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토요일에 싱가폴 총선이 있었죠?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싱가폴은 집권 ‘인민행동당’(PAP: People's Action Party)이 거의 일당독재를 하고 있는 나라인데요, 이번 총선에서도 인민행동당이 의회의석 84석 중 82석을 석권하면서 압승을 거뒀습니다.

이번 총선은 고촉동 전 총리에게서 당권을 물려받은 리셴룽 총리가 처음으로 치른 총선이라는 의미가 있는데요, 리셴룽 총리는 싱가폴의 실질적 지도자인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입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minister mentor' 우리말로 하면 ’사부(師父) 장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지지율 떨어진 집권당, 선거 앞두고 국민에 현금 나눠줘

이번 선거는 의석으로 봐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압승이었지만, 지지율을 봐서는 집권 인민행동당으로서 걱정해야 할 일이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고촉동 총리 지도하의 2002년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은 75%의 지지를 받았는데요, 이번 총선에서는 단지 67%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인민행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약간의 위기를 느꼈는지 선거일을 몇일 앞두고는 일종의 금권선거를 자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은 싱가폴 국민들에게 한 사람당 12만원에서 160만원까지 현금을 나눠주었습니다. 명목은 그럴듯한데, ‘몇년간 싱가폴이 경제성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성장의 과실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돈을 몰래 나눠주면 금권선거라는 욕을 먹을텐데, 싱가폴 정부는 공개적으로 돈을 뿌린 셈입니다. 이것도 금권선거임은 틀림없겠죠?

▲ 싱가폴의 집권 인민행동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싱가폴 국민들 사이에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거죠.싱가폴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1998년에서 2003년 기간동안 최하위 20%의 명목소득이 거의 15% 하락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돈으로 하면 매달 월급에서 50만원 정도가 떨어져 나간 거라 합니다.

싱가폴 경제는 전체적으로는 계속 성장을 해 왔고, 현재 구매력 평가 GDP는 거의 35,000달러나 될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의 과실이 한쪽으로 치우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이 때문에 일부 국민들의 표가 집권 인민행동당에서 야당인 ‘노동당’으로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리콴유 전 총리도 이러한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리콴유 전 총리는 소득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유럽식으로 사회복지 재정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리콴유 전 총리는 유럽식의 사민주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평등을 달성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싱가폴은 심각한 문제에 빠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스트-65 세대의 권위주의적 정치 반대

또, 집권 인민행동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한 원인으로 세계화에 따른 경제 양극화 외에 다른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싱가폴에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싱가폴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분석입니다.최근들어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를 중심으로 리콴유 가문과 싱가폴 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른바 ‘포스트-65 세대’ 그러니까 싱가폴이 독립한 1965년 이후에 태어난 젋은 세대들이 싱가폴 정치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겁니다.

싱가폴 선거는 투표가 의무입니다. 그래서, 만일 투표를 안 하게 되면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이번 선거에서도 리콴유 전 총리는 당연히 당선되었고,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의회에 있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후임인 고촉동 총리도 선거에 당선되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10년전쯤에 싱가폴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만나는 사람들한테 ‘왜 당신들은 민주화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두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지금도 살만한데 민주화해서 뭐하냐?’고 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었습니다. 지금 다시 싱가폴을 가면 특히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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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규 님은 외무고시 외교통상부를 거쳐 국제문제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현재 EBS '김민웅의 월드센터'에 고정게스트로 출연 중입니다. 이 글은 방송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동규  athenian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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