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부터 10장까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여러 가지 표적을 나타내고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과 대면하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정체성은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직접 찾아와서 묻기도 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24절) 예수님은 “나와 하느님은 하나이다.”(30절)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느님의 일임을 강조합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고 믿는 사람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떼로 비유하면서 가르칩니다. 그것은 남한에서 목자와 양의 비유를 목사와 교인으로 비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양떼에게 목자가 필요한 것은 구원으로 생명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음으로써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9-10절). 그러나 도둑이나 강도는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하여 양들에게 다가옵니다. 양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 참된 목자는 양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지만, 삯군 목자는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버리지만, 아무도 참된 목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참된 목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돌을 들어 치려고 합니다. 사람이면서 하느님의 일(참된 일)을 한다고 신성모독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워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단호히 대답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37-36절)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존재 자체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라는 존재 자체를 믿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존재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하나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하느님의 일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보게 함)과 생명을 향한 사랑(9-10, 28절)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요롬게 하거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나 이생의 끝인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당장 살았으나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사람들,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희망을 갖게 하고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는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예수님은 선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은 끊임없이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 앞에서 당당하게 그들에게 대항하고 그들의 음모를 돌파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향한 사랑을 품는 일이고, 삶 속에서 살림을 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혀서 희생당한 이들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희생당한 두 분(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선생)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고 21명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빕니다. 유괴나 납치와 같이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자기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임에 틀림없습니다. 폭력과 살상의 악순환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예수님과 하느님의 일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이 미국에게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21명의 인질의 생사가 미국의 부시행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죄수 교환이나 납치범들에 대한 다른 양보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며 “우리는 납치범들에 대한 양보는 더 많은 납치나 인질 억류를 가져올 뿐이라고 믿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다”고 말하면서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6년 1월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기자 질 캐롤이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에게 납치되었을 때 미군의 수용소에 억류 중이던 여성 5명과 맞교환했습니다. 미 정부가 사건 발생 3일 만에 무장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미국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도 협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 미 법무부는 2003년 2월 마약소탕전에 개입했다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에 붙잡혔던 노스럽그루먼 직원 3명을 풀어주면 미 연방법원에 기소된 이 단체 지도급 인사가 감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00년 에콰도르 미국 민간인 납치사건, 1999년 콜롬비아 인질 사건 등에서 미국도 소위 테러세력과 협상했던 적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피랍된 한국인들의 안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이는 미국의 태도는 혹여나 이들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피랍자 전원 살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를 기다렸다가 납치범 소탕을 이유로 아프간에서 확전할 가능성이 그것인데, 과거 김선일 씨 피살사건 때도 미국은 알 자르카위의 은신처를 파괴한다면서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라크 팔루자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초토화 시킨 바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자국민들의 죽음 정도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그동안의 모습이었습니다. 김선일 씨를 붙잡은 사람들이 '철수해라. 안 그러면 죽이겠다'고 했을 때 한국정부가 곧바로 '철수 못 한다'라고 했고, 이 말은 ‘그래 죽여라’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정부는 아프간과 미국의 결정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정부의 태도를 볼 수 있는 납치사건이 있습니다. 소말리아 무장 해적세력에게 피랍된 4명의 한국인 원양어선 선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구출노력은 납치된 지 70일이 지났는데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도 언론도 관심이 없습니다. 소말리아 피랍 한국인들은 2006년 4월에 납치 되었다가 117일 만에 석방된 동원호 선원 피랍사건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관계자에 의하면, “아프간 사태로 바빠 그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피랍된 지 70여일이 넘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무장단체는 지난번 납치되었다 풀려난 동원호의 한 선원의 아내가 안부확인을 위해 연락하였던 전화번호로 7월 25일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제발 한국인 선주에게 우리에게 연락하도록 전해달라”고 요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생명에 대한 현실입니다.
이번 피랍사건으로 국내여론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를 비판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유서까지 쓰고 갔으니까 당당하게 죽으라고 하는 사람부터 가장 마음 졸이며 무사귀환을 바라는 가족들까지 다양합니다.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는 멈출 수 없다는 목소리부터 어떤 식으로든 개신교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있습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 한국군 파병과 한미 FTA를 적극 찬성한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에 대한 반대 감정으로 이용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양한 반응들을 보면서 드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떤 입장에서 어떤 주장을 하든지 그 속에 생명을 향한 사랑이 있느냐 하는 물음에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목숨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말은 한국인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2001년 미국의 침공 이후 죽어간 수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말입니다. 무고하기는 잡혀 있는 한국인들이나 그동안 죽어간 아프간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하듯이 아프간 사람들도 제 나라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적이 다르다고 목숨의 가치가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면서 아프간 사람들의 무사생존도 또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성전봉헌절에 예루살렘 성전 안입니다. 성전봉헌절은 수전절(修殿節; Feast of the Dedication), 하누카(Hanukkah), 빛의 절기(the Feastof Lights)라고도 합니다. BCE 323년에 알렉산더대왕이 죽은 후에 이집트와 팔레스틴은 관용정책으로 통치하는 프톨레미우스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BCE 200 경에 팔레스틴을 지배한 셀류코스 왕가는 ‘희랍문명 통일화’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특히 BCE 170년대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Epiphanes)는 강력한 희랍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행해온 할례를 금지시켰고, 이를 어긴 어머니는 아기와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안식일도 지키지 못하게 했고, 성경(당시는 모세5경)을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을 격분시킨 것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희랍의 최고신 제우스를 위한 제단과 신상을 세우게 하고, 제단에는 유대인들이 금기로 여기는 돼지를 죽여 바친 것입니다. 또한 제우스의 동상을 지성소에 세우고, 모든 유대인들을 제우스에게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BCE 167년 유다지역의 작은 마을 모디인(Modiin)에서 유대인 저항운동이 일어났는데, 유대인 하스몬(Hasmon) 가문에 속한 마따띠아(Matthathias)와 그의 다섯 아들이 주동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이 혁명의 지도자는 마따띠아의 셋째 아들 ‘유다’였는데, 그의 별명은 ‘쇠망치’라는 뜻의 ‘마카비’(Maccabee)였습니다. 그 혁명을 ‘마카비 전쟁’이라고 하며, 당시의 상황을 마카비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3년간의 투쟁 끝에 유다 마카비 군대는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안의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철거하고 하느님께 성전을 새롭게 봉헌했습니다(BCE 164년). 이 날이 구약시대 월력으로 키슬렙(Kislev)월 25일으로 오늘날의 성탄절과 같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이날을 ‘하누카’(Hanukkah) 절기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 날은 유대인들에게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의 날이며,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희망하는 절기였습니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죽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죽임의 세력으로 바뀌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받기를 원하는 구원이 무엇을 위한 구원인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믿음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생명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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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나이 6000년설’을 비판하면 징계대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