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

“고향이 뭐길래?”(마가 6:1-6)

이병일 목사

고향은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에 대한 기억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지만,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그저 생물학적으로 몸이 태어난 곳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장소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간과 기억들까지도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향’은 아득하고 원초적인 체험들로 넘실거리고, 인간 존재들에게 잠재해 있는 생래적인 감동을 부르는 말입니다. 쉼 없이 솟아오르는 샘처럼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이 그 고향에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기억들 속에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며 살아 있게 하는 중요한 무엇, 꺼내보면 달아날 새라 고이고이 감춰두었던 무엇이 있습니다.

고향은 인간이 인식하는 최초의 공간입니다. 인간은 고향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사회를 인식하며, 조국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은 ‘세계의 중심’이고, 공간에 대한 모든 인식은 고향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낯선 풍경 그 자체가 아닙니다. 고향에는 있었는데 여기에는 없는 것들, 혹은 고향에는 없었지만 여기에는 있는 것들에 대한 발견, 즉 고향과의 차이점에 대한 인식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 산업화 시대는 흔히 ‘고향을 잃어버린 시기’라고 표현됩니다. 이는 고향이라는 공간 자체의 소멸이라기보다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재생’과 ‘부활’의 상징적 의미가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삶은 일상에 묻혀 살다가 그만 이러한 고향을 잃어버리거나, 타의에 의해서 강제로 고향에서 추방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고향이란 말 속에는 오늘 우리의 삶이 느닷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듯이 앞으로도 느닷없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화에 대한 목마름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든가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맘대로 갈 수 없거나 잃어버린 고향을 미래의 현실로 되찾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자유와 독립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묶어줄 고통의 끈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 떨어져나가면 누구나 쉽게 뿌리 뽑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광풍 앞에서 서로를 단단히 묶어줄 끈은 바로 자기가 태어난 땅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려는 저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인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은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억입니다.

예수님의 활동,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지금까지 예수님의 활동은 소위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신을 축출하고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고, 그의 적대자들을 논쟁으로 물리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추종하게 되었으며, 적대자들의 반격도 더욱 과격하게 되었습니다. 선포로 시작된 하느님 나라가 지배세력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 폭력으로 온전성과 생산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회복시킨 해방 사건으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 땅과 이방인 땅의 구별도 폐기시켜 그 모두가 새 세계에 포함되는 사실을 과시한 예수님은 자기 고향에서 배척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활동은 예루살렘에서 온 장로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하여 반대에 부딪힌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새 시대의 도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포섭하려고 하거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행동에서 트집을 잡아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기존의 관념에 집착한 나머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2:7, 18,24; 3:1-6, 22; 7:1-23). 예수님의 친척들은 그를 미쳤다고 간주하여 잡으려 하였고(3:21), 헤롯과 그 일당은 세례자 요한을 처형함으로써 그 새로운 길을 가로막으려 하였습니다(6:17-29).

예수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서 세우고, 그들과 함께 자기의 고향을 방문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한 일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꺼려했다는 것은 단순한 일화가 아닙니다. 다음에 계속되는 “열둘의 파송”과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연결해서 생각할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고향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배척당했다고 하는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나?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고향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놀라다”[ἐκπλήσσω]는 “때리다, 쳐서 튀기다, 공포로 압도하다,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σκανδαλίζω]는 “덫을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하다, 충격을 주다, 괴롭히다, 함정에 들다, 죄를 짓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고향 사람들, 그 중에는 어렸을 때에 예수님과 함께 회당에서 토라를 배우고 뛰어 놀던 친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형제들과 자매들과 어머니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무서워하고 예수님에게 걸려서 넘어지듯이 괴로워합니다. 왜?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의 권력을 위해서 고향에서 비롯된 혈연 지연 학연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때로는 고향사람이라는 것 하나로 비리를 저질러도 눈감아주고 성추행을 해도 두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한탄조로 말씀하신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 다시 말하면,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대부분은 어떤 사람이 예언자적 능력을 갖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유독 공동체성이 적어서 그랬을까요?

그런데 그 말이 나온 시대적 배경을 보면 조금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예언자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했습니까? 언제나 권력을 쥔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죄악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 잡아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예언자는 결코 달가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쫓겨 다니거나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자나 메시아로 자처한 사람은 언제나 유대 지배자들과 로마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나 메시아로 자처한 사람과 연관된 사람들이나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본거지라고 생각되는 곳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초토화되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반란죄로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6Km 떨어진 세포리스는 과거 헤롯대왕의 군사 요충지중 하나였으며, 헤롯대왕 사망 후 갈릴리의 민족 지도자 유다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점령했었던 도시이며, 이곳은 그 당시 민족적 저항의 상징이 될 만한 도시였습니다. 물론 로마군에 의하여 이 도시는 초토화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주변에 흩어진 주역 주민들까지 노예로 팔려가는 한 많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자의 가족이나 고향은 그 예언자를 그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언제 끌려갈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예언자라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 가족조차도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꺼려하거나 달갑지 않게 여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남한의 역사에서 연좌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수배당한 사람이나 그 가족들의 고통이 그 말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권력의 횡포와 탄압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이들이 예언자를 품고 예언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죽임과 배척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넘어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예수님은 자기의 고향에서 더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랐습니다. 여기에서 놀라다는 2절에서 고향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과 다릅니다. [θαυμάζω]는 “놀라다, 존경하다, 기이하게 여기다, 이상히 여기다, 찬양하다, 칭송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변의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칩니다. <6절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파송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고향을 방문한 이후에 선교활동은 더 적극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는 파송 현장과 파송의 의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의 구조를 배치하였습니다. 그것을 샌드위치 기법이라고 하는데, 한 이야기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넣어서 두 이야기의 내용이 한데 어우러져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둘이 파송되었다가 돌아와서 보고하는 사이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자기의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죽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마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과 함께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는 세상은 언제나 죽임과 배척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제자들이 파송되는 현장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파송되는 이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분위기는 죽음의 위협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고, 제자들의 결단은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지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오늘의 화두에 맞추어 생각해 본다면 “고향을 잃어버린 마음”일 것입니다. 자기를 거리끼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다르위시의 말처럼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을 상실한 마음입니다. 고향으로부터 유배당한 사람들의 마음은 고향의 옛 모습이나 옛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고향 꿈꾸는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고향의 품에 안기는 날을 위하여

‘기다림’은 지금 없는 것, 현재의 부재(不在)를 전제로 하지만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과 긍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해마다 반복되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도현 님의 “기다리는 사람에게”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기다려도 오지않는 사람을 위하여

불 꺼진 간이역에 서 있지 말라

기다림이 아름다운 세월은 갔다

길고 찬 밤을 건너가려면

그대 가슴에 먼저 불을 지피고

오지않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비로소 싸움이 아름다운 때가 왔다

구비구비 험한 산이 가로막아 선다면

비껴 돌아가는 길을 살피지 말라

산이 무너지게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함성이 기적으로 울 때까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그대가 바로 기관차임을 느낄 때까지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인 고향의 품에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안기는 일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갈 수 있고, 고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미소 지으며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리울 때에 지금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 공동체에서 하는 일들이, 우리 공동체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일들이 “서로를 묶어 줄 공통의 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당하십시오. 오늘 내가 걸어갈 길이 평탄하고 넓은 길, 장애물이 없는 길이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험한 산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당당하게 삽시다. 우리가 대림절에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꿈입니다. 지금 나의 삶의 현장에서 “서로를 묶어줄 공통의 끈”을 만들면서 생명과 평화의 미래를 기다립시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트윗하기

이병일 위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