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잔치, 생명의 밥상

마가 6:30-44 

호질기의(護疾忌醫)의 세상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희망을......

<교수신문>은 지난 연말에 교수 등 180명을 대상으로 언론 칼럼니스트, 주요 학회장 등 설문조사를 하여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 한해의 이슈를 네 글자로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2008년의 사자성어로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선정되었는데, 호질기의는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로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려 듣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의견을 구하는 게 상식이지만 정작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 힘든 한해를 보내는 동안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은 다양하게 제기되는 문제점에도 국민의 비판과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소통 차단이나 부족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귀를 열고 국민과 전문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우리가 교회에서 새해맞이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종로의 보신각에서 하는 타종행사에 참여한 국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현 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물론 이미 권력자의 주구가 된 듯이 KBS는 이러한 사실을 애써 숨기면서 왜곡보도를 하였습니다. 병을 숨기려다 자신을 망치는 법인데, 촛불 집회, 금융 위기 등에 정치 경제 사회적 지배자들은 상황에 걸 맞는 현실 진단을 하지 못하고 바람직한 전망을 내좋지 못했으며, 사익을 우선하거나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미봉과 임기응변으로 대응한 것이 오늘의 문제를 키웠습니다.

또한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2009년)의 사자성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화이부동은 공자가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다”고 말한 데서 비롯하였습니다. 화이부동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2009년에는 이념과 계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화이부동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경청하면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드린 송년예배의 본문과 제목이 같습니다. 그 때의 태양이나 지금의 태양이 다르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흘러갑니다. 새해를 맞이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시간과 우리가 살아갈 공간이 단지 주어졌기 때문에 사는 것과 내가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감당할 사명이 있음을 느끼며 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호질기의(護疾忌醫)의 세상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희망하는 때에 평범한 일상이나 해야 할 일 속에 내가 보냄 받은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삽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가진 것이 적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파송했던 열둘을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라고 하지 않고 “보냄받은 자”라고 해도 되고, 굳이 “사도”라고 한다면 예수님 이후에 마가공동체와 사도공동체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예수님의 일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들을 찾아 나섰던 사도들이 오히려 모여든 무리를 해산시킬 생각을 합니다. 무리를 먹여야 하는 사도들이 그들을 제각기 흩어지게 하여 각자가 사먹게 하려고 합니다<36-37절>. 이는 초대교회의 현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마가공동체의 현실에서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위상의 부정적인 모습을 과거 열둘(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주위의 마을로 보냄을 받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찾아 왔을 때에는 먹일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어 각자가 먹을 것을 해결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병 고침과 귀신 축출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먹이는 문제로 상징되는데, 정작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도들에 대한 혹독한 비판입니다.

사도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이백 데나리온으로 빵을 사서 그들이 먹기 위해서 주라는 겁니까?”하고 반문합니다. 먹는 것의 문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그 돈이 없거나 자기들이 수고하지 않기 위해서 무리를 흩어 보내려고 합니다. 그들은 없는 돈만 보이지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없는 것에 사로잡혀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게 합니다. “너희가 떡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저는 사도라고 불리는 열둘이 예수님에게 명령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목회자나 교역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내가 이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론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을 하려면 거기에서 무리수가 따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주라”고 하십니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갖지 못한 것을 베풀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이미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가 받은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가진 것이 받은 것임을 모르기에 왜 주어야 하느냐고 되묻거나, 돈도 없는데 무엇을 주라는 것이냐고 발뺌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진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오병이어(五餠二魚)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와 축복의 마음씨로

이제 예수님은 무리를 푸른 초장에 앉도록 하였고, 그들은 백 명씩 오십 명씩 떼 지어 앉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과 무리들은 광야로 나가서 피신했는데, 그들이 있는 곳이 바로 푸른 초장이라고 합니다. 초장[χόρτος]은 “꼴을 먹이는 장소”입니다. 그들이 그곳에 떼 지어 모여 있는 것 자체로 이미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목자를 잃은 어린 양 같아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듯이, 무리를 푸른 초장에 떼 지어 앉게 함으로써 먹게 합니다. 시편 23편이 연상됩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받아서 감사(축복)한 다음에 빵을 부수어(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도록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빵은 제자들로 하여금 나누어 주게 하였는데, 물고기는 직접 나누어 줍니다. 빵은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물고기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가르침과 자기 자신을 무리를 위해 내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드립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적은 양식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감사할 조건이 아닙니다.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2천 데나리온 어치의 양식이 아니라 겨우 한 사람이 먹을 양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조건도 아니고, 요즘 교회에서 하는 물량적 축복의 결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자기가 가진 것을 하늘로부터 받은 것임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유관념과 다릅니다. 하느님이 주셔서 받았고 또 받아서 감사하다면, 주신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어린 양 같은 무리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빵을 쪼개고 소유를 부수게 합니다. 빵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을 깨닫고 행함은 우리의 마음씨입니다. 감사의 마음, 축복의 마음은 나눔의 마음씨로 확장됩니다.

그 마음씨를 잘 표현한 글입니다.

먹을 때, 만물의 순환을 기억할 수 있는가.

걸을 때, 하늘의 선회를 기억할 수 있는가.

일할 때, 그 하는 일로 말미암아 행복한가.

말할 때, 그대 말에 간교함이 섞이지 않았는가.

물건 살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가.

갈등을 겪을 때, 조화를 이루고자 애쓰는가.

무엇이든지 내가 가진 것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씨는 호질기의(護疾忌醫)의 세상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펼치는 생명의 밥상, 살림의 잔치를 마련하는 시작입니다. 빵을 쪼개어 소유를 나누고, 깨달은 말씀을 몸과 마음으로 선포하는 일은 무턱대고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이나 다른 생명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입니다.

떼를 지어 모인 무리들처럼, 담쟁이처럼

그러나 그 일을 할 때에 우리는 때때로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벽, 각박한 현실의 벽, 가진 것이 적다는 벽, 누구와 어울리지 않고 누구와 사이좋게 지낼지 분간하기 어려운 벽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을 넘어설 용기는 무리가 떼를 지어 앉은 것처럼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벽에도 담쟁이를 심어 놓았는데, 도종환 님의 “담쟁이”라는 시가 우리의 마음을 잘 보여주면서 힘이 됩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서 새롭게 다짐하는 일은 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면서 새로운 생명의 밥상을 차리고, 살림의 잔치를 베푸는 것은 진정한 삶의 모습을 맛본 사람들의 몫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박은규) 집사님이 만든 노랫말의 “우리교회”(향린국악찬송 103장)처럼 하느님 나라가 바로 나의 삶, 나의 가족의 삶, 우리 교회의 삶의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잔치를 마음껏 차리고 펼쳐보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잔치를.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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