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전 중국군 약 95만을 포함 무려 4백만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한국전쟁을 일시 중단하는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그간 남쪽에서 이승만이 격렬하게 반대했음에도 결국 정전협정은 이루어졌다. 협정 4조60항은 평화정착과 외국군철수문제를 매듭지을 것을 명시했다.

정전협정을 위배한 한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그러나 미국과 이승만 한국은 이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10월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평화정착과는 담을 쌓았다. 이 결과 한반도는 끊임없는 전쟁위기 속에 빠져 거의 4-5년마다 전쟁위기를 겪는 꼴이 되었다. 그야말로 우리의 목숨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된 것이다. 

또 외국군 철수는커녕 남쪽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무려 66년이란 기간 동안 미군이 주둔하게 되고, 그들이 작전통제권을 거머쥔 채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전쟁결정권과 전쟁수행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대조적으로 북쪽은 1958년 중국군을 철수시킨 이후 외국군이 주둔하는 일을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이 결과 ‘주권 없는 주권국가’라는 지구상 유례가 없는(현재 이라크 정도임)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수치스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끄럽다는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남녘땅의 국방을 책임진다는 역대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들은 더욱 그렇다. 생사여탈권을 남에게 빼앗긴 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프랑츠 파농이 이야기 하는 ‘식민화된 무의식’이라는 심적 예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작년 6·25발발 60년을 맞아 이런 전쟁위기와 국치(國恥)의 극한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5·24남북단절 선언과 10여 차례 이상의 한미연합 전쟁연습으로 한반도는 오히려 전쟁위기의 파국으로 내몰렸다.

어안을 벙벙케 하는 한미연합전쟁연습

작년 8월27일 저녁 9시 문화방송 텔레비전 보도 첫 머리는 어안이 벙벙한 소식을 전했다. 어제 끝난 한미연합 을지전쟁연습을 통해서 한미군대는 다섯 가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는 보도였다. 첫째, 전쟁발발 두 달 만에 평양을 점령하고, 둘째 ‘북의 최고지도자를 생포하고’, 셋째 미군이 주도해 북의 핵무기를 제거하고, 넷째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차단하고, 다섯째 경찰과 통일부가 북한자유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는 2008년부터 언론에서 끊임없이 나돌든 바로 북한급변사태대비계획이고 작전계획5029와 이의 확대판으로 무력통일 전략이었다.

이러자 쿠바주재 북측 대사 권성철은 만약 미국과 남측이 북을 침공하면 북은 핵무기를 쓸 수밖에 없고 성전(지하드)으로 대응하겠다고 맞받아쳤다. 남과 북이 그야말로 막장식의 공박을 펼쳤다. 어디 이 뿐인가? 조지 워싱턴 핵항공모함과 F-22전투기까지 동원한 한미연합 전쟁연습 등에 중국은 맞불 전쟁연습으로 대응하면서 항공모함킬러라는 동풍21C/D 미사일을 공개하였다. 이에 미국 해군장성은 중국이 이 미사일을 사용하면 미국은 핵무기로 반격해야 한다는 폭탄선언으로 응수했다.

전쟁위기는 한반도에서부터 동북아에까지

필자는 을지전쟁연습 직후의 문화방송 보도를 보자 남북 간의 국지전은 시간문제라고 단정 지었다. 통탄스럽게도 우리는 이 예측대로 11·23연평도 포격전과 12·20보복포격에 의한 전쟁위기라는 소름끼치는 전운을 겪었다. 아직도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도 못한 천안함사고에 대한 5·24선언으로 남북 사이는 이런 화급한 상황에 빠졌다.

더 나아가 세계 최대강국인 중·미 사이에도 극도의 군사적 대결이 펼쳐졌고 이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남·북·중·미의 각축 마당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야 하는가? 외세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분단된 상태에서 그들의 구미에 맞춰 마냥 자기의 묘혈을 파는 자기 부정은 이제 분단 노년기를(65년) 넘긴 시점에서 종말의 막을 펼쳐야 하는 게 아닌가? 

평화·통일의 객관적 최적기인 차이메리카라는 과도기

그렇다. 이 결정의 시기는 이미 객관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지구촌은 현재 새로운 세계질서 이행을 위한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라는 과도기인 차이메리카 시대에 접어들었다. 곧 일방적 무력과 강압에 의존해 세계를 지배해 왔던 미국의 단극패권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쇠잔해지고 있다. 나라 살림의 거의 1/2을 빚으로 사는 나라이면서도 부자감세를 일삼고 전쟁만 일으켜 전쟁비용이 천문학적이 되다 보니 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신 3조 달러를 넘는 외환보유고와 구매력 기준 GDP가 미국과 맞먹는 중국은 옛날의 중화주의 질서체계로 향해 부흥의 돛을 올리고 있다.
이미 한국의 수출은 1/3이상, 일본은 1/4이상 중국시장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국의 미국 시장 수출의존율은 겨우 10% 수준이다. 이로써 차이메리카는 정치·군사패권은 미국행사, 경제 지도력은 중국영역으로 분업화되어 있는 이중(二重)권력분립체계 구도인 것이다. 

