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안병욱 위원장)는 23일, 전두환 일당이 쿠데타(79년12월12일) 직후인 80년 4월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하는 광부들의 쟁의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건인 <80년 사북사건>에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사북사건>당시 계엄사 수사단이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광부와 탄광촌 주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국가에 공식사과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경찰 뺑소니에 분노, 폭력사태로 확대

<사북사건>은 (주)동원탄좌 노동자들이 80년4월21일, 계엄사의 집회 방해에 항의하다 경찰차에 노조원이 다쳤지만 경찰이 이를 방치하고 달아나 대규모 폭력사태로 확대된 사건이다.

현장을 목격한 노조원과 주민들은 사북지서와 (주)동원탄좌 사무실을 부수고 회사 간부와 노조집행부를 폭행했으며, 잠적한 노조지부장을 대신해 그 부인을 잡아 폭행했다. 경찰 진압과정에서는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다친 경찰관을 병원에 후송해 인명피해를 줄이려 노력했고, 일부 광부들은 스스로 규찰대를 구성해 절도범을 잡는 등 자체 방범활동을 벌인 사실도 확인했다.

또한 광부들은 시위과정에서 무기고, 화약고를 통제하여 무기와 화약이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했다.

사건이 불거진 (주)동원탄좌는 국내 최대 민영탄광회사로 6~70년대 정부의 저탄가정책으로 각종특혜와 지원을 받고 크게 성장을 했지만, 광부들은 저임금과 산업재해, ‘암행독찰제’(노무감시조직) 등 비인간 노무관리로 고통 받는 상황이었다.

아울러 당시 노동자들은 유신헌법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노동3권은 제한받았고, 노동조합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때였다.  계엄사 ‘짜 맞추기 수사’ 임산부 등에 성 가혹행위

당시 노·사·정 대표는 11개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평화로운 해결을 약속했지만, 계엄사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은 80년5월6일 밤, 광부와 주민 200여명을 연행하여 시위와 경찰관 폭행, 노조 지부장 부인 폭행 등을 혐의로 조사를 벌였다.

수사관들은 특히 조사 전에 미리 주동자 명단과 혐의사실 등을 작성해 놓고 진행한 ‘짜 맞추기 수사’로 자백을 강요하며 물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임산부를 포함한 부녀자 4~50명을 조사하면서 강제로 옷을 벗긴 뒤 성 가혹행위를 하여 피해자들은 유산과 정신과 치료 등 고문후유증을 겪었다.

“불법행위 엄단” 민주화 열기 차단.. 5.17계엄확대 명분으로

<사북사건>관련 구속영장이 발부된 81명 중 31명이 린치사건, 경찰관 폭행 혐의로 기소되었다. 1군 계엄보통군법회의는 계엄포고령 위반, 소요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을 적용하여 징역5년~징역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사건 관련자들은 출소 뒤에도 감시와 회유는 물론, 계엄사의 원직복직 지시에도 퇴사 압력과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제한 등 부당한 인권침해를 당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합동수사단의 허위자백 강요로 무고한 이웃을 서로 고발하는 경우가 잦았고, 그 결과 사북 주민들의 공동체는 파괴되어 현재까지 서로의 책임을 묻고 있는 현실”이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신군부는 <사북사건>의 사회적 충격을 빌미로 80년4월30일 긴급계엄사 전군지휘관회의를 열어 ‘불법행위 엄단’을 천명하여 민주화 열기를 차단하려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이어 “신군부는 사북사건과 이어진 일련의 노동자 파업과 학원 민주화 시위를 ‘혼란과 무질서’, ‘무법지대’로 규정하고 5.17 계엄확대 조치 명분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전두환 일당의 전국 5.17 비상계엄 확대에 따른 특전사 전남대 파견은 5.18광주민주화 항쟁의 직접 계기가 되었다.

홍성환, 항일 조선인 인권구호운동 등 벌여

한편 진실화해위는 이날 자각단, 흑우연맹 활동 등을 1920~30년대 국내외에서 벌인 홍성환(1905~1973년)의 행적을 확인하여 항일독립운동 사실을 밝혔다.

홍성환은 1925년, 고향인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농촌계몽운동과 항일사상교육을 위해 자각단(自覺團)을 조직해 활동하다 1926년6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홍성환은 출소 뒤 ‘홍원청년동맹 용천지회’, ‘용호야학회’ 등 활동으로 농촌계몽과 청소년에게 항일독립사상을 교육했으며, 1932년 일본으로 가 아나키스트단체 ‘흑우연맹’(黑友聯盟)’에 가입해 재일조선인 독립사상 고취와 조선인 인권구호운동 등을 벌였다.

그는 특히 1933년 중국 상해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된 원심창 등 3명이 일본으로 압송되자 구원운동을 벌였다.

그는 흑우연맹 기관지 <흑색신문> 편집장을 지냈고, 항일독립사상 고취와 아나키스트 활동을 선전하기 위해 <자유콤뮨>을 냈다. 그는 1935년 일본무정부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1936년 강제 귀국조치 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아나키스트 항일독립운동에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해 5월 ‘이윤희의 1920년대 흑우회 등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에 이어 두 번째다.

이철우 기자  cybered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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