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교수는 자신의 고희를 맞아 펴낸 이 책에서 서구 사회와 그리스도교가 놓치고 버린 물음을 동양에서 찾았다. ⓒ에큐메니안
이정배 교수는 자신의 고희를 맞아 펴낸 이 책에서 서구 사회와 그리스도교가 놓치고 버린 물음을 동양에서 찾았다. ⓒ에큐메니안

고희를 맞아 쓴 책이다. 20대 신학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50년 세월이 흘렀다. 유럽 유학 생활 포함하여 10년을 배웠고 30여 년을 칠판을 뒤로하여 살았으며 명예퇴직 후 지금껏 세상의 눈으로 기독교를 바라봤다. 종종 작금의 나를 당시의 나와 견줘 볼 때가 있다. 그때의 순수한 열정 대신 비판적인 신학적 사유가 오늘의 나를 추동하고 있다. 무게의 축이 달라진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열정 없는 사유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지금껏 내게 사유는 현실과 사랑하는 싸움의 산물이었다. 이 책 『‘역사 유비’로서의 개벽신학』(신앙과 지성사, 2024)은 20대 초의 신학적 질문을 숙성시킨 나름의 답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1.

학창 시절 교회를 전부로 알고 살았던 나는 부모 뜻에 반해 신학교에 입학했다. 평생 유교적 가치와 무속신앙에 젖어 사셨던 분들에게 실망과 큰 아픔을 안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소통되는 ‘예수 이름 외에 구원 없다’는 이념화된 명제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목사, 장로 자제들인 동료들과 처지가 다른 나로서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대학을 떠날 생각을 하던 차 유럽서 귀국한 변선환 선생을 만났다. 그분을 통해 이 땅의 고유한 종교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음을 희열을 느끼며 수용했다. 이후 ‘동양의 하늘이 서양의 하늘과 다르지 않다(西洋之天則東洋之天[서양지천즉동양지천])’는 탁사 최병헌의 맥을 이은 감신의 토착화신학 전통에 마음과 혼을 바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 유교와 기독교 대화를 중심으로 학위를 마쳤고 토착화론을 발전적으로 계승코자 했다. 감신대의 전통을 이룬 최병헌, 정경옥, 윤성범, 이신, 변선환의 끄트머리에 내 자리가 있다.

2.

이번 책은 이런 영향사 속에서 구상되었고 상당 기간 숙려하여 서술되었다. 그래도 이전 나의 스승들 시각과 견줄 때 크게 3가지 측면에서 다를 것이다. 지금껏 사용된 ‘토착(土着)’이란 말 대신 ‘토발(土發)’을 강조했고 유교와 불교 대신 동학의 개벽 사상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가톨릭과 개신교를 설명하는 두 신학 원리, ‘존재 유비’(Analogia entis)와 ‘신앙 유비’(Anlogia fidei) 대신 ‘역사 유비(Analogia historiae)’란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개별 주제에 관하여 설명할 내용이 많으나 이하에서 가능한 대로 약술하겠다.

먼저 ‘토발’은 기독교보다 수용자인 이 땅의 종교문화 시각을 우선하겠다는 발상이다. 기독교의 이식과 접목에 관심한 앞선 토착화론과 변별된다. 민족의 종교이념이 기독교를 수용하고 거부할 수 있는 주체란 뜻도 담겼다. 기독교와 종교(문화)간의 주객 관계를 뒤바꾼 것이다. 민중을 텍스트로 성서를 컨텍스트로 보자는 1세대 민중신학 논지와 흡사하나 이 땅의 근원적 종교성에 무게를 실었기에 상호 차이가 있다.

기존 토착화가 불교, 유교 등 소위 식자종교에 관심했다면 ‘토발’은 시종일관 민중 종교성을 담지한 동학에 천착한다. 주지하듯 동학은 유불선(성리학)은 물론 단군신화, 천부경 등 민족 고유한 사상과 잇대어 있다. 동학을 통해 잊힌 하느님을 다시 발견했다는 말도 회자 된다. 그래서 ‘다시’ 개벽이다.

