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문사회과학은 역할이 있다

▲지난 8월초 서울에 모인 이안 윌머츠 박사, 황우석 박사, 제럴드 섀턴 교수.

몇 일전부터 황우석 교수와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섀턴 교수가 결별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난자 공여와 관련된, 그리고 어쩌면 아직 발표는 되지 않고 있지만 더 큰 문제로 섀턴은 더 이상 황우석 교수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사실 황우석교수는 자신은 잘 몰랐겠지만 처음부터 엄청난 힘과 맞서 싸울 운명에 처해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미국 국내 정치의 주 전선에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처음부터 예견되었는데, 황우석 교수는 철학자나 정치학자들, 그리고 법률가들의 자문을 구하지도 않고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1. 미국 정치의 최대 이슈, "낙태"

보수주의, 특히 사회적 보수주의(social conservatism)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 세력은 '낙태반대' 즉 '생명찬성'(Pro-Life)을 내세우면서 '선택찬성'(Pro-Choice)을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과 전선을 형성해오고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인간의 생명보다 사회공학을 우선시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새로 부상하고 있는 복음주의자들과 연대해 70년대 이후 낙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로 vs 웨이드 사건"(Roe vs. Wade)의 판례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올 봄에 있었던 식물인간 Schiavo 논쟁도 낙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전투였다.)

최근 보수적 가톨릭 교도인 존 로버츠(John Roberts)를  대법원장 자리에 앉히고, 이어 또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인 새뮤얼 얼리토(Samuel Alito)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하는 등 보수 공화당은 낙태를 금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만일 얼리토까지 지명이 인준되면 9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연방대법원은 5명이 보수파로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가톨릭의 신자가 된다. 개신교의 나라, 가톨릭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나온 조상들이 만든 나라인 미국에서 가톨릭이 다수가 되는 연방대법원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 구성된 대법원은 보수파의 바람대로 "Roe vs Wade" 케이스를 뒤집을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30년 이상 대치해왔던 주 전선 중 하나에서 공화당이 결정적인 승리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2. 배아줄기세포 실험의 용인은 낙태의 용인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미 보수파의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경계론)

의학이나 생물학이 한국보다 앞서 있는 미국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한국 보다 뒤쳐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대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맘놓고 이런 연구를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세계적으로 이름을 낼 수 있는 것만 있으면 환호성을 지른다. 20세기 들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자존심이 크게 구겨진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존경에 목이 말라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뭐든지 유명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할 수 있을 태세를 보이고 있고, 심지어, 전라의 누드모델로 유명해진 어느 재미교포 여성의 귀국에도 열광했던 우리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우석이라는 생명과학자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니 과도하게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나서고 있다.

▲낙태권을 위협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반대집회에 대응하여 난태반대운동단체도 집회를 열었다. 두 집회 참가자들이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배아줄기세포 연구 문제는 그 윤리적 지형상 미국 정치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낙태' 전선에 자리를 잡고 있다. 즉, '수정란'이 인간인지 아닌지 여부의 문제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수정란은 나중에 사람(person)으로 자라날 것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반해 민주당 계열의 리버럴들은 수정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사람'이라 인정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민주당쪽의 대표적인 이론이 '도토리-떡갈나무'이론인데, 도토리도 결국에는 떡갈나무가 될 것이지만, 도토리가 망가지는 것에 대한 우리의 측은지심과 앞 마당에서 10년간 함께 해 온 떡갈나무가 베어지는 것에 대한 측은지심이 어찌 같을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물론, (난자와 정자) 생식세포끼리 합쳐진 제대로 된 수정란, 그리고 여기서 자라난 배아(embryo: 아직 사람의 형체가 없는 상태), 그리고 태아(fetus: 사람처럼 모양이 생긴 상태)와 생식세포인 난자에 체세포(정자가 아님)의 핵을 결합시킨 수정란(황 교수는 이것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수정란이 자라면 복제인간이 된다)과 그것이 자라난 배아/태아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윤리 문제로 다뤄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윤리 감정이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단지 생식세포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난자에다 체세포를 합쳐 탄생하게 된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난 부정적이다. 필자가 사실은 이러한 복제인간이라고 해서 내가 무참히 다뤄지는 것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은 참을 수 없지 않는가? 측은지심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참을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제대로 된 인간이냐 아님 복제된 인간이냐는 것은 윤리적 감정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된 수정란/배아/태아의 생명활동을 중단시키는 '낙태'와 복제된 수정란/배아/태아의 생명활동을 중단시키는 '배아줄기세포 실험'은 동일한 것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 보수파들은 황우석 교수팀의 실험을 매우 불만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 인류의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대의를 위해 배아줄기세포 실험을 용인하는 순간, 이러한 용인은 낙태의 용인으로 '미끄러져 가게 되어 있다'고 이들은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미끄러운 경사면' slippery slope이라면서 경계한다.)

