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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사건 피해자들, “더 깊은 고통만 주는 국가”피해자들과 유가족,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없이 그저 책임만 회피한다” 비판
장성호 | 승인 2024.05.10 14:36
▲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사건 피해자들과 이들과 연대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교계 단체들은 항소심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책임회피만을 일삼는 행태에 분노했다. ⓒ장성호

9일(목) 오후 3시 서울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사건 국가폭력 사과·배상항소와 국가 폭력피해자 배상 신청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녹화공작·강제징집 피해자들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 NCCK인권센터,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EYCK(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한국YMCA전국연맹, 기독교대한감리회선교국정의평화위원회, 고난받는이들과 함께하는모임,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목원대학교민주동문회,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SCA) 동문회 등의 공동주최로 열린 것이다. 특히 이번 기자회견은 같은 날 예정되어 있는 항소 재판 전에 열린 것으로 항소심의 이유와 국가의 성의있는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소송은 지난 2022년 12월 15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소위 ‘녹화공작’ 으로 불리는 학생들에 대한 강제징집·프락치강요사건에 대해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권고를 결정에 따른 것이다.

사회를 맡은 황인근 NCCK 인권센터 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지난 해 5월 16일, 녹화공작(프락치강요) 피해당사자 故 이종명 목사와 박만규 목사는 1983년 벌어진 폭력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국가의 공식사과를 받기 위해 40년 만에 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후 1심 판결을 통해 국가가 각 9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소장은 그 사이 이종명 목사가 고문과 폭력의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은 이 목사가 사망한 것도 알지 못한채 피해자들도 모르게 방송에 사과를 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는 등 정부의 피해자들을 기만하는 태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더욱 좌절하게 했고 큰 상처를 주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번 항소를 통해 정부의 더욱 성의 있는 사과와 배상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항소심을 맡은 범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이번 항소심은 80년대의 국가의 잘못 뿐만 아니라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소송과정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부정하고 청구권의 시효가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2차 가해 또한 위법행위임을 명명백백하게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제라도 국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성의있는 사과를 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항소심 당사자인 박민규 목사는 “지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으로 인해 지난 수십년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이 치유될줄 알았지만 소송과정에서 피고 대한민국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이 소송의 기각만을 주장하는 태도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분노했다. 특히 “고 이종명 목사가 ‘판결문을 읽다보니 그때 끔찍했던 마음의 상처가 돋아나와서 또 괴롭고 아프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며 “국가의 책임있는 사과와 보상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 사진 위 시계방향으로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인 박만규 목사와 조봉호 선생, 조종주 사무총장 등은 한결같이 국가의 무책임한 모습을 비판했다. 또한 작고하신 고 이종명 목사를 대신해 항소심에서 본인진술시간을 진행한 이 목사의 딸 이봄 양은 가족들의 피해를 호소했다. ⓒ장성호

또다른 피해자로 발언에 나선 조봉호 선생은 “41년만에 이 자리에 처음 섰다”고 운을 떼며 “실제적 피해자는 200여명(공식인정피해자 187명)이고, 전체 피해자는 2000여명이 넘는 (2921명) 이 사안에 대해 국가가 분명하게 사과하지 않는 것과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조봉호 선생 역시 정부의 책임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마지막 발언으로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은 “18세 때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아무런 법적절차 없이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42년이 지나서야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해 주장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군에 불법격리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은 것”이라며 “이 문제에 저항하다가 고문당하고 의문사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 재판의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평생을 짊어지고 온 피해자들의 고통에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후 이어진 항소심에서 고 이종명 목사 대신 그의 딸인 ‘이봄’ 양이 재판정에서 아버지를 대신한 본인진술시간을 통해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당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세상을 등지게 된 아버지와 온 가족이 다 고통을 겪고 있는데 국가는 나라가 바뀌었다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유족에게 연락도 없이 유족을 조롱하는 언론에 사과를 했다.”고 비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의미있는 걸음을 떼기 위해 당사자인 아버지는 없지만 수많은 당사자들을 위해 사과해달라.”고 단호하게 진술했다.

대학생 강제징집은 1971년~1987년 학생운동에 가담한 대학생들을 군대로 끌고 간 인권침해 사건을 말한다. 이들 중 대학생 1000명 이상이 위수령(1971년), 긴급조치 9호(1975년), 계엄포고령(1980년) 위반 등 사유로 징집됐다. 강제징집에는 내무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보안사 등 국가기관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국방부가 작성한 ‘소요관련 대학생특별조치 방침’ 문건에는 ‘소요관련자는 징병검사실시, 신체상해 여부 등과 무관하게 입영조치하라’고 적혀 있다. 강제징집 피해자 174명 중 105명(60%)이 경찰에 의해 징집된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다. 강제징집 대상자들은 입영 이후에도 강제입영 대상을 뜻하는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돼 집중감시를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위수령과 긴급조치 등은 그 자체로 위법한 조치인데 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강제징집이 이뤄진 것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특히 녹화공작은 1982년 5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교 안에서의 사찰 활동을 강요한 일을 말한다. 보안사는 대상자 들에게 전두환 찬양서적 독후감, 학생운동 전력 반성문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장성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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