동학이 서세동점 시기 정세적 판단에서 비롯한 사실 역시 중요하다. 지금껏 기독교 신학은 동학을 부분적으로 예컨대 신론(범재신론), 생태론, 수행론 등 주제별로 혹은 민중혁명적 차원에서 원용해왔다. 동학을 총체적으로 수용할 신학적 구조(방법)를 찾지 못한 결과이자 반증이다. 수운 탄생 200년을 맞아 양자의 관계를 정립할 혜안이 필요했는데 위 책에서 ‘역사 유비’란 개념으로 그 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앞선 두 신학 체계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3.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한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의 유무에 있다. 가톨릭은 그의 자연(Physis)이해를 수용했고 개신교는 이를 지웠다. 가톨릭 신학의 핵심인 토미즘은 히브리적 초자연 신관과 희랍적 자연관을 ‘존재 유비’로 엮은 것이다. 양자를 부정, 배타로 보지 않고 자연을 초자연의 흔적으로 봤던 결과이다. 자연을 긍정하되 초자연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여기서 가톨릭의 신 중심적 포괄주의 신학이 여기서 비롯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웃 종교인들을 가시적 서구 기독교인과 변별되는 ‘익명의 기독교인’이라 명명할 수 있는 근거였다.

반면 자연의 능동성을 부정한 개신교는 오로지 신적 초월성만을 의지했다. 이를 위해 은총과 성서를 강조했고 오로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요청했다. 믿음 없이 신과 관계(접촉)할 길이 없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자연신학을 부정한 ‘신앙 유비’라는 말뜻이 바로 이것이다. 기독론 중심의 배타주의가 개신교의 에토스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존재 유비’는 ‘역설’로서, 개신교의 ‘신앙 유비’의 경우 ‘변증’으로 달리 언표되기도 한다. 초자연이 자연 속에 내주한다는 ‘역설’과 달리 ‘변증’은 부정된 자연(인간)이 오직 믿음만으로 회복되는-구원받는- 일을 일컫는다.

지금껏 서구 기독교는 중세와 근대에 형성된 이 두 신학 원리를 시대에 따라 변형시키며 성서를 해석해 왔다.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전통에 근거한 토착화론 역시도 이런 틀을 벗기가 쉽지 않았다. 이 두 원리가 현실 세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역사 유비’란 신학 원리를 새롭게 찾아야 했다.

4.

지면 관계로 상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이 개념의 배경에는 묵시문학을 연구한 이신(李信)의 ‘영의 신학’과 발터 베냐민의 역사철학이 자리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슐리얼리즘(Surrealism)이란 사조를 거쳐 갔다. 이를 경유한 이신은 아시아적 사유, 특히 수운의 종교체험을 묵시 의식과 등가로 봤고 후자 역시 유대적 역사 경험을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각자 자기 전통으로 돌아가 ‘다른’ 기독교의 탄생을 위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신의 경우 제 역사적 조건을 판단 중지할 시, 저마다 다른 정황이겠으나 의식의 지향성 자체를 ‘관계성 없는 관계성’ 혹은 ‘역사적 일관성이 없는 유사성(혈족관계)’이란 말로 표현했다. ‘다시 개벽’을 외친 수운의 종교체험을 이신은 ‘전위 묵시의식’이란 말과 동류로 여긴 것이다. 이에 더해 벤야민은 ‘성좌(星座)’개념을 도입하여 각각의 의식들이 하늘의 별처럼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별자리가 존재하듯 나름 연계되었음을 밝혔다.

이런 이론을 종합, 정리하여 필자는 ‘역사 유비’란 신학 방법론을 한국 신학계에 제사했다. 앞선 두 유비가 ‘역설’ 혹은 ‘변증’으로 불렸다면 이것은 양자 간 ‘일치’에 방점을 두게 될 것이다. 초자연의 신, 혹은 그리스도 대신 통/공시적인 성령의 역사를 앞세운 까닭이다. 이전 유비가 진보를 추동했다면 작금의 ‘역사 유비’는 실패한 이전 역사를 중시한다. 과거와 현재의 지난한 연속성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작가 한강이 현재를 구원하는 주제를 과거라 봤던 사실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다른 면도 있다. 죽은 자가 산자의 의식을 깨우지만 결국 살아있는 우리에게 실패한 역사를 달리 만들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동학만큼 정세(현세)적 판단에 예민한 종교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렇듯 ‘역사 유비’를 통해, 혹은 하느님 영의 통/공시적 활동으로 관계 맺은 묵시와 개벽은 홀로세를 붕괴시킨 자본세의 위기 앞에서 함께 다른 종교, 다른 세상을 창발시켜야만 한다.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 이해도 이런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묵시가 원시 기독교의 모체란 성서 신학자의 견해를 수용한 결과이다.

