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과 과정신학의 대화(3): 민중신학에 쏟아졌던 비판에 대한 재고찰 1

김희헌 박사는 한신대와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공부하였다. 클레어몬트에 소재한 <과정사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후 귀국하여, 현재 한국민중신학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한신대와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민중신학과 과정신학의 대화(2): 민중신학이란 무엇인가?

민중신학과 과정신학의 대화(1): 연재를 시작하며 

민중신학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전 시기의 활력과 지지를 잃어가게 된 경위는 한국사회의 정치경제학적 여건이 복잡하게 변화되어가는 과정과 맥락을 같이한다. 새롭게 형성된 사회적 상황은 <민중>이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함축성을 음미하는 감수성까지 변경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중>이라는 개념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역사적 운동의 의미는 인정한다하더라도, 그 상징이 뿜어내는 기류(aura)에 흔쾌히 가담하는 일은 꺼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면 민중신학(그리고 민중운동)의 위기는 <민중>이라는 사회학적(sociological) 집단의 축소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그것의 가치론적(axiological) 의미의 퇴조에서 찾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왜 민중으로 상징되는 가치가 그 매력을 상실하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분명히 내외적인 이중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내적으로는 민중이라는 개념이 사회학적인 의미로 고착되면서 그 개념이 상징하는 보편적 가치의 토대가 위축된 것에 있다고 하겠다. 사회(과)학자들에게 민중은 범주화시킬 수 있는 특정한 사회적 집단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민중은 사회학적 의미를 넘어선다. 민중의식(사상)이 민중이라는 사회적 집단의 의식(사상) 자체가 아니듯이 말이다. <민중>이라는 개념은 진보하는 역사의 활력이 길러낸 정신을 가리키는 것에 가깝다. 이 정신은 진보의 결실을 보다 나은 사회적 질서로 끊임없이 물화(物化)시켜내지만, 그 질서 자체와 동일시될 때는 제도에 포섭된 노예로 전락하는 운명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중운동의 성취이자 덫이다.

<민중>이라는 개념이 상징하는 가치는 질서(체제)가 제공하는 향유의 조건에서 배제된 사회집단에 대한 헌신 자체에서 형성되지 않고, 그 헌신이 진보라는 모험을 감내할만한 보편적 (혹은 매력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것을 입증시킬 때에 형성된다. 따라서 민중운동은 민중(가난한 자)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 대한 헌신 자체로 정당화되지는 않는 듯하다. 보편성을 이끌어낼 매력을 갖추지 않는 한, 그 운동은 내부 가담자의 자아도취로 보이기 쉽고, 외부 관찰자에게는 이기주의로 비추이기 마련이다. 90년대 들어 전체 민중운동이 퇴조하였듯이 민중신학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중신학이 교회의 신학으로서 자기 정체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일에서 그 생기발랄함을 잃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점은 민중신학의 내부적인 문제로 앞으로 민중신학 진영이 해결해가야 할 과제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민중신학의 퇴조를 내적요인으로만 보는 것은 분석의 강조점을 파편화시켜 전체흐름의 조망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민중신학의 후퇴와는 대조적으로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주의와 보수주의신학이 한국교회의 주도권을 획득하여 갔던 것은 그 신학이 내적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가치를 길러냈기 때문이 아니다. 성장주의와 보수주의 신학은 그 외형을 다채롭게 바꿔가기는 했지만, 내적으로는 근본주의 신학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라난 화려한 열매에 가까웠다. 그 화려함이 시대의 유행을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그 힘은 내부에서 형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온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민중신학의 후퇴를 초래한 외적요인은 성공주의 신화의 사회적 신학적 득세를 가져 온 외적 요인과 동일한 것인데, 넓게 보자면 그것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을 딛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부상한 신자유주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질서로 등극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신의 약육강식의 질서를 성장주의로 합리화하는 신학을 후원하였고, 이 새로운 유행에 호응한 신학은 체제의 기득권자들이 베푼 미봉적 시혜에 만족하도록 피해자들을 길들이는 것으로 답례하였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정치사회적  체제뿐만 아니라 문화사상적 정신으로까지 확장될수록 성장주의로 화장을 한 근본주의 신학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전능한 힘을 발휘하여만 갔다. 이 절묘한 밀월관계를 타고 흐르는 근본주의 신학의 전횡에 대하여 사상적으로 깨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의무를 느끼지만, 그것은 체제모순의 극복이라는 최대주의적 운동만으로도 개체적 영성의 함양이라는 최소주의적 금욕만으로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21세기를 맞은 민중신학의 자리는 바로 여기다. 과거 학문의 영광은 고증학으로 재현될 수는 없고, 방법론의 갱신을 통한 정신의 계승적 재구현으로 가능할 것이다. 오늘의 민중신학은 위에서 서술한 내외적인 도전들을 어떻게 맞설 것인지 다양한 지혜를 강구하고 모아야 할 것이다.

이글은 민중신학에 쏟아진 그 동안의 비판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 일차적인 이유는 이러한 비판들이 민중신학의 퇴조를 설명하는 적절한 사유로 여기는 듯한 시중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민중신학에 쏟아진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잘 알려진) 비판이 민중신학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자면, 민중신학은 두 그룹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비판을 받아왔다. 첫 번째 비판그룹은 보수주의 진영이다. 이들은 민중신학을 구성하고 있는 근본 사상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했으며, 이 비판은 민중신학의 핵심이라 할 ‘민중 중심적 관점’ 즉 <민중의 입장에서 신학하기>에 그 초점이 모아졌다. 다른 또 하나의 비판은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이루어진 비판이다. 이들은 과거에 민중신학이 해왔던 신학 작업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는 민중신학의 시효가 끝났다는 입장을 가졌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보수진영으로부터 민중신학에 쏟아진 비판의 종류는 실로 무수하고 그 색조 또한 다양하지만, 신학적 주제로 분류하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신학의 자료(source)를 무엇으로 삼을 것이냐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론과 연관된 기독론의 문제이다.

