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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개혁운동의 정신과 한국교회종교개혁주일과 칼빈 탄생 500주년에 부쳐
조용석 | 승인 2008.10.28 14:59
종교개혁주일과 칼빈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며


2009년은 칼빈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2009년을 맞이하며, 칼빈에 대하여 그동안 익숙하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아울러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소설, <폭력에 대항한 양심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에서 묘사된 광신자로서의 칼빈의 모습을 뛰어넘어, 새로운 관점에서 칼빈을 다시 바라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었던 바, 칼빈을 신적으로 추앙하는 평가는 칼빈의 신학을 교회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시키는 것이며, 반면에 칼빈을 독 선적인 광신자로서 간주하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관용"의 개념이 아직 유럽사회에 정착되지 않았던 중세 말기의 종교, 정치, 문화를 현대의 시각으로 무리하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오히려 최대한 역사적, 신학적 편견을 해소하면서 개혁자들이 생존했던 시대 안에서, 개혁운동 자체와 이의 주변적 상황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의 의도는 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유럽문명의 문제를 다룬 것이며, 나치즘 비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가 나치즘을 분명한 역사적 근거 위에서 좀 더 진지하게 비판하고자 했다면, 유대인 박해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한 루터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히틀러 독재에 협력한 루터교회 신학자와 목회자들을 과감하게 비판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츠빙글리와 칼빈의 신학은 루터와는 달리 유대교와 친화적인 기독교를 신학적으로 해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교회 내의 소수파인 칼빈의 후예들이 나치즘에 항거했으며, 나치즘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기독교의 게르만 민족 주의화를 시도했던 일부 루터교회 신학자들을 비판, 거부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유럽 지식인의 유럽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적 성찰의 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선 독일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루터의 개혁운동과 스위스 독일어권의 츠빙글리의 개혁운동,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한 2세대 종교개혁자 프랑스인 칼빈의 개혁운동을 간략하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습니다. 독일과 스칸디아비아 반도의 게르만 계통의 민족들이 루터의 개혁운동을 수용한 반면, 츠빙글리의 개혁운동은 스위스 내에만 국한되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개혁운동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스위스 제네바의 의회권력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일종의 비타협적 개혁운동을 시도한 프랑스인 칼빈의 신학은 현재 루터의 신학과 더불어 중요한 개신교 전통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의 개혁운동은 민족교회의 형성으로, 칼빈의 개혁운동은 민족개념을 초월한, 일종의 국제화된 교회운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칼빈의 신학의 구성요소를 살펴 본다면, 칼빈의 신학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신학적 독창성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츠빙글리 신학의 골격과 루터의 개혁운동의 근본적인 신학적 동기를 탁월한 변증법적 논리를 통하여 통합해 내고, 이에 근거하여 모범적인 교회치리를 성공적으로 시행한 인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의 개혁운동의 기본적 표어인 은총, 칭의, 하나님의 주권성과 같은 신학적 개념은 카톨릭적 세계관과 결합된 봉건정치와 대립되는 제후권력(독일), 자치도시의 의회권력(스위스)의 성장하는 시민권력의 신학적 담론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1세대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츠빙글리가 시민권력의 강화를 위하여 개혁운동을 시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서의 근본적 증언으로 복귀를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적 확신에 의하여 시작된 신앙운동이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장하는 시민권력의 계급적 이해와 상응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즉 자치적, 조합적 결사체의 정치적 자유를 신앙의 자유의 이름으로 획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강제적 행위로부터의 신앙의 자유는 카톨릭적 신앙관과 결합된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희망의 언어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오스트리아, 프랑스, 로마의 교황청을 위하여 용병을 파견하며, 그 대가로 연금을 받았던 스위스의 도시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성의 개념이 험악한 지리적 여건, 정치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성서적 증언으로 이해되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카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황제가 용병파병의 대가로 제공하는 연금의 수혜자와 일반 시민 사이의 사회적 갈등 속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결합된 정치질서의 해체와 관련되어 모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기 스위스와 같은 정치적-지리적 환경 속에서 섭리, 예정의 신앙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츠빙글리와 칼빈을 통하여 시작된 개혁신학 전통의 중요한 화두였던 섭리와 예정의 개념은 스위스처럼 지리적, 정치적으로 열악한 상황 속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정치적 지배를 받았던 스코트랜드의 종교개혁을 성취시키는 중요한 신앙의 동기가 되기까지 합니다. 프랑스 혁명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던 스위스 제네바의 루소가 프랑스 위그노 교도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역사적, 신학적 상상력을 좀 더 깊이 자극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정치적, 종교적 탄압에 대항하여 칼빈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유럽과 미국 초기 청교도들의 청빈하며 금욕적인 삶의 자세는 자본주의 형성의 윤리적 단초가 되었다고 후대의 학자들은 평가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청교도들의 강한 예정의 확신은 이후 미국 오순절 운동의 기초가 됩니다. 오순절 운동의 창시자는 한 흑인목사이지만, 예정론은 미국 중 산층 백인들의 계급의식을 강화, 보증하는 신학적 담론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신앙적 위로를 제공했던 칼빈의 예정론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드러납니다.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현대 개신교 근본주의의 심층에는 왜곡된 예정의 확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왜곡된 예정론적 확신은 돈, 인종, 성으로 귀착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인지되는 개신교 근본 주의 속에서 인종-성차별적 요소는 강렬한 성령운동의 형태 안에 은폐된 것 같습니다. 대신 왜곡된 예정과 구원의 확신을 통하여 돈과 성공, 더 나아가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감지될 수 있습니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불타오르는 생존의 본능과 종교적 감성의 질긴 결합 속에서 자본주의적 인간상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백인으로서의 미국인, 더 나아가 백인으로서의 유대인과 동일시하곤 합니다.