이정배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특히 동학의 이론을 적극 수용했다.
이정배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특히 동학의 이론을 적극 수용했다.

5.

필자는 이 책에서 개벽 신학의 세 본질을 3개의 ‘공’, 즉 공(空), 공(公), 공(共)이란 개념에 근거하여 설명했다. 여기서 내걸었던 한 줄 명제는 다음과 같다. “서구 기독교는 ‘공’(空)을 몰랐고, 자본주의 경제는 ‘공’(公)을 독점했으며, 대의민주제는 ‘공’(共)을 파괴시켰다”. 한 마디로 개벽신학은 상술한 3개의 ‘공’ 개념을 갖고서 홀로세를 자본세로 이끈 서구에 대한 정세적 판단을 시도한 것이다. 서구에서 비롯한 종교, 경제, 정치의 총체적 한계를 문명 비판적 시각에서 적시했다고 볼 수 있다. 수운의 ‘다시 개벽’(Great Opening)과 묵시 의식이 작금의 정황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한 것이다. 인간 삶을 근거 짖는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개벽을 아울러 역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종교적 개벽은 다석 유영모의 ‘없이 있음’ 곧 ‘빈탕’ 개념에서 유추했다. 필자는 이것을- 차이가 없지 않으나-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 개념과 등가로 수용했다. 이 두 개념은 ‘없음’을 ‘있음’ 보다 우선했고 나아가 ‘있음’과 ‘없음’을 포월, 초극하는 ‘잇없’의 차원이라 생각했다. 반면 서구 기독교의 경우 공(空)을 잃고 ‘유(있음)’에 집착했기에 결국 타자 부정적 종교적 배타주의(십자가)를 낳았고 자연과 분리된 인간중심주의를 초래했던바 결국 인류를 기후 붕괴 시대에 이르게 했다. 꽃을 꺾고자 했을 뿐 정작 그에게 자리를 내준 허공, 곧 ‘빈탕’을 보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6.

두 번째 ‘공’(公)은 경제적 개벽을 적시한다. 필자는 두 번째 ‘공’을 첫 번째 ‘공’(空)의 육화라고 생각한다. 허공인 우주는 결코 누구의 것이 될 수 없고 모두의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이란 말속에는 모두가 사이 존재란 뜻이 담겼다. 때–사이, 터-사이 그리고 사람-사이가 바로 그 뜻이다. 사이 없이는 때도, 터도 사람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사이는 바로 첫 번째 ‘공’(空)과 뜻에서 다르지 않다. 자리를 내어주는 텅빈 ‘공(空)’의 자각 없이 두 번째 ‘공’(公),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구약 시편(24편 1절)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하느님 것’이란 두 번째 ‘공’(公)과 뜻이 같다.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로서 한울을 먹는다’(以天食天[이천식천])는 의미도 여기서 찾을 일이다. 세상에 한울 아닌 것이 없기에 한울을 먹는다는 말은 공(公)적 존재로 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 역시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본디 ‘하느님 것’(公[공])을 ‘자기 것’(私[사])이라 갈취한 이야기로서 말이다. 여기서 구원은 사적으로 취한 바를 공적으로 돌리는 일이겠다. 그러나 사유재산 제도가 너무도 견고하게 자본주의 체제를 견인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이 와중에 자본세가 초래한 기후 붕괴 시대에 석과불식(碩果不食[석과불식])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가 기본소득, 돌봄 가치에 잇댄 공유재, 공유경제란 이름으로 재소환되고 있다. 본 책에서 필자는 첫 ‘공’(空)이 회복되지 않으면 두 번째 ‘공’(公)이 실현될 수 없음을 강변했다. 그럴수록 다석의 ‘빈탕’과 동학의 ‘무위이화’가 항차 공유경제를 이룰(일굴) 개벽 신학의 단초인 것을 역설할 수 있었다.

