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행위와 구원”(마가복음 5:21-43)

  이병일 목사

두 사건 하나의 이야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두 여자의 병을 고치는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써 고침을 받았고, 열두 살 난 회당장의 딸(여자 아이)이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마가복음의 독특한 구성방법인 ‘샌드위치 기법’에 의하여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가 여자라는 것과 열둘이라는 숫자가 그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공통적인 것이 더 있습니다. 바로 믿음과 생명(구원)이라는 주제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의 딸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동행을 요청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열두 해 동안 피의 흐름이 있어 온 여인”이 발 디딜 틈도 없는 군중 속을 헤치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여인은 무리에 속해 있을 뿐 이름도 없고, 지위도 없으며, 대변해 줄 보호자도 없었습니다.

피의 흐름이 그치지 않는 병, 즉 혈루병은 월경이 끝난 뒤에도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병입니다. 레위기 15장 25-30절에 의하면, 그 여자뿐만 아니라 그 여자가 만지거나 그 여자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이 부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오염의 근원으로서 그 여인과 접촉하는 모든 인간과 물건이 부정해지기 때문에, 그 여인은 종교적으로 가장 부정한 인간이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외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어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많은 의사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소비하였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절망뿐이고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여인에게 한 줄기의 섬광처럼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그 소문이 그녀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부정으로 인한 멸시와 매서운 눈초리를 무릎 쓰고 거리로 뛰쳐나와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 여인은 무리의 에워쌈을 뚫고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그 여인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피의 근원이 말랐고, 그 여인도 즉시 자기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예수를 만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혈루병에 걸린 여인의 나음을 위해 머뭇거리는 동안에 또 다른 여자 아이의 죽음이 전해집니다. 열두 살 된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려는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회당장은 자기의 딸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도착해서 고쳐주기를 바랬습니다. 이제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혹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여자 때문에 자기의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그 여인을 미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여인의 기쁨과 놀라움을 함께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여인을 증오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자기 딸의 목숨을 담보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괴롭게 했을 것입니다. 한 여인의 생명과 한 여자 아이의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결국 회당장과 예수님은 장례식이 진행 중인 회당장의 집에 도착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민수기 19장 11-13절에 의하면, 시체에 접촉하는 것은 곧 부정을 의미하며, 그 부정을 씻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 아이의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고 잠자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따 꿈!”, “소녀야, 일어나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어나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열둘”의 의미

이 두 사건에서 마가는 “열 둘”이라는 숫자를 내세웁니다. 그러면 이 열 둘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고 상징할까요?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열두 해 동안 “많은 의사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소비하였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가의 묘사는 각각의 역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파산한 사회에서 약자가 당해야 할 운명을 예리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종교 문화의 왜곡된 이념에 기초하여 사회가 메운 멍에를 여인은 홀로 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더 이상 생산이 중단된 상태에 있으며, 고대 사회에서 태가 닫힌 것은 다음 세대의 희망이 끊어진 것을 상징합니다.

마가는 죽었던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이었다고 보도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의 운명을 열두 살을 경계로 달라집니다. 여자들은 어린 소녀(12세 이하의 소녀), 처녀(12-12.5세), 성인 여자(12.5세 이상)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12.5세가 될 때까지 딸들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한 아래에 있었고, 딸은 소유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12세 이하의 여자가 서원한 것을 취소할 수도 있었고, 마음대로 약혼이나 결혼을 시킬 수도 있었고, 노예로 팔아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12.5세가 지나면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자율적인 결정(결혼거부선언 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두 살이 경계가 되는 것은 열두 살부터 여자 아이는 월경을 시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여자 아이는 월경이 시작되는 열두 살부터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이제 막 태의 문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는 자기가 자기의 삶에 주인이 되기 시작할 때에 죽은 것이며, 생명을 잉태 할 수 있는 미래가 끊어진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생산이 중단된 여인은 옛 이스라엘의 비생산성을 상징하고, 열두 살의 여자 아이는 이제 막 생산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에서 죽어버린 새 세대를 대표합니다. 이는 다음 세대의 희망이 차단된 유대 사회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 두 여자는 유대 민중들을 대표하는 점에서 그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 의해 생산적 삶으로부터 차단당한 민중의 절망을 암시합니다. 이는 요즘 우리 사회의 경제적 위기로 서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 당시의 전통적인 유대 사회 그 자체로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미래에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의 상징인 열두 지파가 이제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평등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제도인 “열두 지파”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분열되고 형식만 남아서 더 이상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써의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태의 문이 닫힌 것을 다시 회복시키고, 죽음에 의해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두 여자는 삶의 온전성을 회복하여 생명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성서에서 구원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드러나고 사건이 됩니다. 절망과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사건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제 두 여자는 하느님의 딸일 뿐만 아니라 새 이스라엘의 미래, 즉 하느님 나라를 열어줄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다양한 모습들

두 여인의 구원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여러 종교에서 종교적 삶의 덕목으로 강조합니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을 내세우지만, 그만큼 많은 오해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어떤 실체로 생각하거나 행위와 반대되는 심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헌금을 많이 하거나 교회와 목사를 위해 맹목적인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기 위해 오용되기도 합니다. 믿음의 대상이나 내용을 하나의 교리로 만들어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놓고 주입하기도 합니다. 믿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고, 믿음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두 여자의 구원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함께 나누면서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무리들, 회당장 야이로, 혈루병에 걸렸던 여인, 야이로의 딸입니다.

