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끌로 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간 그 길을 오늘날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간 길입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십자가(수난)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란 뜻으로 길을 의미하는 “비아(via)”와 슬픔, 고통(고난)을 의미하는 “돌로로사(dolorosa)”가 합쳐진 라틴어입니다. 이 길을 순례하는 순례객들은 비아 돌로로사 거리에 특별히 의미 있는 열네 지점을 표시하고 각 지점마다 걸음을 멈추어 처형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십자가의 길은 성서와 전승의 기록들을 되살려 14처에서 일어났던 일을 묵상하며 함께 하는 길입니다.

5-6세기까지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체포된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드론 계곡을 지나 대사제 가야바의 집을 거쳐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길이었지만, 점차로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제약을 받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은 13세기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행해지다가 1540년경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서 안토니오 요새(빌라도 총독 관저가 있던 아랍인 고등학교 마당)로부터 골고다(예수님 무덤성당)까지입니다. 1처부터 9처까지는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따라 있고, 10처부터 14처까지는 무덤 교회 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가셨던 그 길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하여 순례를 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빌라도 법정 자리였던 엘 오마리오 학교 마당에서부터 십자가 행진이 시작됩니다. 3,4,5,6,7처를 기념하는 교회는 십자가 행렬이 재현 되는 이때에 개방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의 느낌을 주는 좁은 아랍인 시장 길을 지나 무덤 성당으로 이어집니다. 2001년 2월에 교회청년들과 함께 순례하였을 때에 예루살렘에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순례하는 것도 시장판을 정신없이 스쳐갔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할수록 시장통을 가로지르는 십자가의 길이 의미가 있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걸었던 십자가의 길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아웅다웅하면서 싸우거나 활짝 웃으며 행복해 하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날마다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몸과 마음으로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

오늘날 가톨릭 성당이나 피정의 집에는 항상 14처로 된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그림이나 조각이나 사진을 붙여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요즘에는 개신교회나 수도원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산책로 중간 중간에 각각의 묵상 처를 만들어 놓고, 그 입구에 통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놓고 순례하는 사람들이 직접 지고 가면서 묵상할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습니다. 14처의 십자가 길이 각 교회에 세워지게 된 것도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자유를 얻게 되자 사람들은 예수님 무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님 무덤을 찾는 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헬레나는 꿈에 예수님 무덤이 땅 속에 묻혀 있는데, 그 위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세워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무덤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교회입니다.

예수님 무덤 자리에 교회가 세워지자 사람들은 자연히 이 무덤교회를 찾아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시대에 예수님 무덤교회는 특히 참회하는 고행자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교통편이 발달한 것도 아닌 중세시대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만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공평치 못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부 수도회들을 비롯해서 교회 단체들은 유럽 여러 도시에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교회를 본 딴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조각이나 그림 등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된 장소들을 표시했습니다.

이제는 굳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교회들이 있는 도시들로 가서도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각 교회마다 예수님 수난의 길을 묵상할 수 있도록 교회 안에 나무 십자가로 수난과 관련된 주요한 지점(處)들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 후에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십자가의 길을 오늘날처럼 14처로 정하였습니다.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는 14처 묵상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함께 프란시스코의 뜻을 이어받은 수도사들의 민중을 향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묵상하기 위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남미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의 『정의의 길 십자가의 길』(1980)이라는 책을 읽고 타이핑 하면서 묵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과 영성을 가다듬기 위해서 14처 묵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은 우리에게 언제나 있는 공기나 너무나 자주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처럼 추상적으로 되었습니다. 자칫 우리의 육감을 놓아버려서 예민하지 않으면 관념과 감정의 고난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관념이나 감정의 고난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의 고난을 외면하고 억지로 예수님의 고난을 받아들여서 체험하려는 경향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만 중요하고,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외면하는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요즘엔 다양한 삶의 현장이 있어서 예수님의 고난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몸과 마음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묵상해야 할 예수님의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대신하여 기꺼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 공동체를 비롯한 처음 교회의 공동체들은 그 예수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현재 자기들의 고난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

