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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게 하여라출애굽기 강해 8(출애굽기 8:1)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4.03.24 02:05
▲ Caspar Luyken, 「Spying out Canaan」 (1708) ⓒRijksmuseum

1.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소명을 들고 이집트 파라오 앞에 섭니다. 파라오는 우리의 예상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도 합니다. 성경에는 쓰여있지 않습니다만, 손을 품 안에 넣었다 빼기도 했을 것입니다. 나일강 물을 길어다가 땅에 쏟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유명한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덮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열 가지 재앙 중 두 번째 재앙입니다. ‘순서대로 첫 번째 재앙부터 이야기해야지 왜 뛰어넘어버립니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재앙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개구리가 무슨 의미이고, 파리떼는 무슨 의미이고, 메뚜기는 무슨 뜻인지, 열 가지 재앙을 하나하나 살펴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런 분석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한두 번 만에 깨닫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열 번이나 재앙을 당하도록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계속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데, 그렇게 반복하면서도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반복됩니다. 모든 재앙에 앞서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읽기 쉽게 한 절로 딱 떨어지는 말씀이 오늘 8장 1절 말씀이어서 그 말씀을 읽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의미가 없으니 뛰어넘고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성경은 절대로 무의미한 반복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두 번 나오면 ‘어? 아까 읽은 똑같은 말씀이네?’ 하고서 쓱 지나쳐 버리지 말고, 오히려 그 이유를 한 번 더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이집트에 임한 재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의미를 고민하지 않으면, 기껏해야 재앙의 순서나 외우고 맙니다. 성경퀴즈대회가 있으면 써먹을 수는 있겠죠. ‘출애굽 때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 중에서 네 번째 재앙은 뭘까요?’ ‘저요! 파리떼입니다.’ 선물받고 기분은 좋겠죠.

열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이 무엇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깨달음을 요구하시는가? 우리는 그 것에 집중해 봐야 합니다.

2.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파라오 앞에 서게 했을 때, 뭐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까? 파라오가 열 번이나 거절한 하나님의 요구는 뭡니까?” 성경을 들춰보지 말고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대로 대답해 봅시다. 아마도 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고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해 줘라’ 아닙니까?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은 이스라엘의 해방이겠죠.”

맞습니까? 모세가 파라오 앞에 서서 열 가지 재앙이 임하는 동안 열 번이나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내 백성을 해방해라’였습니까? 그렇습니까? 호렙산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만나셨을 때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실제로 파라오 앞에서 요구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에게로 가서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하고, 그에게 이르기를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 (하여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내 백성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해방, 탈출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로 사흘길을 나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아예 해방시켜 달라고 하면 안 들어줄까 봐, 하나님께서 꼼수를 부려서는 ‘요만큼만 가서 예배만 하고 올게’ 했다가, 막상 광야로 나가게 되면 얼른 도망치려고 그랬을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하나님의 목적이 목표가 ‘해방, 탈출’이 아니라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사실에 집중하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시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시대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했고, 사사들의 시대에는 ‘가나안 이방 민족을 진멸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왕국시대에는 ‘종교국가를 융성하게 발전시키는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며 사는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는 주일날 한자리에 모여서 형식을 갖춰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봉헌하는, 그런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라고 하는 종교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 모습을 위해 때로는 율법을 지켜야 했고, 때로는 이방 민족을 배척해야 했고, 때로는 종교의 외적 모습을 발전시키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예배를 드리라니, 참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배가 너희들 일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해 봐’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무턱대로 ‘정의롭게 살아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정의롭지 못한 때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무작정 ‘서로 사랑해라’ 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을 보여주시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십니다. 사랑받는 기쁨과 사랑하는 기쁨을 알려주십니다. ‘알아서 평화를 이뤄 봐’ 하지 않으십니다. 평화를 사모하게 하시고, 평화가 주는 행복을 누리게 하시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4.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노력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저는 아직 예배할 상황이 아니에요’ 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계속 예배의 자리에서 도망칩니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다고 하나님께 투정 부립니다. 오히려 ‘하나님 뭐 하고 계시냐’고, ‘나에게 해준 게 뭐냐’고 투덜댑니다. 열 가지 재앙이 마치 우리에게 임한 재앙인 것처럼 원망하고 투덜댑니다.

하나님은 과연 뭐 하고 계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강제노역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피눈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 어디 계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야 힘들건 말건 하나님은 저기 하늘 위에서 보좌에 앉아 누릴 것 다 누리면서 그렇게 계셨나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파라오를 만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요구하고 계셨습니다. ‘내 백성이 나를 예배할 수 있도록 해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 상황과 환경에 맞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 상황과 환경을 바꾸고 계셨던 겁니다. 세상이, 파라오가 백성들을 휘어잡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온 삶을 옭아매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파라오를 만나서 ‘너 그러지 마! 내 백성이 예배할 수 있도록 해!’ 하시는 겁니다. 한 번, 두 번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열 번이나 하십니다.

경제 사정이 우리를 예배하지 못하게 만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제 사정을 돌봐 주십니다. 자녀 문제가 우리를 예배하지 못하게 만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직업이, 회사가, 먹고사는 일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연약해져 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십니다. 시험에 빠져 흔들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마귀가 사탄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셔서 우리 영혼을 든든히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내 오른편에서 나를 지키신다’고, 그래서 ‘낮의 해도 밤의 달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고, 시편의 시인이 그렇게 고백한 것처럼(시121),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나의 바위, 나의 방패, 나의 산성이 되신다’고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시18)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아닌데요? 그러지 않던데요? 경제 사정이 막 좋아지지 않던데요? 로또라도 당첨이 되고, 막 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던데요? 문제 해결 해 달라고 기도해도 안 되던데요. 자녀들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문제 다 그대로 해결 안 되고 남아있던데요? 마음을 괴롭게 하던 일들도 그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내 마음을 괴롭히던데요? 아무리 기도해도 나타나 주시지도 않고, 막막하기만 하고 답답하기만 하던데요?’

과연 그렇습니까?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나를 예배해라’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주셨음을 믿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5:7).” 이 찬양을 우리 삶의 주제가로 삼아야 합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5.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열 가지 재앙은 우리를 향한 재앙이 아닙니다. 이집트를 향한 재앙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재앙을 내리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들을 멸하고 심판하십니다. 마침내 우리가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에게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내 백성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해라! 내 백성의 예배를 막지 마라!’ 세상이 거부하고 맞서도 하나님은 거듭, 열 번, 백 번, 끊임없이 우리가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깊은 기도로 무릎 꿇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그 고난 뒤에 있는 크신 사랑을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예배로 인도하고 계심을 알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게 마침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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