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누가복음 13:31-33

정진우 목사

  오늘 지구상에는 약 65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고 여러분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그 수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지만 모든 개개인이 서로 다른 특성과 모습을 지니고 있어 서로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일란성 쌍둥이라도 부모는 금방 그 차이를 압니다.

  세상에 단 한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모든 개개인은 그 자체의 고유 독특한 가치,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 특성과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 각자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생명의 주님이시며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누구도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조건이 다르다고 해서,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하늘이 부여한 절대적 가치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차이가 존재할 뿐 차별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우리 각자를 서로 다르게 만드신 분의 뜻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 다름이 불편하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때로 모두가 한 생각 한 뜻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원래부터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공존하는 세상,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체 인간은 단지 얼굴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이 우리 각자가 가야 하는 길도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내 갈 길!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고유독특한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에게 몇몇 사람이 찾아와서 경고를 합니다. “피하십시오. 헤롯이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태산 같습니다. “나를 죽이려 하는 것 헤롯의 일일뿐 아무리 그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내 털끝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여러분 믿음 안에서 자유한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닙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나의 삶을 좌지우지 못하게 하는 삶, 오로지 하늘의 뜻, 진리만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삶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무슨 업적이니 목표를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자유하는 인격으로 스스로의 길을 갈 뿐입니다. 참으로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실패니 성공이니 하는 것으로 재단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씨앗을 심는 일에 몰두할 뿐 거둘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제시대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말년에 왜 변절한 줄 아십니까?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독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독립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에 조급하게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들은 그만 늪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올해가 3.1운동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만 3.1 선언당시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이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패기만만하고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 아닌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당시 국제정세에 밝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일제시대 그 서슬 퍼런 시대에 3.1선언에 참여하지 않았겠습니까?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새로운 국제정세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갈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 기회가 오고 있다고 판단되지 않습니까? 그들의 인격과 지성과 믿음과 판단력은 그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년은 어떻습니까? 거의 모두가 변절합니다. 그리고 그 후 민족역사 앞에 참으로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읽을 때마다 세상에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지혜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바울 선생님의 성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 왜 그분들이 그렇게 똑똑하고 머리 좋고 잘난 사람들인데 왜 변절합니까? 그런 비범함 사람들조차 역사 앞에서 그렇게 무너진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세상에서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것, 무슨 신념이 탁월하고 판단력이 재빠르고 지혜와 국제 감각이 뛰어나고 그런 모든 것들 그게 본질적인 것도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민족에 대한 신앙, 역사에 대한 믿음, 이런 거창한 말들도 우리가 종종 하곤 합니다만 저는 솔직히 그런 것도 별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당시 3.1운동 할 때 우리보다 믿음이 약했겠습니까? 역사관이 우리보다 흐리멍텅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우리 서울제일교회 교인들보다는 못했을지 몰라도 분명히 저보다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저를 조금 압니다만 저는 그 민족운동가 33인들보다 한참 못 미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저들은 변절했습니까? 저는 이런 저런 생각하면 그들이 미워지기 보다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기 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몰라’ 그런 두려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성과 믿음, 신념, 신앙 무슨 역사적 지식, 그 모든 것은 어느 지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을 오늘 우리의 말씀 안에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다른 이가 있지 않았습니까? 아뿔싸, 그런데 그는 33인 중 16명이나 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불교의 스님이었던 만해였습니다. 만세를 부르면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고 믿었느냐는 일본인 검사의 질문에 그렇게 기대했노라고 대답한 인사들의 기개가 얼마가지 못해 친일파로 돌아섭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저들의 기대가 어긋났을 때 그들이 갈 곳이 어디였겠습니까? 그런데 같은 질문에 만해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 조선이 너희 일본을 병합했다면 일본인인 그대는 어떻게 하겠느냐?”
  칼끝처럼 명확하고 단단한 만해의 반문에 검사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만해는 나는 다만 조선인으로서 할 바를 했노라 담담하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할 바를 한다. 사정이 어떻던, 결과가 어떻던, 나는 나의 길을 갈 따름이다. 헤롯이 목숨을 노린다고 그만두자?! 아니! 나는 그래도 간다.