바로 이 과도기야말로 우리 한반도에게 평화와 통일을 향한 절호의 기회를 객관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분단이 노년기가 되도록 한반도 냉전분단적대체제를 강제해 왔던 미국이라는 기존 외세가 서서히 힘을 잃고 있고(미 국가정보위원회 2008년 미래 예측보고서 <2025년 글로벌 트렌드>와 미국 주류는 점진적 영향력 쇠퇴 예측, 역사학자 맥코이 등은 2025년 제국의 몰락 예측), 새로 부상하는 신흥 외세인 중국은 아직 힘의 한계에(특히 군사력 수준에서) 놓여 있는 상태인 시대, 이 과도기야말로 우리 남과 북의 민족자주역량이 발휘될 공간이 크게 확장되어 평화와 통일의 나래를 훨훨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구조는 인간의 주체적 행위 없이 새로움을 생성하지 못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정석이다. 이제 태생부터 통일부를 없애겠다면서 대북 적대도발정책을 휘둘러 북의 붕괴론에 입각한 무력통일 불사를 외쳐 왔던 이명박정권은 역사의 퇴물로 사라지면서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겉으로는 전략적 인내라면서 실제로는 이명박 정권의 적대정책을 그대로 차용한 오바마 미국은 90년대 중반 클린턴정권의 과오를 반복하더니 이제 임기 막바지에 와서야 출구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북미협상과 6자회담의 재개라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길을 택한 것 같다.

객관적 구조에 주체적 실천행위를

이미 평화에 대한 큰 가닥은 합의가 되어 있고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2005년의 9·19공동성명 원칙과 북의 핵실험 이후 합의한 2·13 이행합의가 그것이다. 미국이 요구해 왔던 한반도 비핵화와 북이 요구해 왔던 평화체제를 각기 수용해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동시에 이행하기로 했다. 전쟁광 부시조차 평화협정을 공식적으로 네 번이나 언급하면서 비핵화는 이미 2단계 마무리에 이르렀다. 북은 원자로 냉각탑도 폭파하였고 풀루토늄 추출 관련 자료를 미국에 넘겼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 비핵화 마무리 단계에서 검증이란 다음 단계 이행사항을 갑자기 일방적으로 끄집어내어 2·13합의이행을 중단시키고 말았다. 바로 평화협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하는 시점에서 그들이 1994년 10·21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기의 의무인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판을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이제 미국이 할 일은 2·13합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10·21제네바합의도 2·13합의도 결국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미국에 대해 북은 이번에는 거의 마지막인 우라늄 핵개발 카드를 섣불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평화협정에 대한 미국의 이행담보 없이는 말이다. 곧 재개될 북미회담과 6자회담은 이를 두고 북과 미국 사이 오랜 밀고 당김이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 평화통일운동진영이 할 일은 명백하다. 이제까지 직무유기한 평화협정을, 그것도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를 담보하는 진정한 평화협정을 기필코 실현하도록 압박하고 견인하는 것이다. 이에는 외국군인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과 북이 각기 맺고 있는 군사동맹을 폐기하고, 남북이 상호군축을 실시하고, 이에 따라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의 핵무기를 폐기하고, 남북 화해협력을 통한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전략적 목표 속의 전술적 실천을

이러한 이정표를 우리 스스로의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널리 알려 국민 대부분이 당연한 전략적 과제로 여기고 삼도록 해야 한다. 이에는 제주강정해군기지나 평택미군기지 건설·이전·확장 등이 장차 미국의 대 중국 포위 일선으로 중미간의 첨예한 군사대결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 남북의 길이가 8-900km 수준인 한반도에 남한 공군이 공중급유 훈련을 받는 것은 결코 북보다는 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아심 등의 거시적인 문제점에서부터 고엽제와 한강 독극물 투하 등의 미시적 범죄행위 등에 이르기까지 포괄해야 한다. 이들 전술적 실천과 전략적 목표와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이번 ‘민중의 힘’과 평통사 등이 주도한 ‘7·27 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 실현운동 한 마당’과 같은 실천운동은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평화통일연구소)

강정구  unikoreaun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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