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큐메니안 한별

"잘 살겠다는 탐욕이 꾀임을 당하여 우리의 눈은 멀어버렸습니다. 거짓을 진실로 알고, 사망의 길을 잘 사는 길이라고 우겨댑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어리석은 미몽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함께 읽는 기도문의 내용은 얼핏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영롱한 바다와 눈부신 햇빛, 오밀조밀 모여있는 어촌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수평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던 눈길이 이내 찌푸려지는 곳, 그 곳엔 거대한 원자로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제서야 마을 곳곳에 걸린 현수막들에 새겨진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안전구역 확대하라! - 길천마을 주민일동"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위치한 꿈만 같은 풍경의 마을,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부자가 된다는 거짓 꿈에 속았던 마을주민들은 이미 그 꿈에서 깨어있었다.

▲ 마을 곳곳에 붙어있는 현수막. ⓒ 에큐메니안 한별

'원전 없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 연대'는 11일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원전 폐쇄 기도회를 열고 그 출범을 알렸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모든 생명과 우리의 후손들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행동 할 것"이라며 ▲원전 신규건설계획 중단 ▲고리1호기 작동  중단,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계획철회, 전체 원전에 대한 안전진단 실시 ▲가동중인 원전을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안전시설 확충과 대국민홍보 실시를 정부에 요구했다. 원전폐쇄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겠다는 결의다.

▲ '원전 없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 연대'는 11일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원전 폐쇄 기도회를 열고 그 출범을 알렸다. ⓒ 에큐메니안 한별

▲ 성명서 낭독 중인 주현미 기독교환경연대 간사와 남기평 감리교청년회 총무(왼쪽부터). ⓒ 에큐메니안 한별

양재성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은 이번 연대 출범의 동기와 관련해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완전 폐쇄하기로 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도 원전 수명이 다하면 연장하지 않고 모두 폐쇄하기로 했으며, 일본은 올 8월에 80%의 원전을 중단해보고 전력공급에 큰 차질이 없으면 내년에 큰 결단을 하기로 했다"며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원전 수출 80기를 계획하고 있고 국내 원전을 40기까지 늘릴 예정이니 이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 "사고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원전 사업을 오히려 확장하고 문제점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언론통제하는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말하는 김창규 목사 ⓒ 에큐메니안 한별

김창규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대표)도 "후쿠시마 이후, 체르노빌의 비극이 한국에서도 재현되지 않을까 무섭다"며 "사고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원전 사업을 오히려 확장하고 문제점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언론통제하는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과 관련, 김종수 아힘나 대표는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각 단체의 원전반대 움직임을 바탕으로 5월과 6월 계속되는 회의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교회에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와 이후 '교회가 원전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한 뒤 비로소 오늘 출범하게 되었다"며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추최측은  기장생명선교연대, 비폭력평화행동, 고난함께, 아힘나, 감리교평화행동,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통일시대평화누리, 생명평화마당, 생평평화의료마당,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예수살기, 기장생태운동본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인천생명평화기독연대, 개척자들 이상 15개 단체가 소속되어 있으며, NCCK 생명윤리위원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감리교환경선교위원회가 협력단체로 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리원전은 국내 최초의 원전이자 가장 위험한 원전

기도회에 참여한 정수희 활동가(에너지정의행동, 부산 반핵시민대책위원회)는 "현재 5개의 핵발전소가 가동중이고 계획대로라면 부산에 12개의 핵발전소가 생기게 된다"며 "연구결과 사고 발생시 부산과 경남에서 320만명이 이틀만에 전부 대피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그것은 불가능 하다"고 경고했다.

▲ '현장의 소리'를 전하는 정수희 활동가(에너지정의행동, 부산 반핵시민대책위원회). ⓒ 에큐메니안 한별

그는 특히 "외국인들이 고리 핵발전소가 일반 가옥과 너무 가깝게 위치한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며 "얼마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도 이보단 멀리 떨어져 있고 전 세계에 어느 원전도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장에서 나누어 준 안내지를 통해 "이제는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핵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문제는 고스란히 동네 주민들의 몫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고리 원전의 사고 발생 횟수는 국내 모든 원전 사고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많으며, 매 사고 때마다 3개월 정도는 마을에 방문하는 사람이 뚝 끊긴다고 한다. 정씨의 말에 따르면 이 때문에 동네 주민들은 사고가 나도 일단은 '쉬쉬'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7년 '고리원전 안전성의 선례 보여준다'며 지역주민들과 방문했던 곳이 '후쿠시마 원전'

정씨는 "지난 2007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해당년도로 수명이 다한(30년)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추진하며, 선진국 선례를 보여주기 위해 주민들을 데리고 방문한 곳이 바로 후쿠시마였다"며 "바로 그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주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사고 직후 주민들은 고리 원전 1호기 폐쇄와 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 철회를 논의하던 중 고리 1호기와 4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민들은 언론과 대중에 노출되면 지역경제가 휘청거리게 된다는 것을 익히 경험해왔기에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물었다"고 설명했다.

▲ 기도회 중 원전 앞을 지나가는 원전 반대 시위 차량. 지역 내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 에큐메니안 한별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도 스포츠센터 건립 등에 쓰여 실효성 떨어져

그는 발전소 주변지역에 지급되는 지역지원금과 관련해서도 "한달에 만원 약간 넘는 정도에서 전기요금을 감면 받고, 아이들이 있는 집은 아이들 대상으로 장학금이 지급될 뿐 주민들에게 직접 생활비가 지원되는 것은 아니"라며 "발전소 주변 지역은 다른 어촌과 달리 연령별인구비가 각각 1:1에 가까울 정도로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발전소 노동자들의 가족이 인근에 거주하기 때문이고, 그들을 제외하면 장년층의 인구비율이 월등히 높은데도 장년층의 이용빈도가 떨어지는 화려한 스포츠 센터를 짓는 데 지원금이 쓰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원금의 실효성이 거의 없는 상황임에도 일부 언론들은, 고리원전 사고에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주민들의 모습을 주변지역 지원금과 연관시키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원자력 발전이 최고의 효율을 가진다는 그간의 홍보에 힘입어, 그 효율은 몇 세대에 걸친 셀수 없는 목숨을 담보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잊혀져 왔다. 사고 한번에 900년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원전의 위험성은 기술의 발전과 상관 없이 항상 유효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 세계가 원전 폐기 계획을 세우기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상식을 역행하는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은 각계각층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 기도회 후 원전 입구로 행진 중인 참가자들. ⓒ 에큐메니안 한별

▲ ⓒ 에큐메니안 한별

 

전동균 기자  journalist@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