  새해가 되어서 우리는 모두가 새해 소망과 목표,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계획이 진정 나의 계획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그저 지시하는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리 가자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해 주신 무엇, 내 생명의 가치를 바쳐야 할 무엇입니까? 내 욕망충족을 위해 아름답게 포장한 것들입니까? 아니면 하늘이 내신 이 생명 그 하늘 뜻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까?

  인생이란 하늘이 한번 이 세상에 내신 이 내 한 생이란 내 길 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길도 아니고 바울의 길도 아니고 내길 가야 합니다. 마땅히 내 꿈을 꾸어야 합니다. 세상이 가리켜 준 꿈, 세상의 현란한 유혹에서 비롯된 꿈 말고 내 꿈 내가 진정으로 마땅히 간직해야 할 꿈.

  여러분 새해 새 소망 소중하게 간직하고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꿈과 소망이 진정으로 내 것인지를 다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것이기에 누가 뭐래도 무슨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아무런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에, 내 할 바를 다할 수밖에 없는 그 꿈, 그 자리에 한번 서보자고 오늘 성경이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기도합니다. 2009년 우리 교인들이 걷는 길, 그 길이 그저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가는 그런 길이 아니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자되고 축복받고 성공하고 그래서 2010년에는 더 많이 부자되고 더 많이 축복받고, 2011년에는 또 더 많이 부자되고 더 많이 축복받고 그런 길 저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목사지만 여러분이 그런 길로만 가면 그건 멸망에 이르는 길인 것을 제가 조금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9년 우리의 각자 가는 길이 생명을 내신 이, 나를 여기 살게 하신 그분의 뜻에 합당한 길이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2009년 우리의 길이 진정으로 나를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게 하신 그 분의 뜻을 깨달아 내 삶의 조건 속에서 무엇이 진정 나를 나 되게 하고 나를 참 사람 되게 하는 길인지를 찾아 나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왜 이 지구상 마지막 분단된 땅에 살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이 가난과 고통과 실패와 좌절 속에 서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세상의 수많은 교회 속에 그 진한 갈등과 고통의 역사를 가진 서울제일교회, 역사의 피 흘림 속에서 아직도 치유 받지 못하고 있는 이 서울제일교회 교인이 되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이 교회 서울제일교회,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혹은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 부르셨습니까? 나를 왜 우리 가정에, 이 학교에, 이 직장에 서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오늘 이 청년실업이 넘치는 세상에서 대학을 졸업하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이 기도할 일 많은 이 땅에 늙고 병들게 하셨습니까?
 
  나를 왜 이 모순 덩어리의 사회 현실 속에 믿음의 길에 서게 하셨습니까?

  지금 여기, 오늘 우리의 이 구체적 삶의 자리 속에서 나의 길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구에게는 그 길이 기도의 길일수도 혹은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사업하는 길일수도 더 많은 재화를 만들어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일수도 누구에게는 전도하는 일에 매진하는 길일수도 누구에게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일 수도, 각각 자리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겠지만 저는 우리가 걷는 그 길이 생명이 길이 될 수 있기만을 기도합니다.

  저는 우리 교인 모두가 그 어떤 결과에도 매이지 않는 자신의 길, 묵묵히 하나님 앞에서 걷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주님께서 동행해 주실 길, 주님이 기뻐하실 길, 그 어떤 실패나 위협으로도 털끝하나 자세를 흩트리지 않을 그 나의 길, 그 어떤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너무 목표가 넘쳐나고 모두가 성공의 깃발이 넘쳐나는 이 결과지상주의에서 해방되는 그런 길에 당당하게 서서, 2009년 나 하늘가는 길 걸었노라고 헤롯의 칼날이 나를 노린다하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간다고 선언하며 묵묵히 나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진우  ecumenian@g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