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을 비롯한 복음서 이외의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포착하기란 어렵다. 예배의 대상으로 신격화된 그리스도가 뚜렷이 부각되는 바울의 그리스도론에서 팔레스틴의 생동하는 예수의 발자취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사실 바울은 그리스도론을 전개할 때 "역사적 예수"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며 흥미조차 없었다(고후 5:16 참조).

바울 이전에 만들어진 케리그마(고전 15:3-8)와 그리스도 찬가(빌 2:6-11)를 보라. 이것들은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고백이면서도 내용은 완전히 비역사화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가 어디에서, 어떻게, 왜, 누구에게 처형되었는가'라는 역사적 사실이 완전히 실종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와 민중들의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변혁운동으로서의 예수운동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 신격화된 예수 그리스도가 빛날 따름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그렇다면 이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누가, 왜 "역사적 예수"를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로 둔갑시켰을까? 제도교회의 지도층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보존한다는 구실 아래, 그리고 선교 전략상 변증적 노력에 총력을 기울인 나머지 예수사건의 추상화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의 발자취를 재구성할 수 있는 그래도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인 마가복음에서는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 마가복음에도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가복음 저자는 그리스도로 신격화되기 이전의 역사적 예수의 민중해방 실천의 삶, 즉 예수운동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세례 요한이 체포된 살벌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용감하게 갈릴리로 투신하는 예수, 고향에서 배척당하는 예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예수, 당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부녀자들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어울리면서 저들을 멸시하고 소외시키는 기존 질서에 맞서 그들을 옹호하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당당한 자녀임을 선포하다가 마침내 권력자의 손에 피살된 예수(운동) 이야기가 한바탕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펼쳐진다.

이 예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도 케리그마보다는 역사적 예수가 돋보인다. 민중적 색채가 짙게 깔려 있는 이 예수 이야기를 전승한 자들은 누구였을까? 그 전승 모체는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형성한 주체와는 다른 계층이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민중"이었을 게 틀림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신앙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맹목적인 예수 숭배다. 예수에 대한 단편적인 교리 몇 개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제멋대로 제단하고 그 교리적 예수이해를 강요하는 한, 이 땅의 교회에는 별로 희망이 없다. 오늘 우리는 예수(운동)의 본래적 모습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새로운 예수 이해에 눈떠야 할 것이다.

<새길교회>의 평신도 설교자 길희성 교수는 오늘의 기독교를 이렇게 비판한다: "현대 기독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예수'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신앙을 제대로 깨달을 때 비로소 예수'에 대한' 신앙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예수를 하나님과 같이 떠받들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일을 그만두고 인간 예수 자신의 신앙 세계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의 신앙을 본받아 그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우리도 예수와 조금도 다름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를 저 높은 곳에 두고 우러러 섬기는 대상으로만 삼지 말고 그의 신앙, 그의 삶을 따르는 예수 따름이의 기독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즉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그리스도 고백은 "역사적 예수"에 뿌리박아야 한다.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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