오락을 삼갑니다. 왜 그럴까요? 봄이 오고 만물이 소생하는 이 기쁜 계절을 제일 침울하고 침통하게 지냅니다. 왜 그럴까요?

2.

부활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그 기적같은 사실이 중심이 아닙니다. 부활의 핵심은 ‘와 예수님 다시 사셨다!’가 아니라, ‘아! 우리 예수님이 죽으셨다!’입니다. ‘죽으셔서 나를 살리셨다. 나를 살리시려고 죽으셨다’ 이게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는데, 나를 우리를 온 세상을 구원하셨는데, 그냥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내가 너희를 구원한다!’ 하고 근엄하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그 가슴 아프고 눈물겨운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은 부활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죽음이 아닙니다. 죽어버리고 끝나는 그런 죽음이 아닙니다.

죽는다는 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죠.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백 년 넘게 장수하시고 큰 병치레도 없이 건강하게 사시고 그렇게 평생을 행복하게만 사시다가 주무시듯이 돌아가셔서 주위 사람들이 다 ‘호상이야’ 말하는 그런 장례식에서도, 그 누구도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안타깝고 마음 아픈 그런 죽음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지, 호상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죽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슬픔입니다. 피해야만 하는 일이고, 최대한 비켜 가야 하는 일이고, 어떻게 하면 죽음을 당하지 않을까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죽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그런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두렵고 슬프고 무서운 그런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죽음을 통해서 오는데, 그 죽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과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데, 똑같지 않고 전혀 다른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죽음, 세상을 살리는 죽음, 죽고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고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죽어버리는 죽음, 슬픈 죽음, 무서운 죽음이 아니라 살리는 죽음, 구원하는 죽음, 기쁜 죽음, 복된 죽음인 것입니다. 이 죽음은 죽음처럼 보이지만 죽음이 아닙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릅니다. 그냥 죽음하고는 전혀 다른 죽음입니다. 그게 부활입니다.

3.

모세와 아론이 드디어 파라오 앞에 섭니다. 그냥 간 게 아닙니다. 엄청난 무기를 들고 갔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고, 손을 옷 속에 넣으면 문둥병에 걸리고, 강물을 부으면 피로 변하는 엄청난 능력을 하나님께 받아서 갔습니다. 파라오가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릴 때 파라오 앞에서 탁! 기적을 행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엄청난 기적을 보고서, 파라오가 깜짝 놀라고 두려워서 이제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파라오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몰랐지’ 생각하고는, 지팡이를 꺼내 들고서는 파라오 앞에 던집니다. 지팡이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뱀으로 변해서 꿈틀거립니다.

모세가 속으로 어땠을까요? ‘자, 이제 파라오가 깜짝 놀라 가지고 벌벌떨겠지?’ 하고는 파라오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 이상합니다. 파라오가 놀라기는커녕 씩 웃어요. 비웃는 것 같아요. 왜 그러나? 했더니, 파라오 옆에 서 있던 마술사들이 줄줄이 나와서는 자기들도 들고 있는 지팡이를 던지는데, 그 지팡이들이 던지는 족족 뱀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능력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닌 것입니다. 이집트 마술사 정도만 되면 아무나 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 한테 완전 속았나요? 엄청난 능력 주신 줄 알았더니,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일, 다 똑같은 능력이었습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복들이 있고 즐거움도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좋다고 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 복을 하나님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까, 그 복을 하나님만 주시는 게 아니네요? 가만 보니까, 절에 가는 사람도 복을 받고, 알라신을 믿어도 복을 받네요. 심지어는 하나님은커녕, 부처도 안 믿고 알라도 안 믿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도 참 잘 사네요. 이게 웬일이닙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면 하나님께 심판받고 혼나서, 삶이 힘들어지고 고난당하고 벌받고 그러는 줄 알았더니, 아니에요. 하나님 잘 믿어도 잘 못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두룩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4.

‘목사님 계속 읽어보니까, 그래도 아론의 지팡이가 마술사 지팡이를 잡아먹었대요. 그래도 하나님이 조금 더 센가봐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 눈에, 우리 삶에,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똑같은 것이, 똑같이 생겨먹은 것이, 세상에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헛갈린다는 것입니다. 헛갈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헛갈려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포기하고 버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거 말고 이게 더 좋네, 이게 더 낫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 거랑 똑같아’ 한다는 것입니다.

똑같나요? 세상이 주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똑같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과 세상이 주는 것은 똑같아 보이지만 다릅니다. 아론의 지팡이와 마술사들의 지팡이는 다릅니다. 똑같이 뱀으로 변한 것 같지만, 그 뱀과 이 뱀이 다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증거이고, 다른 하나는 눈속임의 술수입니다.

똑같은 죽음으로 보이지만, 아닙니다. 다릅니다. 전혀 다릅니다. 힘들고 슬프고 무섭고 비참하고 비통한 그런 죽음과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는 그 죽음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깨달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마술도 좀 배우고, 술법을 좀 배워서, 이렇게 저렇게 술수를 부리면, 지팡이가 뱀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굳이 하나님 안 찾아도 됩니다. 진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안 믿어도, 하나님 안 찾아도, 내가 열심히 살고, 내가 성실히 살고, 인간관계도 잘 하고, 착하고 선하게 살고, 인간승리, 인생역전 그렇게 노력하면, 복 받은 것처럼 구원받은 것처럼 충분히 똑같이 살 수 있다. 그런 사람 많다!’ 그렇습니까? 정말입니까?

전혀 다릅니다. 우리 눈이 우리 부족한 인생이, ‘이것도 뱀이고 저것도 뱀이네, 똑같네!’ 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하나님이 의도하셔서,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일과,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살다보니 우연찮게 일어나는 일은 겉보기에 똑같아 보여도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슬픔이고 아픔이고 피해야만 하는 괴로움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감사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사순절에 바로 그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냥 ‘아이고, 아이고 우리 예수님,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죽음은 세상 죽음과 다르다는 것을 깊이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5.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이, 그저 죽음을 멀리하고 회피하고 어떻게 하면 안 죽고 살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 그런 세상적인 고민으로만 내 삶을 채워가서는 안 됩니다. 죽음이라고 다 똑같은 죽음이 아닌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죽음이니까 무턱대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음이 나를 살리는 죽음이라면 기꺼이 그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 죽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의미를 느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한 행복이 나에게 찾아오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기도한 것 잘 이루어지는가? 아픈 것 다 나았는가? 우리 아들 우리 딸 잘 먹고 잘 사는가? 그런 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를 봐야 합니다. 내 멋대로 둔갑시킨 뱀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것인가? 그것을 봐야 합니다. 우리 아들 우리 딸 좋은 일 생겼는데, 그 일이 하나님 주신 일인가? 하나님의 복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그걸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행복한 일이, 형통한 일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복 받았네’ 하는 그 일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인가? 하나님의 은총인가? 그걸 기도해야 합니다.

뱀으로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 그런 외적인 모습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제멋대로 둔갑한 뱀은, 하나님이 변화시킨 뱀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6.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이들의 삶과 똑같습니다. 우리에게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그러지 않습니다. 보기에 똑같습니다. 똑같이 성공하고, 똑같이 실패합니다. 똑같이 잘살고, 똑같이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은, 똑같아 보이지만, 구원으로 인도하고 마침내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겉모습에 속지 맙시다.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것, 그것을 소망하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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