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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잃어버린 세상 우리는가난한 자의 하느님, 눌린 자의 하느님
박철 | 승인 2005.10.10 00:00

시골사람들을 보고 흔히 '촌스럽다' '촌놈' '촌뜨기'라고 말한다. 이는 멸시, 무시, 못 배움, 세련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연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기에 그런 것일까? 오늘의 농촌은 어쩔 수없이 남겨진 사람의 터전이 되었다. 농민 스스로가 농촌에서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왠지 기가 죽어 있다.

   
자녀들이 대를 이어 농사짓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무조건 농촌을 떠난다. 그나마 어디 취직할 때가 마땅치 않아 마지못해 남아 있는 젊은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장가를 못 간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개중에는 농촌에 뜻을 두고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신체가 멀쩡하고 정신도 바로 박혔는데 서른 살을 훌쩍 넘기고도 장가를 가지 못해 끌탕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농촌을 희망이 없는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농촌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남아 있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농촌교회 목회자도 실력 없는 목회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도시로 나가려고 하고 있다. 80년 대 이후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시골마을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수백 명 이상 모이던 학교는 폐교되거나 고작 수십 명 정도 모이는 학교가 되고 말았다.

농촌은 더 이상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농촌은 버림받은 땅이 되었고 농민은 버림받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이제 "농자천하지대똥"이 되었다. 농민의 괄시와 서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손발에 흙을 묻히고 다니고 똥지게를 지고 다니며 그저 하라는 대로 했던 결과이다. 교인들도 결국 도시교회로 옮겨가는 결과를 가져왔고 농촌교회는 자립마저도 어려워가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도시의 하느님이고, 부자들의 하느님일까? 도시의 크고 웅장한 교회야말로 하느님의 교회이고, 촌구석의 허름한 교회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고 촌뜨기에는 관심이 없으신 하느님이실까? 하느님은 헌금을 많이 하고 배운 것이 많고 지위가 높아 사회에서 행세깨나 하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지 촌에서 평생 땅만 파는 자들을 들어 사용치 않으시는가? 정말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하느님은 가난한 자와 눌린 자의 하느님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백성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하나가 되는 하느님이시다. 출애굽기 1:8-14절까지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자꾸 불어나자 인구 억제정책 일환으로 강제 노역을 시켜 비돔성과 라므세스를 세운다. 강제 노역이 심하면 심할수록 이스라엘백성의 인구가 점점 불어난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왕을 만나 이스라엘의 해방을 요구할 때 위안보다는 새로운 부담이 주어진 것도 4장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통당하는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하느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리신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을 이집트의 억압자로부터 빼내어 해방을 선포하고 바로의 강퍅함에 갖은 이적을 통하여 구원하신다. 이러한 성경 속에서 과거에 역사하신 하느님은 오늘도 그대로 역사하신다.

오늘의 피폐한 농촌의 신음소리를 하느님께서 들으신다. 저들이 가난한 것은 놀면서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바쁜 농사철에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삼복더위의 땡볕에서 수고하고 일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농민의 현실을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구약성서 속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은 참으로 가난한 자요, 고통 받는 자의 편을 드시며 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일제시대에는 출애굽기를 읽지 못하도록 목사가 설교의 본문으로 삼지 못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왜 하느님은 가난하고 눌린 자의 하느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자라고 활동했던 무대이다. 갈릴리는 서울 같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었다. 예루살렘 같은 화려한 곳이 아니라 빈궁한 농촌이요 어촌 지역이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에서 먼 곳이며, 비옥한 곡창지대이나 대부분이 소작인으로 소작료와 세금 그리고 로마뿐만 아니라 헤롯의 착취로 시달리는 곳이었다.

   
그 지경에 있는 나자렛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를 소개 받을 때 "나자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당신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 구약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묵인 자에게 해방을,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외치며 주의 희년을 선포하셨다. 이것은 아무도 예기치 않은 사건이었다.

레위기 25장을 읽어보면 희년이 되면 땅은 묵혀 둘 것을 빚은 탕감되어야 할 것을 노예는 해방되어야 할 것을, 그리고 자본은 재분배되어야 함을 적고 있다. 이 말씀은 많이 가진 바와 남들 위에 군림하는 이들은 위한 것이라기보다 진실로 가난한 이들은 위한 것이었다.

