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간만에 온 방문객으로 인해 그이 마음은 들떠있다.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96년도 급성폐렴, 98년도 고혈압, 2000년도 다시 고혈압. 이게 신기철(34세) 씨의 모친이 쓰러진 내력이다. 참으로 운명의 장난은 정신없이 계속되어 온 터다. 가본 병원만 해도 마을의 조그만 병원부터 안성, 인천, 청주, 서울 등지의 크고 작은 병원 들이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모친을 간호하던 부친마저 폐암으로 2004년도에 운명을 달리 한 것. 거의 10년의 세월이 격동의 기간이었던 셈. 병마와 싸우는 소용돌이 속에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에도 있듯이 그의 형제들은 이미 손을 들고 말았다.

이에 남매 중 막내인 그가 선택된 것. 이유는 단지 미혼이라는 것과 순하고 착하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어머니 병간호가 이제 3년이 되어간다.

강아지가 유일한 친구

▲ 어머니외에 하루 중 제일 자주 만나는 유일한 친구가 강아지들이다. 그래서 그는 강아지가 고맙기만 하다.

처음 그의 집(안성 죽산면 장계리)에서 만나기로 한 날, 그는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듯.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싶어 학수고대가 따로 없다. 보자마자 무슨 새색시 맞이하듯 한다. 그가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의 생활은 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만날 집안을 뱅뱅 돈다. 식사 챙겨드리기, 집안 청소, 자세 바꿔드리기, 대소변 받아내기 등등. 수족을 전혀 못쓰고 누워만 있는 어머니의 손발이 되는 일은 제대로 된 외출 한 번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을 못한다.

그의 유일한 친구가 앞마당에 매어 놓은 강아지 두 마리. 사람을 보려면 마을로 직접 나가야 한다. 생필품 구입 시 외출하는 것은 그에게 작은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그래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사람이 방문하는 시간. 누가 와서 말동무를 해주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늘처럼 말이다.

“그럼 지금 내가 정말 좋은 일 하고 있는 거네요.”라는 나의 너스레에 오래간만에 그의 얼굴이 웃음으로 활짝 피어난다.

나는 날고 싶다

▲ "나는 날고 싶다. 하지만 병든 노모때문에 날개를 기꺼이 접었다. 힘들 뿐 후회는 없다. 오히려 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친구들은 보면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데......”
“결혼은 둘째 치고 내 생활을 찾고 싶어요.”
“지금도 대학가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아요.”

보라. 젊은 날의 모든 날개를 잠시 접고, 오직 모친을 위해서만 집중하는 아름다운 청년을. 한창 활동하고 자리 잡아갈 나이에 그는 그렇게 모친에게 날개를 맡긴 게다. 그래도 그의 계획은 야무지다. 장차 모친이 돌아가시는 경우에 어떻게 할지를 그의 머리에 구상을 끝낸 지 오래다. 직장을 구해 돈을 벌어 제일 먼저 32평에서 33평 정도의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게 그의 첫 계획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더 크게 후회하게 될 것”

▲ 5월 8일은 어머니에게나 기철 씨에게 가슴 아픈 날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같이 병든 노모의 육신에 꽃을 달아드린다.

“수없이 피하고 싶었고, 죽고 싶었어요. 남들은 불쌍하다고만 하지 진심으로 저를 이해를 해주거나 대화해 주지 않아 더욱 힘들었어요.” 그의 뼈아픈 진실이 속살을 드러낸다.

그래도 그로 하여금 고통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아직도 있게 하는 힘은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이다. “어머니가 이렇게 쓰러진 것도 다 자녀들 위해 고생하고 희생하신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잘하고 있다는 마음보다는 늘 죄송한 마음이 들지요. 후회는 없어요. 다만 힘들 뿐이죠. 이렇게라도 안하면 더 큰 후회를 할 테니까요.”

그래서 5월 8일은 그와 어머니에게는 가슴 아픈 날이기만 하다. 어머니가 직접 움직이며 활동하던 당시엔 어버이날이면 옷이랑 양말을 꼭 사서 챙겼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다만 몸과 마음으로 1년 365일 어머니의 아픈 육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뿐.

알고 보니 그도 장애 2급

▲ 어머니를 돌보면서 유일한 소일거리는 있는 집(안성시 죽산면 장계리) 앞 텃밭에서 풀을 뽑는 일이다.

그도 장애 2급을 판정받은 장애인이다. 95년부터 발병한 그의 병명이 ‘퇴행성 질환’으로 오인 되어오다 지난해가 되어서야 ‘뇌병변’이라는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된 것. 그 전엔 형제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오다 지난해부터 기철 씨 앞으로 기초수급대상자 급여가 나온다. 그래도 군을 제대하고 나서 피자가게 점원 등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미래를 설계해오던 그다.

어머니가 워낙 중환자라 받아주는 곳도 마땅찮고, 받아 준다는 곳은 너무 고가를 요구하는 탓에 어머니를 요양원에도 뜻대로 맡기지 못해 장애인 아들은 속만 탄다. “인터넷도 어머니 때문에 끊었어요. 컴퓨터에 빠지다보면 어머니에 대해 소홀할 것 같아서요.” 라는 그는 한마디로 근래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청년임에 틀림없다.

어머니는 눈만 멀뚱멀뚱

그의 어머니는 말을 다 알아듣지만 전혀 반응을 못한다. 외관상으로는 눈만 멀뚱멀뚱 하는 것이 유일한 반응이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한 채 장애인 아들에게 몸을 의탁하는 어머니의 타들어가는 속은 오죽하겠나 싶다.

“막내야, 수고 많다. 나 때문에 아까운 청춘을 보내고. 내가 얼른 죽어야지. 내가 니 마음 다 안다.”라는 듯 어머니의 말없이 슬픈 눈이 껌벅거린다. 그래도 기철 씨는 그런 어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해줘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전화로라도 말동무 해주실 분은 신기철 씨 집(031-675-3860)으로 연락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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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평택 벼룩시장 신문에도 올렸습니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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