야이로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살리리라”입니다. 회당장은 그 지역에서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딸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름값도 못하는 회당장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나의 딸이 죽게 되었다. 그러니 당신이 와서 그녀에게 당신의 손을 얹으면, 그녀는 구원받고(회복되고) 살아날 것이다.” 그는 자기의 계획대로 예수님의 행위에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을 얹으면”이라는 조건은 또한 그 당시의 치료행위의 전형적인 모습인 안수(按手)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대상화 하는 것이고, 그러한 믿음은 의존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한 믿음입니다.

무리는 마가복음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에서 예수님이 구원할 사람들이며 유대의 민중을 말합니다. 그들은 마가가 말하는 사건과 이야기를 함께 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이며, 사건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예수님에게 모여든 무리가(21절) 예수님을 따릅니다(ἀκολουθέω; 24절). 마가복음에서 따름은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떠밀고 있습니다(συνθλίβω). 떠미는 것은 “억누르다, 에워싸다, 괴롭히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앞세우고 따르지만, 뒤에서 그를 떠밀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군중심리 같은 믿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에워싸고 압박하여 자기들의 기대와 희망을 예수님에게 투사하면서 괴롭히는 믿음입니다.

혈루병 때문에 고생하는 여인은 무리들의 에워쌈을 헤치고 예수님의 옷을 뒤에서 만집니다. “뒤에서”[ὄπισθεν]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기본입니다. 믿음은 앞서가는 예수님을 뒤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만집니다. 그 행위는 자기의 딸에게 손을 얹어주기를 간청하는 야이로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그 행위는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주체적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서고 낫겠다는 희망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집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구원해달라고 빌기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고 주체적으로 만지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듯이 이 여인을 하느님의 딸[θυγάτηρ]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화롭게 가라. 너의 질병으로부터 건강하게 되어라.”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무시하고[παρακούω]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제 야이로는 예수님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갑니다. 소동을 일으키며 우는 사람들,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는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들을 내쫓고, 예수님은 딸에게로 갑니다. 예수님은 딸의 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곧 그 딸은 일어나고 걸어 다닙니다.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은 딸의 몫입니다. 딸은 걸어 다님으로써 일어남을 보여주었습니다. 일어난다(ἐγείρω, ἀνίστημι)는 것은 부활을 말합니다. “탈리따 꿈!”이라는 말씀에 벌떡 일어나고 걸어 다니는 소녀의 믿음은 부활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무리들과 야이로 같을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두 딸의 믿음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을 확증하는 믿음의 행위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행위입니다. 개신교는 행함을 오해하고 잘못 가르침으로써 스스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믿음과 구원의 사이에 행위가 있습니다. 믿음을 표현하고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 행함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행위이고 마가복음에서 그 행위는 따름입니다.

그 믿음의 행위는 무리들처럼 단지 모여들기만 하거나 따르면서 예수님을 떠밀면서 압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믿음의 행위는 야이로처럼 예수님을 대상화 하여 간구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따름이 아닙니다.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 예수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행위는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주체적인 믿음입니다. 올바른 희망을 품고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때로는 겸손하게 예수님과 마주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평화와 건강함으로 자기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믿음입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에서도 내미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라는 말씀에 일어나서 행함으로써 부활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두 여자의 생명을 회복시켰습니다. 두 여자의 구원에는 예수님의 행위가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에게는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것을 용납함으로써 그 여인의 병이 나음을 입었고, 열두 살에 죽은 여자 아이에게는 예수님이 직접 그 여자의 손을 잡음으로써 그 여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여기에서 옷을 만지는 것과 손을 잡는 것은 단순한 접촉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이미 그 사회에서 부정하다고 낙인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과 물건도 부정하게 됩니다. 사회적 통념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감금되었던 그 여인이 무리 속을 헤치고 나아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는 것은 그 무리와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쳐서 자신의 불결의 원인을 제거하실 수 있음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 여인의 행동은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그 여인의 행위를 믿음으로 칭찬하며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고 건강을 빌어줍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 여인의 질병과 고통을 짊어지고, 그 여인의 부정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 앉음으로써 사회적 부정의 통념을 깨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시체에 접촉하는 것은 스스로 부정해 지는 것이고, 그 일로 인하여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꺼이 생명을 살리는 일과 자신이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교환합니다. 예수님은 부정하게 된다는 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오염되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정과 부정의 족쇄가 예수님에게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정결과 부정을 구별함으로써 사람을 차별하는 비생산적인 사회적 전통을 예수님은 과감히 무너뜨리고 삶의 온전성과 생명을 회복하고 하느님의 샬롬을 실현하였습니다.

대림절 : 구원의 희망을 향한 기다림

일반적으로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라고 합니다. 그 기다림은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임마누엘)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의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평생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것과, “종말에 심판 하러 오실 그 분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의미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전자의 의미라면,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후자의 의미라면 우리가 바라는 종말이 평화와 구원의 때라기보다는 심판의 때이기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꺼려집니다.

대림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을 더 기다립니까? 기다림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고 내일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의 오심을 반복해서 기다리는 것은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예수님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삼아 함께 이루는 일입니다. 우리가 대림절에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꿈입니다. 교회 용어로 말하면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 땅이 그런 세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일은 미래의 일이라지만, 지금 내가 함께 하고 있는 가족 교회 공동체를 그렇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일은 멀고 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다림은 미래이면서 현재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의 오심은 생명과 평화가 넘실대는 미래이면서 현재입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일은 희망을 품는 것이고, 이 희망을 이루는 힘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믿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의 생명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생명의 근원을 나누는 일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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