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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받지 않으면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는가: 디다케 (6)채수일의 ‘기고만장’(基古萬張)(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 6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4.03.18 03:18

이 원고와 영상은 ‘사이너머’ 연구소에 진행하고 있는 채수일 교수의 ‘기고만장: 기독교 고전 만장 읽기’입니다. 기독교 고전을 독자들과 함께 읽고 우리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영상과 원고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채수일 교수님과 사이너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채수일의 ‘기고만장’, 오늘은 ‘디다케’를 중심으로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교회에서 성만찬 예전이 있을 때, 목사님이 세례를 받은 교인들만 성만찬에 참여하라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혹은 기독교 신자로서 가톨릭교회 미사에 참석했다가 성만찬 참여를 거부당하신 적은 없나요?

‘성만찬’은 복음서에 나오는 전승에 의하면 사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저녁식사입니다. 후에 이 만찬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기억과 죄 사함에 대한 감사’라는 신학적 의미가 덧붙여졌지만(마 26,26-28; 막 14,22-24; 눅 22,17-20), 예수님과의 사귐을 의미하는 식탁공동체에서 누군가가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세례는 성만찬 참여와 배제의 기준이 되고 있지요.

그렇다면 어디에 근거해서 세례를 받지 않은 신도의 성만찬 참여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그런 전통이 생겨난 것일까요?

성만찬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전승은 고린도전서 11장 23절부터 34절의 말씀인데요, 사도 바울도 전해 받은 것이라고 하니, 복음서들보다 더 오래 전에 제정된 성만찬 전통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 11,27-29)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이 바울의 이 말이 특정한 사람들을 성만찬에서 배제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세례가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라는 말은 고린도교회의 특징이었던 부자 기독교인과 가난한 기독교인들 사이의 차별을 암시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교회 안에서의 성만찬이 부자 교인들의 부를 과시하고, 가난한 교인들이 배제당하는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당하지 않게’(고전 11,27) 주님의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곧 교회 안에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기준은 주후 100년 경 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문헌 ‘디다케’에서 ‘세례’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디다케’는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라고.’(1)

세례 받지 않은 신도는 성만찬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회식(애찬)에서조차 음식과 음료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 시리아 지역 초대교회의 전통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마태복음서의 말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 7,6)는 말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공관복음서 가운데 오직 마태복음서에서만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나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도들을 개와 돼지와 동일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방인에 대한 태도나 이웃 사랑의 가르침에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오늘까지 ‘디다케’의 가르침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세례 받은 기독교신자에게 성만찬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가톨릭교회는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년-1563년)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 교의를 확정했는데, 마틴 루터는 ‘실체공존’(Consubstantiatio)을, 다른 개혁자들은 ‘상징’을 주장한 것이지요. 이런 신학적 차이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기독교신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학의 차이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만찬이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사로 기억하고, 그리스도와의 사귐에 참여하고, 세상 끝까지 주님의 고난 받으심과 죽으심을 증언할 결의를 새롭게 하는 예식이라면,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기준으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성만찬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세례 교인들이, 사람을 부와 가난, 피부색과 인종, 신념과 이념에 따라 차별하고 증오하는 기독교인들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성만찬 정신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요?

미주

(1)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디다케⟫, 정양모 역주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3), 69.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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