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회오리가 1년여 동안 교계를 소용돌이에 휘몰아갔다. 이 시대의 문화와 정서는 물론 신학적 성찰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새 번역 안을 세상에 내놓아 물의를 빚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반성하고 제 갈 길 찾아가야 할일이 산적해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여신학자들은 이러한 때에 교계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호기를 찾았고, 나름대로 맡은 바 소명을 감당했다고 생각한다.

▲ 한기총 주기도문 새번역 안에 가부장성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여성신학자들.

본래 주기도는 신약의 마태복음 6:9-13과 누가복음 11:2-4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성서에 따라 번역 상 차이가 있다. 이 주기도는 어떻게 성서에 제시되어 오늘날까지 모든 예전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기도는 개인의 삶에서 출발할 때 진정한 신앙고백이 돼

두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종교 공동체들은 나름대로의 기도문 형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누가복음에서 한 제자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데서도 확증할 수 있다. 따라서 주기도는 제자 공동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또 마태복음에서는 당시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하나의 대안적 기도의 모델로 이 주기도가 제시되었는데, 예수는 이를 가르치기 전과 후에 당시의 관습을 빗대어 교훈하였다. 즉 1세기경 당시의 뿌리 깊은 의식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도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의 문제, 다시 말해서 그의 깊은 체험이 고스란히 말과 행위로 옮겨져 있다. 하늘을 향한 기도, 땅을 향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제자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한 것과 땅에서의 인간사가 개인적, 사회적 실존과 관련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 교회의날을 맞아 여성민우회에서 개최한 주기도문 잔치. 행사장에 설치된 각종 주기도 번역이 전시되었다.

이처럼 기도는 개인의 삶에서 출발할 때에 진정한 신앙고백이 되어, 회개와 감사와 간구가 개아(個我)를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예수가 가르친 기도가 오늘날까지 성서가 채택된 이래 2천 년 동안 제도 교회는 물론 기독교를 표방하는 크거나 작은 종파에서 여과 없이 사용되어 오고 있다.

더 나아가 주기도는 오늘날의 기독교인에게 우리 삶의 큰 능력으로 나타나는 주문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주기도에 대한 대대적인 신학적 작업이 요청되고 있다.

한국기독교 안에 길들여진 가부장성 해체하는 것이 절실

그렇다면 주기도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대상화하고 예수를 대상화하고 성령을 대상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자꾸 배타적인 성향을 띄게 되고, 이는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포용력이 떨어지고 있는 단적인 예가 된다.

20세기부터 새 조류를 타고 이미 하나님의 이미지가 포괄적으로 성을 초월하고 있는 분으로 재해석된 마당에 주기도문에 언급되어 있는 남성성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미 세계교회협의회를 위시한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 호칭을 대체어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등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에서 주기도문을 재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아버지라는 호칭을 더 삽입하여 반복 사용한 것이 세계 신학자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국이 어쩌면 서구 사회를 대신하여 세계 기독교를 이끌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지닌 학자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일단 하나님의 이미지를 양성 포괄적인 호칭으로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시대의 모든 사고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사회의 행동 체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모두 뛰어넘을 수 있는 내안의 길들여진 가부장성을 해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이순임  soonim_lee@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