3. 결론

미국 국내 정치 문제에 불가피하게 깊게 관여하게 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철학자(그 중 윤리학자), 정치철학자, 그리고 외교관들, 법률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단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원래부터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는 것인지 모른다. 우주의 중심인 신으로부터 인간을 멀리떨어지게 한 '지동설'이 가톨릭 보편교회에 대한 신자들의 충성을 훼손하였고(주 1), '무'(無: nothing)에서 '유'(有: something)가 나왔다고 주장한 "빅뱅이론"이 로마교황청의 후원을 받은 가톨릭 신부 겸 과학자에 의해 창시되었고(주 2), x, y 염색체가 조합되어 남자와 여자를 만든다는 생물학 이론이 20세기 양성평등을 뒤받침했다는 사실을 보면(주 3), 과학과 정치는 너무나도 가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자연과학자인 황 교수는 많은 정치적, 윤리적, 법적 문제를 단지 (어떤 알수 없는 메카니즘을 통해)"윤리적으로 충분히 검토했다"는 말로 얼버무렸는데, 스스로 정치철학도라고 믿고 있는 필자는 그 논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본 기억이 없다. 내 기억으로는 그러한 문제가 언론 등을 통해 공론장을 통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황 교수는 앞으로 연구를 진행시켜 나감에 있어 인문사회과학의 지원을 받기 바란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섀턴 교수에게 미국 보수주의가 견딜 수 없는 정치적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워싱턴 정치와 깊이 관련되어 버렸다.

(주석)

 (1) 천동설을 믿으면 우리 인류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우주에서 이렇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면 신이 인간을 특별히 총애하고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만큼 성경을 믿고 싶고 신에 의지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어지럽게 돌고 있고, 태양계 역시 은하계에서 외곽을 돌고 있고, 은하계도 소우주에서 공전하고 있다는 이론을 배우게 되는 순간, 우린 갑자기 우주속에서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갑자기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만일 존재하더라도 우리에게 별로 애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전자가 무신론이고 후자가 범신론이다.

 (2) 기독교 성경은 '창조론'을 주장한다. 따라서, something은 모두 신의 의지에 따라 nothing에서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창조론에 대해, 진화론과 기타 이론들은 something은 오직 something에서 변형(trans-form)되어 나올 뿐이라고 주장한다. 질량보존법칙도 이러한 이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대해 빅뱅(Big Bang)이론은 우주의 한 점(point)에 언젠가 우주에 떠돌던 어떤 강력한 힘이 집중했고, 이러한 집중에서 갑자기 폭발이 발생하여 something들 즉 현재의 천체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우주의 힘이란 무엇, 아니 누구일까?"

(3) x, y 염색체에 의해 남녀의 성별이 갈린다는 이론이 나오기전까지 인류는 "아버지 날 나으시고, 어머니는 (자궁에서 그리고 탄생후에는 젖과 사랑으로) 날 키우셨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이론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반반씩 내가 태어나는 데 기여하셨다는 생각이 주류가 되게 되었다. 남녀평등론이다. 최근에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x염색체에 더욱 많은 유전정보가 들어있다면서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여성은 아시다시피 x염색체와 x염색체의 결합으로 성별이 결정된다. 남성은 xy)

김동규  athenian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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