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불편함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목사님의 논지에 반대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도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가 굳이 “종교 다원주의”나 “종교 다원주의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은 이것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즉 종교의 다양성 문제를 이론으로 끄집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누구도 답이 없는 문제를 자신의 말이 답인 것 인양 호도되기가 딱 좋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올리신 글을 가지고 예를 들자면, “배타적 구원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전 기독교가 배타적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교리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에서도 “자기 종교가 아닌 이웃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그 종교도 한번 믿어봐라” 하고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배타적 구원관이 꼭 기독교에만 있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잘 아시는 이야기이시겠지만, 칼 라너(Karl Rahner)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것에 대해 언급했을 때, 불교나 힌두교의 학자들이 “그럼 익명의 불교인이나 익명의 힌두교인이라고 해도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 따먹기 같은 수준인 것 같지만, 전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전 기독교가 종교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범하게 되는 “우(愚)”가 이 일화에 압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종교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막상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뒤집으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웃에게는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자신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타적 구원관을 극복하자가 아니라 얼마큼 이웃 종교를 존중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또한 배타적 구원관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이나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열정과 필요에 의해 도입된 교리”라고 하셨는데요, 이 부분도 지극히 옳으신 지적입니다. 칼 라너의 제자 폴 니터(Paul Knitter)가 그의 책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에서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왜 구약의 사람들과 유대교의 사람들이 굳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초대교회 사람들이 예수의 입을 빌어 구원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하는 점은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 역시 배타적 구원관을 가지고서도 왜 오늘날처럼 그렇게 무식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더욱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 이 문제를 단순히 그 당시 기독교가 힘이 없는 종교, 소수의 종교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일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초대 교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잣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을 주 예수“만”이라고 해석한다고 해서 뭐가 그다지 틀린 말입니까? 왜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해석하는 “주 예수 이외에도”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성서에서 출발한 것입니까?
그리고 공격적인 선교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이 공격적인 선교정책의 좌우명으로 삼는 구절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마태복음의 말씀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심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에 맞게 어떻게 해석하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해석한다한들 공격적인 선교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가장 논란이 되는 “제자를 삼아”와 “세례를 주고”를 “개종시키라는 말씀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자를 삼는 것이 개종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까? 불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입니까? 이것은 “불교인더러 당신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리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곱씹어서 개종을 위해 증인의 일을 하지 않지만, 자신 스스로의 증언을 통해 개종이 일어난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의도하지 않았지만, 개종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시렵니까?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님이 그들의 선행이 개종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종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단지 은총이라고 하시렵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존 힉(John Hick)이 이야기했던 “신 중심의 다원주의”가 불편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부처님이 저 사람이 믿고 있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전 그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실증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 아닐까요? 전 그래서 오강남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기뻤지만, 또 한 편으로는 불편했습니다. 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변선환 선생님께서도 이러한 “신 중심의 다원주의”의 길을 가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히 선생님 학문의 깊이를 가늠한다는 것이 얼치기 학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번역하신 책이 존 힉의 “성육신의 새로운 이해”임을 볼 때 그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끊임없이 불교와의 대화에 정진하셨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오강남 교수의 책에서도 신 중심의 다원주의 혹은 종교 포용주의를 논하면서 성서를 출발로 한 것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골로새서”나 “에베소서”를 근거로 한 “범 우주적 사랑의 종교” 혹은 몰트만(J. Moltmann)이 말하는 “우주적 그리스도” 정도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전 종교의 다양성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차원에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장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전 종교의 다양성 또한 성서적 출발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를 설득할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조금 더 조용히 지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녹차의 꿈 schottroff@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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