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민중교회운동을 주도하시던 김광훈 목사님은, 여느 목회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민간요법의 의료기구들(부항 등)이 잔뜩 든 007가방을 들고 다니시며 개척을 구로지역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1983년 9월경 지금 현 주소의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사랑교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때는 의료보험이나 산재보험의 혜택도 없는 상태라 지압과 단식 등으로 건강을 보살펴 주는 교회로 구로지역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교인이 없는 상태여서 처음부터 예배는 못 드리고, 몸이 상한 노동자들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들기 시작했다. 구로지역 노동운동의 양호실 역할과 사랑방 역할을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그 당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G(당시 31세) 노동자는 허리를 다쳐 기다시피 하며 들어왔다. 장기 처치가 필요했으나 수술은 엄두도 낼 수 없고 여러 가지로 난처한 처지였다. 사랑교회에 와서 매일 단식하고 단식 기간 중에 김광훈 목사님은 혼신을 다해 부황과 지압요법을 해주고, 요가체조로 환자를 훈련시키며 체질을 변화시키는 불법치료행위(?)를 했다. G도 성실하게 매달려서 거짓말처럼 10여일이 지나자 G는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방을 청소하고 빨래도 하게 되면서 2주가 경과하자 몸이 회복되었다. G는 그 후 쌀 1가마를 교회에 헌금했다.

나는 사랑교회 첫 교인으로 사찰이자 주방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당시 기독교운동이 기구중심이라는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고 분석한 김 목사님은, 기독교운동을 보다 대중화시키려면 교회운동 중심으로 기층민중과 함께 존재하는 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사랑교회는 “민중교회가 자기운동의 바른 인식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과 노동자들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교회를 세우고자 목적의식적으로 깃발을 세운 것”으로 그 의미는 ‘민중교회운동의 신호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끈끈한 동지애가 영원한 오누이의 사랑으로

1986년, 선교교육원 여자후배 C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은 잠수를 타야 하니 광명시 철산의 000번지에서 짐을 대신 가서 빼달라”고 한 것이다. “만약 그 곳이 털리면 여럿이 달릴 수도 있으니 큰 낭패”라는 것이다.

나 역시도 당시 비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해인사승려대회 사건 이후로 수배중이었음) 조심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그래도 자신을 믿고 부탁한 것이니 결행해야 된다고 결심했다.

사복경찰들이 승진의 기회여서 기를 쓰고 검거하려 하던 때였으므로 틀림없이 잠복근무를 할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경계가 제일 허술한 시간, 즉 밤을 지키고 아침밥을 먹는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1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하여 20-30분 안에 일을 해치워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000번지 현장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누구의 애인인데 급하게 이삿짐을 옮겨야 하니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 집주인도 골치 썩히지 않으려 했는지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후다닥 들어가 제일 중요한 것들을 우선 챙기고, 또 자취해야 될지 모르니 필요한 생활도구와 이불 등을 챙겨서 픽업을 불러 실었다.

그러나 나중에 또 추격해올 것을 대비하여 구로와 오류의 중간 정도쯤 되는 길가에 짐을 내려놓고 차를 돌려보낸 후 다시 용달차를 불러서 짐을 싣고, “이 짐을 어디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던 중 신길동의 신명교회 옥상(4층)에 일단 갖다 놓기로 했다.

보안상의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도 못하고 혼자서 옥상까지 짐을 간신히 옮겨 놓았다. 그리고 신명교회 담임이셨던 노창식 목사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이 생각나 목사님께 신고했다. 서로 난감했지만 서로 이야길 맞추었다. 그 당시 나는 신명교회 비상근 전도사로 있었다.

자신도 위태한데 C후배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 동지애는 이심전심 마음으로 전달돼서 지금까지도 오누이처럼 변치 않는 사랑으로 아름다운 관계(?)로 꽃피어 열매 맺어가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 때 이야기

현대중공업의 골리앗크레인 고공 농성투쟁 때, 각 정파의 많은 활동가들이 모두 울산으로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사노맹 계열의 노동해방문학 활동가들은 우리 교회와 나의 신혼 단칸방을 은신처로 삼아 활동했다.

취재를 겸한 활동은 해야 하고 여관방은 안전하지 않으니, 당시 개척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나의 신혼단칸방으로 5-6명이 쳐들어왔다(사실은 불러들였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때 모여 회의와 토론장이 되기도 했다.

한편, 그때 골리앗크레인에는 우리 교회 청년 2-3명을 포함해서 100여명이 100여 미터 높이의 거대한 골리앗크레인에 올라가서 파업을 강경 진압한 것(당시 울산시 동구지역 전역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의 투석전이 연일 전개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을 항의하며 비장한 고공농성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골리앗크레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이갑용 씨(현재는 동구청장이다)였는데, 당국에서는 불의의 사고가 날까봐 강경진압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누군가 비대위와 접촉하여 협상을 해야 하는 사정이었다. 그러나 골리앗크레인 위에서는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비대위 측에서 한기양 목사가 올라온다면 만나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져왔다. 이에 검찰, 안기부, 경찰, 회사 측 4자가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한기양 목사만 올라가게 하면 그 역시 의심쩍으니 현대중공업에 근무하는 장로들이 섬기는 평강교회 L목사와 함께 올려보내자”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식수와 비상식량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걸어놓고, 자신은 “임수경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 북한을 함께 넘어간 문규현 신부”처럼, 자신도 “골리앗 노동자들을 지키겠다”는 결의로 유인물을 준비하고, 함께 올라가는 L목사에게 귀띔한 뒤 생수와 비상식량을 가지고 골리앗크레인으로 올라갔다.

당시 골리앗 비대위의 조직 상황은 무척 어려운 상태였다. 얼떨결에 올라간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함께 투쟁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여 3시간 정도 함께 머무르다 몸이 불편한 20여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내려왔다.

만약 보다 조직적이고 목적의식적인 투쟁이었다면, 함께 투쟁에 동참할 각오였지만, 자연발생적인 투쟁에 가까운 현실에서는 노동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그 같은 결정을 그들과 함께 내릴 수 있었다.

한기양  ecohan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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