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설 잘 쇠셨습니까?
 
올해는 토끼해입니다.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토끼는 아주 특별한 동물입니다. 토끼는 작고 연약한 동물이면서 동시에 평화와 이상향의 상징입니다. 여러분 토끼의 원래 고향이 어디입니까? 달님이 토끼의 고향입니다. 그게 우리 민족의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은 달빛 속에서 토끼 두 마리가 방아를 찧고 있는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본 이상향입니다.
 
왜 달빛 속에서 토끼가 보였을까요? 왜 달빛 속에서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의 토끼를 보았을까요? 왜 그 토끼들의 손에는 들린 절구와 떡방아를 보았을까요? 연약한 토끼 두 마리가 서로 돕고 노동하며 사는 세상, 그것이 우리 민족이 꿈꾸어 온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작은 자들의 연대, 연약한 것들의 협동, 칼과 창이 아니라 절구와 떡방아가 있는 평화로운 세상에의 꿈,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참으로 깊은 상징이 어려 있지 않습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입니까? 누가 하나님 나라 들어갑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토끼같이 연약한 것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지요.
 
이 연약한 토끼가 민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별주부전입니다. 이 별주부전이라는 이름은 한자 문화 속에서 조금 있어 보이려고 지은 이름이고 사실은 별주부전이 아니라 토끼전입니다.
 
바다 속의 용궁에 사는 용왕님이 병이 들었는데 백약이 무효입니다. 마침내 토끼의 간이 특효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별주부 자라가 토끼를 잡아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가 참 많이 들어 온 이야기이지요.
 
왜 바닷속 왕이 병에 들었습니까? 주색잡기가 빠져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술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말이지요. 올해 술 좀 그만 마시는 한해가 되자 그런 결심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여튼 서른 넘은 사람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됩니다. 청년 때 과음도 해보고 하는 것이지만 서른 넘어서도 술에 매달리는 것은 인생이 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십대 때 코뮤니스트가 아닌 자는 가슴이 없는 것이고 서른 넘어서도 코뮤니스트인 자는 머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서양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청년 시절 뜨거운 가슴 때문에 폭음도 해보고 하는 것이지만 서른 넘어서도 술에 기대 사는 이는 나이를 잘못 먹은 것입니다. 이 용왕님처럼 말입니다.
 
이 용왕님 정말 대책 없이 마셨습니다. 그래서 병이 났습니다. 사실은 이런 이야기는 단지 술 많이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욕망의 전차 같은 당시 지배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용왕님과 토끼 그것은 바로 불의한 왕권과 힘없는 민중의 대결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민담 속에 숨어 있는 코드는 바로 민중의 해방과 구원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병들었으면 약초를 캐 먹든지 하지 왜 토끼의 간을 먹으려고 합니까? 힘센 용왕과 연약한 토끼의 대비를 통해서 당시 민중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억압 그리고 억압을 뚫고 나아가는 민중의 해방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담속의 이야기와 성경속의 이야기는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잡혀 온 토끼는 죽음을 눈앞에 둡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런데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도 토끼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는데 오늘은 생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12년 후에 다시 토끼해가 돌아온다면 그때 가서 해야 하겠지요. 살아난 토끼가 자라의 부인과의 로맨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정말 또 다른 강력한 여성신학적 모티브를 가진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오늘은 아쉽게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12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이야기는 토끼는 그 죽음의 상황,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토끼는 포기를 모릅니다. 절망을 모릅니다. 늘 죽을 일, 늘 간을 빼앗길 일이 가득한데 일일이 절망한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토끼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토끼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발휘해서“임금님이 잘 모르시는데 임금님이 간이 필요하셨다면 진즉 말씀하셔야지 저는 그것도 모르고 간을 집에다 두고 왔습니다.”라고 능청을 떱니다.
 
바다 속에 사는 자들은 육지 동물의 풍습을 잘 알지 못하니까. 그만 간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토끼에 속아서 토끼를 풀어주지 않습니까?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상상력! 새날을 여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입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라!
 
주색잡기에 빠진 왕이 지배함으로써 연약한 것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살아남아 연약한 것들조차 넉넉히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면 아무도 꿈꾸지 않은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십자가에 달려가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질서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서로 사랑하라니요. 서로 경쟁해야지요. 서로 나누고 섬기라니요. 서로 빼앗고 서로 누르고 물리쳐야지요. 서로 돕고 협동하라니요.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원수는 갚아야 맛이 아닙니까? 오른 뺨을 치며 왼 뺨을 돌려대라니 이건 순 억지가 아닙니까?
 
새날을 여는 상상력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고 새날을 여는 지혜였습니다.
 
연약한 것들 작고 초라한 것들의 세계에서 늘 일어나는 것이 억울한 일이고 아픈 일이고 죽을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가득한 세상, 그것은 오래된 민담의 세계나 우리의 세계나 다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비밀 그것이 절망이 아니라 지혜였다고, 그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상상력을 가지고 그 현실을 극복하고 위기를 탈출하는 새 날을 여는 용기였다고 토끼가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지혜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생명의 지혜 새날의 상상력!
 
현실이 어둡다고 위기라고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 새날을 여는 상상력입니다.
 
여러분 누가 물량주의에 병든 한국교회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습니까? 누가 구제역으로 병들어가는 세상의 뭇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까? 누가 이 텅 빈 예배당의 빈자리를 채우고 누가 창립 60주년 교회의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원망하고 절망하고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 새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나서야 합니다. 그 새로운 상상력의 주인공은 잘나고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토끼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을 택하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약한 것, 가난한 것, 힘없는 것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약하면 약할수록, 힘없으면 힘없을수록, 가난하면 가난 할수록 더 하나님의 선택에 가까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가난과 연약함을 새로운 내일의 위한 기회로 삼느냐 아니면 절망과 좌절의 기회로 삼느냐 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돈 없고 못 배우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 그런 상태를 내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생의 지혜 새날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정신이 썩었다면 개인이건 사회건 그건 내일이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가난해도 믿음으로 서 있는 자에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토끼가 용왕을 이깁니다. 힘없는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를 이깁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이깁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이 믿음으로 생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새해의 삶을 다짐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묘년 새해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풍성한 은총, 새 날을 여는 생명의 지혜 새날의 상상력이 풍성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

정진우 목사(서울제일교회 2011.02.12)
 

정진우 목사  wchur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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