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잔치”(마가 6:30-44)

광야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과 제자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은 그럭저럭 흘러가는 듯 합니다. 우리가 주도하거나 참여했던 많은 일들은 바로 오늘 우리를 만든 입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고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년 마지막 주일에 한 해 동안 우리가 했던 일들을 돌아보는 것은 바로 그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나눈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 잔칫상을 ‘죽임의 밥상’이라고 한다면,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는 ‘나눔의 밥상, 살림의 밥상’이라고 합니다. 안티파스의 잔칫상을 배타와 배척 그리고 분노에 가득찬 광기의 밥상이었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포용과 사귐, 그리고 사랑의 밥상입니다. 예수님의 살림의 밥상을 함께 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밥상을 나눈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어떠합니까?

안티파스의 잔칫상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고 본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는 세상이 죽임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듯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와 다르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 속으로 파송된 열둘은 열심히 전파하고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들이 경험했던 일들을 낱낱이 보고합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그들이 가르치고 선포하고 병자를 고친 일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의 죽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각자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조금 쉬어라!” 하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쉬다[ἀναπαύω]는 “일손을 멈추다, 정지하다, 그만두다, 단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쉬어라” 하는 말씀은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하여 단순히 휴식을 취하라는 말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안티파스의 세력이 미칠 수 있는 위험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에 그들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라’ ‘잠시 멈추라’는 말이 됩니다.

마가는 그 이유를 “왜냐하면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많아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누구인지 금방 드러날 수 있고, 편안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도망쳐야 하는 급박한 현실을 말합니다. 마치 히브리들이 이집트에서 급하게 빠져나와서 광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월절 식사 때의 차림새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은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 즉 광야로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자 없는 어린양 같은 우리들

그러나 그들의 피신과 동시에 무리가 먼저 알아차리고 그들이 가는 곳에 먼저 도착합니다. 여러 도시에서 함께 달려와서 모여든 바로 그 무리가 예수님이 먹이는 대상이자 먹는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두면 먹이는 대상이고, 자발적인 무리를 중심으로 하면 먹는 주체입니다. 오천 명은 주체입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도 광야로 피하여 그들을 보시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들을 측은히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자가 없는 어린 양 같았기 때문이다. 그(예수)는 많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어린 양” 같았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마음 아파합니다. 그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이 않게 여겨져서 동정합니다. 함께 아파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목자를 잃은 어린 양처럼, 지도자를 잃은 무리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들을 가르치던 세례 요한을 잃고 그의 목숨을 앗아간 헤롯 안티파스에게 모진 압박을 받아야 하는 무리들, 그래서 광야로 피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바로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참 지도자는 어디가고 무소불이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지도자 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물론 올해뿐이 아니라 지금까지 죽 그래왔지만, 유독 올해부터 더 심하게 느껴졌고 앞으로도 더 심할 것 같습니다. 성탄전야에 박 집사님이 불렀던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스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그러나 바로 그 무너진 가슴들이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의 흔적, 문명의 찌꺼기를 먹고 살아야 하는 비둘기들이 다시 깃을 치며 하늘높이 날아오릅니다. 그래서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함께 느끼고 함께 먹이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듯이 나는 누군가에 의해 먹임을 입고, 함께 먹을 수 있고, 누군가를 먹일 수 있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살림의 잔치”를 펼치는 시작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살림의 잔치상, 생명의 밥상을 차리고 나누는 일에 함께 한 모든 교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더 열심히 하지 못한 아쉬움과 반성을 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할 때에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함께 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집시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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