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선교 20주년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쓰려고 하니, 아주 많은 기억들과 생각들이 스쳐서 아련한 기분까지 들어요. 제 나이가 22살이니, 20주년을 맞는 민중교회의 역사 속에서 나의 역사 또한 자리했구나, 새삼 돌이켜봅니다.

안산에서 약 20년 전, 아빠가 ‘안산노동교회’ 세우셨을 때, 저는 3살 아기였지요. 기억할 수 없어도, 교회의 삼촌들과 언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는 그 사랑 속에서 막연히, 아버지가 목사님이란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초등학생이 되고, 또 고학년이 되면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 같다고 느꼈어요.



▲ 아빠가 목사님이신건 자랑스러웠지만, 안산노동교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김심지 씨는 민중교회 목회자 김현수 목사의 딸이다.

저는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것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지만, 우리 교회가 ‘안산노동교회’라고 말하기는 싫어했지요. 다른 교회들은 ‘믿음, 소망, 사랑’같이 듣기 좋은 이름들뿐인데, 왜 우리 교회는 노동교회일까 의문도 들었지요. 제가 아마 그 때 이런 이야기는 아빠에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노동교회라는 이름이 창피하기도 하고 의문도 들었지만 아빠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약 10년간을, 제 나이 12살 때까지, ‘목사님 딸’로 곱게만 자랐어요. 그러다 아빠가 교회에 드나들던 아이들과 함께 예수가정을 꾸리기를 결심하신 날 저는 사실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사실이, 아니 아빠가 나의 아빠란 것이 원망스러웠어요. 좀 심한 표현일까요? 하지만 그때 심정이란 그러한 것들이었지요.

나와 내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 길에서 마주쳐도 해꼬지할까봐 피했을 그러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짓궂은 남자 아이들은 제게 거지깡패두목 딸이라고 놀리기도 하였죠. 예수가정이 막 시작되었던 그 당시 저는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를 아이들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이 가장 절 힘들게 했지요.

그렇게 약 2년간, 저는 어린 나이에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이했어요. 하지만 그 시련은 하나님의 앞으로 주실 축복의 봇물을 틔우는 두드림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예수가정의 시작으로 많이 힘들었던 13살의 시절은 제게는 또한 최고의 선생님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가장 행복하고 추억이 많은 한 해가 되었어요. 예수가정 아이들과도 친구가 되고 동생이 되면서, 나와 다른 그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도 있게 되어, 세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그 2년간은 예수가정과 들꽃 피는 마을의 역사를 통틀어 제게 가장 많은 기억과 고민과 생각과 또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어요. 그렇게 들꽃 피는 마을 속에서 성장하면서, 아빠와 엄마를 누구보다 존경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들꽃 피는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공동체를 이끌어나가신다는 것을 거의 자랑하다시피 했죠.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저는 아무런 문제없이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첫 해, 독서 대안학교인 꿈의 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를 ‘자퇴’했죠. 나쁜 일로 자퇴를 했던 건 아니지만,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말렸던 자퇴를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두려움이나 떨림 하나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에요. 아마도 그동안 숱한 자퇴생, 퇴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던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 들꽃피는 마을 김현수 목사와 식구들.(사진 한겨레신문)

그러나 그보다도 아마 엄마 아빠가 보여주었던 저와 제 선택에 대한 믿음 때문에 후회나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길로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선택이 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아빠와 엄마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바로 ‘믿음’이에요. 아빠와 엄마는 당신들이 지금의 제 나이었던 청년시절, 옳은 것을 옳다고 믿는 분들이셨어요. 믿음과 신념을 세상의 기준으로 재단하거나, 그 기준 때문에 숨기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는 분들이셨어요. 제가 창피해 했던 안산 노동교회라는 이름은 그러한 믿음과 신념을 어디에도 숨기지 않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였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와 함께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교회에 스며든 아이들을 통해 예수가정을 시작하고 들꽃 피는 마을을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 또한 재지 않는 순수한 믿음으로 가능했다는 것을 조용히 지켜본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지금의 결실들 모두 청춘시절부터 엄마 아빠와 같이,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잃지 않은 민중 교회 공동체의 많은 분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요.

저 또한 두 분의 믿음, 바로 하나님께서 저를 키워주신다는, 그 믿음으로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뿐만 아니라, 민중 교회 공동체의 모든 자녀들이 그렇게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앞일을 걱정하지요.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께 항상 가르쳐달라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하고 때로는 염려해요. 제가 본 두 분은 누구보다 걱정이라곤 없는 분들이세요. ‘믿습니다.’한마디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시죠. 그 때 그 때 울고 웃으며 삶을 살아가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두 분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해요.

아빠의 말씀처럼 안산노동교회, 들꽃 피는 마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각본’이었다면, 엄마 아빠는 그 각본에, 눈 한번 질끈 감고 주먹 한번 꼭 쥐고 나면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믿고 따를 테니까요. 덕분에 점심메뉴 고르기가 힘들 때가 많은 우유부단한 저 또한 고등학교를 자퇴할 때처럼 가끔은 어려운 결정들을 단호히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결정들에 대한 변하지 않는 두 분의 믿음과 응원 덕분에 지금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추억할 수 있음을 감사해요. 앞으로 제가 엄마 아빠의 그 믿음을 더욱 더 닮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평소에는 잘 하지 못하는 말이기에, 이렇게 편지를 통해 전합니다.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
이 글은 생명선교연대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낭독된 편지로, 필자 김심지 씨는 들꽃피는 마을 김현수 목사의 딸입니다.

김심지 ddimdi@hotmail.com

트윗하기

김심지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