첫째,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성서의 권위와 전통적인 교리에 의존하여 신학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황성(contextuality)이 지닌 신학적 가치를 최소화하는 입장을 취한다. 나용화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는 “한국민중신학에 대한 신학적 평가(1988)”라는 글에서 민중신학을 비판하는 근거로 이점을 강조하였다. 말하자면, 민중신학은 성서가 “절대적인 규범 (absolute norm)”이라는 신학적 전제를 갖고 있지도 않고, 전통적 교리 안에 있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eternal and unchangeable)” 요소에 주목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학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보수진영이 모든 신학에서 동일한 것(성서와 교리)이 <반복>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이때의 상황성이란 “복음의 불변적 요소가 서로 다른 문화와 실존적 상황에 놓인 다양한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기 위해 언어의 형식으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만 인정될 뿐이다. (김은수, “한국의 민중신학: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제기한 비판,” 1998) 이런 제한적인 기준으로 볼 때, 김세윤 교수(Fuller 신학교)가 이해하였듯이, 민중신학은 “(복음의) 상황화의 과정에서 혼합주의(syncretism)”로 전락한 사례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보수진영의 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이 과도하게 민중에게 집중하여 기독교 신학의 절대적 준거점이라 할 그리스도 중심성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김세윤은 “민중신학이 기독교 신학인가? (1987)”라는 글에서, 민중신학은 민중을 이상화하고 우상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민중의 자기구원(self-redemption)이라는 민중신학의 기본적인 사상이 기독론적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국에는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길(the true path of the faith)”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보았다.

물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신학자들 역시 민중신학이 가진 긍정적인 가치를 인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민중신학이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기독교 복음의 이름으로 사회적 봉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일깨우는 “수단(instrument)”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양자의 신학적 제휴 가능성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중신학의 주장과 보수신학의 비판 사이에는 거의 건널 수 없는 해석학적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글은 양자 사이에 놓인 해석학적 간격을 좁히려고 시도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해석학적 간격을 전제할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토대로 서로의 신학적 입장을 명료화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판단은 항상 독자의 몫이다.

우선,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복음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주제와 관련된 보수신학의 비판에는 자기반성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보수신학은 그 형성과정에서 이미 한국화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학적인 자의식(hermeneutic self-conscioiusness)을 확립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전통주의에 매몰되어 교리적 충실성을 신학 작업의 최고덕목으로 삼고 있다. 이런 경향성은 한국개신교 선교의 대부분이 근본주의 신학을 모태로 하여 시작된 역사적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과 아직도 이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한국의 보수신학)은 지극히 근대적인 확신 즉, 신학이 신앙에 관한 객관적인 학문(objective science)이어야 한다는 학설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주의(objectivism)를 신봉하는 근대적 확신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부각되어진 사실은 이제 신학이란 반드시 상황적일 수밖에 없고, 상황적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베번스(Stephen B. Bevans)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신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있다면 오직 상황신학뿐이다. 신학을 상황에 맞게 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는 실제로 신학의 정언명령(imperative)이다.”

민중신학은 그 신학적 관심사를 한국사회와 역사라는 독특한 상황에 ‘의식적으로’ 맞추어 전개했다는 점에서 베번스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기독교 신학의 한국적 상황화(localization)라는 주제는 보수신학에게는 전통신학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죄책감>의 요소이지만, 민중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신학의 <성취>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성(contextuality)이란 담론의 진리성을 판가름할 시금석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그 무엇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일 수 있단 말인가? (칼빈이? 바르트가?) 이 저항적 질문은 이제 신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상식이 되었다. 보수주의 신학이 자신의 인식론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근대적 절대주의(absolutism)는 사상적 지진아들에게 남겨진 유품이라 할 수밖에! 오히려 탈근대주의 시대의 지혜는 상황성이 편협성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주관이 소아병으로 흐르지 않도록, 다원성이 파편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할 매력적 호소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있다. (이 관심은 연재과정에서 계속해서 노출되겠지만, 그 구성적인 답변은 <민중해석학>이라는 제목으로 이 연재의 말미에 하려고 한다.)

두 번째 민중신학의 신앙론과 기독론에 관한 보수신학의 비판은 어쩌면 민중신학이 완수하지 못한 신학적 과제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과거에 민중신학은 스스로를 (민중사건에 대한) “증언(witness)”의 신학이라 하였지만, 신학은 증언만으로 자신의 과업을 다했다 할 수 없다. 증언을 담아낼 사상의 축조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중신학의 <민중 메시아론>과 민중신학에서 구속론적(soteriological) 고백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이고 어떻게 가능한 지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신학적 주제들 즉, <역사적 해방>과 <종말론적 구원>의 관계, <죄, sin>라는 신학적 개념과 <한, 恨>이라는 사회문화적 개념 사이의 관계 등과 연계되어 토론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제 역시 과정신학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추후에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할 점은, 보수신학의 기독론적 비판은 민중신학과는 판이한 해석학적 관점에서 생긴 것으로써, 민중신학이 “민중의 자기구원”이라는 개념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함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 결함의 사상적 뿌리는 보수신학의 세계관인 초자연주의적 이원론(supernatural dualism)이다. 민중신학의 “민중의 자기구원”이라는 개념은 한국 역사에 등장한 민중(운동) 현상에 응답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이 개념은 민중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써, 전통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신학적 공헌(contribution)이라는 것이 이 글의 기본 입장이다.

(민중신학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비판에 대한 고찰은 다음 연재에서 다룬다)

김희헌 목사(한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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