14처 묵상 중에서 다섯 번째는 “구레네 사람 시몬, 예수께서 십자가 옮기심을 돕다.”입니다. 로마 군인들의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길에서 쓰러집니다(3처). 넘어짐은 굴욕이며 시련입니다. 이 넘어짐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오만하기까지 한 우리를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오만과 사랑은 공존할 수 없으며, 사랑의 탑을 높이 쌓기 위한 기초공사에 겸손을 필수적입니다. 시련은 겸손을 낳고 겸손은 사랑을 낳습니다. 시련과 굴욕으로 단련되고 성숙해지고 겸손해진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을 평안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장까지 끌고 가야겠기에 로마 군인들은 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을 징발합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가도록 위협합니다. 그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합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쪽 해안지방, 지금의 리비아로서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더럽게 재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 법정에 모여 있던 그 많은 군중을 놔두고, 또 골고다 언덕길 좌우에서 구경하고 있던 수많은 구경꾼들을 놔두고 시골에서 올라와 바삐 자기 길을 가던 그가 붙잡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는 붙잡혀 예수님과 함께 억지로 골고다 길을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쳐 쓰러졌을 때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성서 어디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후 투덜대며 바삐 자기 길을 갔는지,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는 것까지 보고 갔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에서 죽는 것까지 보고 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후대의 전설에 의하면 구레네 사람 시몬은 계란 장수였는데,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시몬이 집에 돌아가 보니 계란이 모두 무지개빛으로 변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생겨났다고도 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결코 더럽게 재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가던 길에서 붙잡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기는 했지만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16:13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입니다. 그 둘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처음 교회의 좋은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소개하는 것은 그들이 마가 공동체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억지로 붙잡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시몬에게서 우리는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할 많은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능력이고 가능성입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한 배를 탄 공동체입니다. 또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몸과 마음에 하느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거룩하고 귀중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 길에 구레네 사람 시몬을 동참시킨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약자와 강자가 한데 어울려 자기의 위치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눌 때,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으며 서로를 받쳐주는 지팡이가 될 때 우리는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정의로운 하느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억지로에서 기꺼이로

올해 사순절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온숨”이라는 제목의 생명평화 백배서원 음반을 따라서 절 명상을 하려고 합니다. 100배를 하는 시간은 35분 정도이고 그 후에 25분 정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절하는 것이 요즘에는 자기 수련의 방편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손을 모아서 합장하고, 몸을 굽혀서 절을 하는 행위는 나의 모든 것을 모아서 누군가에게 드린다는 것입니다. 나를 철저하게 버리고 겸손하게 낮추는 행위입니다. 또한 어떤 목적을 향하여 몸과 마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몸이 힘들기도 하지만 억지로라도 반복해서 하다보면 기꺼이 마음이 열리고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처음에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갔더라도 그 길에서 예수님을 깨닫고 나중에는 기꺼이 예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마가공동체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과 로마에 있는 교회에까지 그의 이름과 아들들이 알려져 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억지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는 그 일이 옳은 일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몫입니다. 억지로를 기꺼이로 바꾸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편지 - 이세협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압니다. 이것이 당신이 내 아픔을 정말로 아시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의 아픔을 정말로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압니다. 이것이 당신이 내 눈물의 이유를 정말로 아시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의 눈물을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압니다. 이것이 당신이 내 한숨과 절규를 놓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의 한숨과 절규를 모르고 지나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내가 당신의 아픔을 조금만 알아도, 당신의 눈물을 조금만 헤아려도,

당신의 한숨과 절규를 조금만 알아채도 고맙다 하십니다.

그것이 내가 결국 당신을 지나칠 수 없게 된 이유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압니다. 이것이 이제 내가 당신과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이유입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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