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참사랑의 모습을 길게 열거한 후에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13절)라는 말씀으로 끝맺는다. 믿음과 희망은 결국 사랑으로 수렴된다는, 즉 사랑 실천으로 귀결되지 않는 믿음과 희망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예수도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마태 22:40) 곧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가르쳤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사랑의 새 계명을 유언으로 남겼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요한복음의 감화를 받은 걸로 여겨지는 후기 요한공동체의 작품인 요한1서에서는 사랑을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요약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요한1서 3:16-18).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의 핵심어는 “사랑”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을 모르는 신자들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이 땅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늘 혀끝에 사랑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또 사실 신앙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인생살이에서 사랑만큼 소중한 게 없다. 사랑이 있기에 인생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학벌이 좋아도 사랑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반면에 가난하고 사회적 지위가 보잘것없고 배움이 부족해도 마음에서 사랑이 옹달샘처럼 샘솟아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이렇듯 사랑은 인생의 보람이요 참된 행복의 원천이기에,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사실은 몹시 중요한 의미를 띤다. 한국사회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성실히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몇 배 더 인정이 넘치고 행복이 꽃피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신자들의 존재 가치는 바로 이 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현된다.

우리는 믿음과 행동, 사랑과 구원 사이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야고보서에서 발견한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2:14-16).

그렇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구원은 결코 신비하지 않다. 그것은 관념적이며 비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은 생활 속의 믿음이다. 사랑이 없이는 구원도 없다. 하루 세 끼의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교회의 이웃사랑은 주변의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갈 5:6). 나는 그런 믿음을 갖고 싶다.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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