경자유전의 자연법칙에 따라 땅은 농사짓는 사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을 농사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대지주가 되었다. 레위기 25:27절에 보면 땅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팔아넘길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남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누구는 그들의 희생 위에 자신의 창고를 늘린다면 그것은 죄이다.

농사꾼이 하는 일과 국회의원이 하는 일과 어느 일이 더 중요한가? 농사꾼이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국회의원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사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농사꾼이 없으면 국회의원, 대통령, 판검사, 목사, 교수 모든 사람이 자기 일을 할 수 없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농사가 세상의 큰 뿌리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성현들의 가르침은 백번 옳은 말씀이다.

그런데 농사꾼이 가장 존경받고 대우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업신여김을 받고 천대를 당하면 이것은 하늘의 뜻을 곧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이렇게 잘못된 세상,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오셨다. 어부, 농사꾼, 품팔이 일꾼, 세리, 창녀, 병자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하느님은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민의 고통을 보시고, 농민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없는 자를 못살게 굴고 빼앗아가며 이들을 촌스럽다고 무시하는 자들을 꾸짖으시며 야단치시고 화를 선언하신다. 하느님은 이들을 끝없이 위로하시며, 저희가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신다.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자들이 사는 갈릴리 땅에서 그들과 함께 고난당하시며 사역하셨던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선하신 뜻, 즉 모두가 사랑하고 용서하며 도와주어 함께 잘 사는 나라, 즉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도 본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친의 일을 도우며 성장하셨다. 그는 주로 해안을 낀 농촌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농사꾼들의 삶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계셨다. 그의 비유 가운데 많은 부분이 농촌생활에서 터득한 진리였다. 가라지의 비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알곡의 비유, 옥토의 비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등등. 농민들이 언어, 농민들의 생활방식에 대해 깊은 이해와 동정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농민 예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 바람은 언 땅을 가르고
간밤 잠 못 이룬 사람들의 새벽
헛된 한해가 경운기에 청승맞게 실려간다
아예 쌀금은 묻지 말아라
찬 공복처럼 농협 마당에 부러져서
먼 길 어둠 따라 다른 슬픔 만나서
이웃들 여럿이 어울리는 공판장
어디서도 보이지 않으나 바로 보여
들리지 않으면서 들리는 세상 침묵들
그렇구나 우리들은 말하지 않았구나
당하기만 했구나
지나가는 바람에도 몸을 떠는 우리들은 나락
실농 곁에 허탈만이 가득 흐르는데
정말 우리들은 어디로 가면 좋으냐
노오란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수북이 쌓인 동네 공판장
동네 아저씨들 삼삼오오 무언가 심상치 않은 표정
그래도 하늘은 무심하게 맑기만 하다

주여!
흙바람 세월 속에 못 박힌 가슴 부여잡고
헐떡이며 헐떡이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참 세상 그날이 언제쯤인가요?
사람과 꽃과 새들이 입을 맞추고
뼈 빠지게 '땅이 하늘이다 밥이다'는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피어날 그날
바로 그 기쁨이 그 순간이
우리 시대엔 영영 없는 것인가요?

상강(霜降)지나 서린 내린 들판
가뭇한 하늘
죽어가는 생명들, 못된 인심
생명에 관심 없는 종교
제 얼굴에 똥칠하고도 창피한 줄 모르는 구린내 나는 정치판
아아, 어느 것 하나 희망을 주지 못하는 세상
그저 닫혀진 가슴으로 남아
시절 한탄만 할 것인가
알 수 없다
노래를 잃어버린 세상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
우리는 다만
유일하신 그분에게만 빌 뿐이다
목메어 바랄 뿐이다
정말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할 것인지

서해 깊은 바다로 지금 막 바다로 지려던 노을이
단 한 번 숨결을 쏘아
지상을 밝게 물들이는 순간
아아,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그분의 노래를 듣는다
-땅이 하늘이다 땅이 밥이다-
-땅이 하늘이다 땅이 밥이다-

-박철. <노래를 잃어버린 세상 우리는>-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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