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에서 과거에 대한 죄책고백을 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2000년 3월 5일에 로마교황청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교회와 신앙의 이름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인류에게 저지른 과오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참회하고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제목의 죄책고백을 발표했습니다. 12일 교황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집전한 ‘용서의 날 미사’에서 가톨릭교회가 범한 죄와 잘못에 공식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날 미사에서 7개항의 죄 고백과 참회를 했는데, 그 항목은 일반적인 죄 고백, 진리를 추구하는 명목으로 저지른 죄 고백, 기독교인 단결을 해친 죄 참회, 유대인을 박해한 죄 참회, 사랑·평화·인권·타문화와 종교를 업신여긴 죄 참회, 여성 존엄성과 인류 단결을 해친 죄 참회, 인간 기본인권과 관련된 죄에 대한 참회였습니다.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 6백만을 대학살할 때도 침묵했고, 십자군 전쟁 때에는 7만 여명의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를 학살했고, 15세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마녀 사냥을 자행했고, 신대륙 정복 시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선교의 이름으로 원주민을 학살했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서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 19일 독일의 개신 교회는 나치 하에서 더 용감하게 투쟁하지 못한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이른바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인데, 독일교회가 나치 하에서 투쟁이 부족했음을 고백했습니다. “더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고,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했고, 더 즐겁게 신앙 속에 살지 못했고,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일본 기독교단은 2차 대전이 끝난 지 20여년이 넘은 1967년에 이른바 '전책고백'으로 전쟁에 동조하고 지지한 죄과에 회개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로마교황청이나 독일교회나 일본 기독교단은 가해자나 가해국 국민으로서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신사참배나 부일협력의 경우에는 피해자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차원을 띤다고 할 수 있지만, 해방 이후에 남한 개신교의 죄책은 그들의 죄책과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과거사에 대해서 뚜렷하게 반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장 교단에서 죄책고백을 하기 전에(2006년 1월 20일)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친일과거사 죄책고백 특별위원회에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 친일행적에 대한 죄책고백문”을 발표했습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1935년 암울한 식민지하에서 <조선인 자신의 교회>를 높이 외치며 창립되었으며, 교단적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모진 시절을 꿋꿋이 견디면서 민족교회로서의 사명을 담당하였습니다. < BR>
그러나 일본의 강압적인 마수는 1942년에 이르러 초대감독 최태용 목사에게 무거운 죄책의 짐을 지게하고 말았습니다. 위원회에서 고백한 최태용 목사의 죄는 세 가지였습니다.
1) 최태용 목사는 福元唯信이라는 이름으로 창씨를 개명하였습니다. 2) 친일잡지 [동양지광 東洋之光] 1942년 10월호에 일문으로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이라는 친일논설을 기고하였습니다. 3) 젊은 교인들을 강제징용이라는 총알받이에서 구제하기 위해 국민학교 교재용으로 쓰인 모형항공기 제작 공장을 차리게 했고, 총독부는 이를 군수품으로 인정하였습니다.
< BR> 위원회는 “앞으로 하느님과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교단으로 회복하여, 낮은 곳에서 낮은 자들과 더불어 맑은 생명신앙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기장 교단에서 죄책고백을 한 것은 경남노회가 헌의한 “제29회 총회 신사참배 결의에 대한 공식회개와 사과표명의 건”을 허락한 것이다. 내용은 신사참배의 죄,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죄,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의 죄를 참회하고 청산하지 못한 죄에 대한 참회입니다.
물론 이러한 죄책고백은 과거사에서 기독교의 잘못 중에서 극히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한 죄책고백은 그동안 뜻있는 사람들과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해온 노력의 결과임과 동시에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에 향린교회는 2003년 희년총회에서 희년선언을 발표하고 그 선언에 세 가지의 죄책고백을 담을 것을 헌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서울노회에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은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 활동을 한 김승태 목사가 초안한 것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1)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신앙과 양심에 어긋나는 신사참배를 결의 실행하였고(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총회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지하여 전쟁물자와 인력을 동원하여 전쟁에 협력한 죄과를 하느님과 민족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
2) 해방 후 남북 분단 상황과 한국전쟁 때,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민족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지 못하고, 휴전에 반대하였고, 북한 정권을 악마시하여 동포들까지 적대시하며, 그들의 멸망을 염원했던 죄과를 하느님과 민족 그리고 특별히 북한 동포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3) 1970년대의 베트남전쟁에 한국정부가 한국군을 파병하여 고귀한 목숨을 희생시키며, 베트남의 무고한 양민까지 학살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 한국교회도 이를 지지하고 후원했던 죄과를 베트남 정부에 정식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 후에 ‘교회개혁을 위한 기장인 모임’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승태 목사가 위의 죄책고백을 중심으로 한 발제를 하였는데, 당시에 서울노회와 교단의 많은 이들에게 항의와 협박을 받았습니다.