그러나 칼빈의 중요한 신학적 화두는 예정론이 아닙니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로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계와 인간, 교회를 고찰하며 증언한 하나님 중심적 신학입니다. 예정론은 이의 부분일 따름입니다. 예정에 있어서도 칼빈은 유기된 인간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정을 강조하며, 이를 통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이는 박해의 상황 속에서 의연하게 신앙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교리였음이 분명합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예정의 거울이며, 인간의 행위로 예정, 구원될 수 없습니다. 그는 루터의 칭의론적 동기를 수용하 며, 목회적 관심 속에서 예정론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계시신학의 영역 안에서 발전시켰습니다. 아울러 그는 예정론의 빛 속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의 우주성과 보편성을 구상합니다. 더 자세하게 언급한다면, 그는 루터교회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7항을 적극적으로 수용 하여 복음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집행되는 곳은 교회라고 선언하며, 교회의 머리와 주님은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교회형태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현존이 인식되는 모든 시, 공간은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심지어 로마-카톨릭 교회 또한 참된 교회 안으로 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루터와 칼빈에 의하면 신앙은 항상 제도로서의 교회 이전에 존재하는 바, 교회는 순수한 신앙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오늘날 개혁자의 신학이 배타적, 독선적 종교집단의 자기방어의 논리로 포장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혁운동의 신앙과 신학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해방적 의미를 오늘날 창조적으로 살려내는 것이 2009년 칼빈탄생 5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20세기 스위스 개혁신학자 칼 바르트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는 청년시절 목회자로서 종교사 회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며, 이후에는 파시즘, 배타적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를 비판, 저항했습니다.

이와 같은 삶의 맥락 속에서 전 인류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편적인 화해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해명하고, 이를 교회운동을 통하여 구체화시키고자 했던 칼 바르트는 자신을 칼빈의 후예라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이 루터와 츠빙글리의 신학을 창조적, 비판적으로 통합했다고 이해한 그는 칼빈의 신학의 예언자적인 현대적 계승을 구상했습니다. 따라서 칼 바르트를 단순하게 근대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한 신정통주의 신학자로서만 규정하는 것은, 신학의 역사성을 간과한 채, 일부분만을 과장, 확대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칼빈 탄생 500주년의 의미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대학교 손규태 교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오늘의 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관념론적 대륙에서 태어난 교리는 영국의 합리주의와 경험 주의를 통해서 교정되고, 미국의 왜곡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락하며, 한국의 이기주의적 샤마니즘과 더불어 축복신앙으로 왜곡되어 교회와 사회를 오염시킨다고 할 수 있다."(개신교 윤리 사상사, p. 285)
조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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