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프랑스에서 지난달 차량방화 등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었는데, 일부에서는 도시설계나 공공주택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죠?

네, 올해 카트리나 재해는 미국 시스템의 치부를 드러냈고, 지난달의 프랑스 사태는 프랑스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냈습니다.프랑스 사태는 이제 통제가 되어 있는 상태인데요, 거의 3주일 동안 전국적으로 수만대의 차량이 방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난 카트리나 재해 중에 미국 시스템이 얼마나 문제있는가에 대해 열을 올렸었는데요, 프랑스 역시 소수인종의 소외 상태는 미국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예전의 식민지 같은 것들을 국내에 설치해 두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내부식민지론'인데요, 지금 이 문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든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 공통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똑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사태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이번 프랑스 사태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영미쪽에서는 프랑스의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모델(social model)이라는 것이 순수 프랑스혈통의 내부자들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여기에 끼지 못하는 이민자 같은 외부자들은 영미 모델보다 더욱 소외받게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부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다보면 여기에 못 끼인 사람들은 소외를 받는다는 거죠. 이른바 내부-외부 문제입니다.(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이와 비슷합니다)

특히, 미국의 우파 언론이 신이 났는데요, 카트리나때에는 미국의 치부가 허리케인에 의해 드러난 것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사태에서는 아예 프랑스의 문제가 곪아 터져버린 것 아니냐는 거죠. 그런 점에서 미국 시스템이 프랑스 시스템 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는겁니다. 소수인종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 우파들의 주장도 그냥 흘려 들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파리 도시설계도 폭동 사태 원인 중 하나

그리고, 다른 원인으로 프랑스의 높은 실업문제, 그리고 197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탈공업화 현상을 들기도 합니다.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것은, 프랑스의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교외지역의 문제입니다. 프랑스어로는 방리유(banlieu)라고 부릅니다.

미국에서는 빈민들이 주로 시내에 살고 교외지역에는 중산층 이상들이 사는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중산층 이상들이 시내에 살고 교외지역에 빈민들이 삽니다. 프랑스는 특히 빠리 교외지역에 신도시들을 많이 건설해 두었는데요, 여기에다 서민들이 사는 공공임대 아파트를 대규모로 지었습니다. 아파트는 대부분이 고층아파트입니다. 현재 이런 식의 도시계획이 이번 사태에 원인 중 하나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저층주택을 중심으로하는 새로운 개념의 교외지역 (banlieu)에서는 폭동 같은 것이 없었고, 또 전통적인 주거형태를 가진 마르세유 같은 곳에서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폭동이 주로 일어났던 교외지역의 도시설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겸 도시설계가가 있는데요, 바로 이 사람이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입니다.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도 이 사람의 어버니즘의 철학에 따라 건설한 것입니다. 건축에서는 모더니즘 계열에 속한다고 합니다.

Q.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어버니즘(Urbanism)은 어떤 특징이 있고, 또 어떤 문제를 가지나요?

르 꼬르뷔지에식의 어버니즘에 따르면, 가난한 서민들을 골목이 좁은 달동네 같은데 살게 하지 말고, 이들을 고층아파트에 살도록 하자는 것이고, 또 도시를 여러 존(zone)으로, 그러니까 여러 기능상의 구역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르 꼬르뷔지에가 서민용 공공주택으로 고층아파트를 선호했던 것은, 일단 비싼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채광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일반 주택구역이니 고층 아파트 구역이니 상가구역이니를 나누는 것은 그 편리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의도와 달리 실제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미국의 도시 비평가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여러 계층들이 서로 섞여 살고, 또 작은 상점들이 동네마다 있어서 그런 곳을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서로 얼굴도 알게 되면서 일종의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이렇게 구역을 획정하고 획일적인 고층아파트 단지만 있고, 상점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나 르 몽드 등에 따르면, 고층아파트는 슬럼화 되는 경우 문제가 많은데, 예컨대 불량배들이 한 두개 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를 장악하는 경우,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또, 구역획정과 같은 평수 주택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은, 계층들이 서로 섞이기 어렵기 때문에 평수가 낮은 아파트들은 슬럼화되기 쉽습니다.

기능 위한 도시 아닌 사람들간 유대 위한 도시설계 필요

특히 이번 프랑스 사태에서처럼 이런 슬럼들이 도시외곽에 위치해 있는 경우, 이들 슬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관심조차 받지를 못합니다. 미국의 경우엔 슬럼 문제가 언제가 노출되어 있지만, 프랑스의 슬럼은 지금까지 세계의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안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으니까요.

또, 다양한 평수, 다양한 형식의 주거가 섞여 있으면 또 좋은 점이 있다는데요, 사람들이 평생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주거가 계속 달라지는데, 이런 다양한 주거가 한 곳에 있는 경우, 멀리 이사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리고, 주민들이 한 지역에 오래 함께 살다보면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기 쉽죠. 예컨대, 젊은 사람들은 좀 시끄럽고 재미있는 곳에 살고 싶어하죠. 그래서 상점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구하려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상점 같은데서 좀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방이 많은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겨 가려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조용한 곳으로 평수를 줄여 갑니다. 만일 이런 다양한 형식의 주거가 한 지역에 모두 있다면, 한 사람은 구태여 이사를 멀리 갈 이유가 없고, 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 수도 있는겁니다. 이런 것이 작은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물론, 도시계획 문제로만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는 당연히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도시계획도 이번 사태발생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 것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도시행정당국에서도 이런 시행착오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신도시를 만들고 도시재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능을 위한 도시계획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간의 유대를 위한 도시계획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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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님은 국제문제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현재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입니다. 이 글은 방송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동규  athenian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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