또한 2005년 교회의 날부터 6회 동안 진행된 목정평의 한국교회 과거사 극복을 위한 심포지엄은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사회의 과거사 진상조사와 극복을 위한 노력과 맞물려서 한국회의 죄책고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신앙인들의 죄책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대세순응론이나 교회나 학교를 구하기 위한 특단의 결단이었다는 얄팍한 변명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부일협력에 적극적이었던 교회 지도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놓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회개를 촉구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장악하고, 이승만 정권과 결탁 유착으로 불의한 정권들을 옹호하고 축복하였고, 친일에서 친미로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치열하게 항일 투쟁을 했던 일부 기독교 선각자들의 역사를 해방 이후 마치 자신도 참여한 듯이 위장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고, 친일 경력을 은폐하면서 계속 지도자연하는 이들이 또한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은 한국 교회가 세상의 권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조찬기도회를 아무런 예언자적 양심 없이 옹호, 찬양해온 자세를 낳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의 대다수가 민족을 압살하는 외세와 부패하고 반인륜적인 권력을 질타하기보다는, 그 앞에서 침묵하거나 적극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영광과 출세를 도모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는 일제치하의 친일행각에 이어 해방 후 각 정권 때마다 권력의 핵심 근처를 맴도는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따라서 과거사에 대한 죄책고백은 과거의 어떤 인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죄책고백으로 과거사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오늘 우리의 삶의 방식과 교회의 존재방식을 탐색하는 작업이기에, 그 의미를 새삼 묻는 것은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의 삶 자체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책고백은 잘못된 교회의 전통과 단호히 절연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어야 하고 실제로 잘못된 교회의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단절해야 할 역사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분별하는 일은 뒤범벅된 역사의 격랑 가운데서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또한 일제 치하 죄과에 대한 죄책고백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의 수많은 죄과를 회개하기 위한 시작이며, 비로소 민족자주와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내딛게 된 일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이 놓여 있습니다.
민족 억압에 앞장 선 목회자들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지 않은 죄, 가해자 일본에 보상과 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죄, 북한멸망을 바라고 북한을 적대시한 죄, 베트남 전쟁과 전쟁 가운데 양민학살을 지지한 죄, 사회선교를 친공 용공으로 몰아 부도덕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준 죄, 국방을 지켜야 할 군대를 동원해 학살한 광주항쟁의 참상을 묵인한 죄, 통일인사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식량지원을 반대한 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죄, 미국의 대북정책을 옹호한 죄 등입니다.
개인이든 국가 권력이든 과거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운 행위를 한사람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속죄하며 뉘우쳐야 합니다. 또한 친일행적과 국가권력이 저지른 불법행위의 대한 진상규명에 앞서 정부는 친일 자손에 대한 부의 세습은 무엇이며 핍박 받던 애국선열의 명예를 세우는 일과 그 후손들에 대한 예우에는 그동안 소홀함이 없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정리를 위한 노력이 제대로 결실을 맺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아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다도 멸망 징조를 보일 때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상실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철저한 돌아섬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온 것은 그가 진리와 공평과 정의를 따라 사느냐로 드러납니다.
과거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은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제대로 된 씨 뿌림을 위해서는 묶은 땅을 갈아엎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묶은 땅을 갈아엎는 일은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고 열매 맺기 위해 제일 먼저, 가장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과거의 죄책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마음을 새롭게 하는 할례를 받는 일입니다. 바로 오늘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우리 후손들이 청산해야 할 죄책이 되지 않도록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가 결정한 많은 일들은 우리 후손들이 살아야 할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무거운 짐은 내일을 살아야 하는 후손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땅을 외국군대에게 넘겨주면서 전쟁기지로 만들고 전쟁의 위협 속으로 몰아넣는 일, 강대국의 불의한 침략전쟁에 동맹이라는 이유로 참전한 일, 불평등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 땅의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일, 대대로 살아야 할 땅을 심각하게 파헤쳐서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일은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과거의 죄를 고백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은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나의 삶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삶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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