7.

마지막 ‘공’(共)은 정치적 개벽에 해당한다. 주지하듯 근대 이후 대의제에 기초한 서구 민주주의는 정치의 기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어긋나면 미개한 나라, 독재라 평했고 그처럼 되길 권유 받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전리(全理)로서 설득력이 반감되는 추세이다. 목하 이 땅에서 보여지듯 광장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 없이 올바른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본래 대의민주주의는 서구 기독교 체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기독교적 중보(대리자) 개념이 정치적 대의제의 사상적(종교적) 기초였고 사적 믿음의 강조가 사유재산제도의 토대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로써 함께 할 ‘공’(共)의 의미가 소수 대표 자들에 의한 대의제로 축소되었다. 그 결과 남북문제뿐 아니라 경제체제에 있어서 민(民)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가 사라졌다. 달리 사고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부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다석의 ‘바탈’이나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인간은 누구나 하늘을 가졌고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세 번째 ‘공’(共)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직접 민주제의 가능성이 종교적으로 보장된 까닭이다. 여기서는 하느님도 인간과 협력하는 존재가 된다. 수운이 말하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의 한울님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종래의 기독교적 신관과 견줘 변별력이 크다. 인간 또한 사적 개인이 아니라 상호 돌봄의 주체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돌봄 자체가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두레와 민회와 같은 정치체제의 흔적이 남은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세 번째 ‘공’(共) 또한 첫 번째 ‘공’(空)의 회복과 더불어 이룰 과제이나 이것이 가능할 시, 빼앗긴 두 번째 ‘공’(公) 역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공생 공빈(共生 共貧)의 차원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교회 역시 민회, 두레와 같은 민주 정치 제의 속성을 지녔다는 성서학자들의 견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처럼 정치 현실과 분리된 예배공동체로의 존속은 교회의 축소 내지 자기 부정일 수밖에 없다.

8.

이렇듯 3개의 ‘공’개념에 기초한 개벽 신학의 얼개를 갖고 이 책은 각기 주제에 걸맞는 작금의 현실을 찾아 분석, 서술했다. 첫 번째 ‘공’(空)과 관련해서는 다석 사상의 핵심인 ‘없이 계신 하느님’ 이해를 논했고 성 프란시스코의 ‘하느님의 가난’을 풀어 냈다. 이 들 두 사상을 비교하면서 성 프란시스코가 당시 루터의 역할을 했다면 오늘 세상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봤다.

두 번째 ‘공’(公)과 관련해서는 생태계 위기 현실을 살폈다. 공(公)을 해쳐 소수의 사(私)를 취하는 자본세의 위기를 서술했고 포스트 휴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물었던바 유발 하라리의 시각과 의미 있는 깊은 대화를 나눴다. 공유경제를 위해 사회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면서 함석헌 사상과도 비판적으로 대화했다.

세 번째 ‘공’(共)과 관련해서는 직접 민주주의에 기초한 남북 간의 관계 정립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고 중립국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이울러 두 번째 ‘공’(公)의 회복을 위해 경쟁이 아닌 돌봄의 문화를 역설했고 작금의 교회가 예배 지상주의를 벗고 직접 민주제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를 제안했다.

9.

부족한 부분도 눈에 뜨인다. 설명이 충분치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아 보인다. 우선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제안, 곧 ‘역사 유비’에 대해 더욱 정교한 이론적 설명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 개념을 ‘하느님 영’의 시각에서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석은 물론 함석헌, 이신의 슐리얼리즘 신학, W. 벤야민의 역사철학 그리고 E. 훗설의 현상학 등에 관한 공부가 깊고 많아져야 하겠다.

다음으로 필자는 토발(土發)의 관점에서 개벽 신학이란 말을 최초 사용했고 학계의 토론을 기대했다. 이를 위해 그간 연구되지 않았던 다석과 동학 간의 연관성을 나름 방식으로 풀어내야만 했다. 다석과 함석헌이 동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지-필자가 분석한 이유 외에 어떤 다른 것이 있을지-를 더욱 살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공’(空)에 근거한 개벽 사상이 이 땅의 정치, 경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더욱 현실 공부가 필요할 것인바, 그와의 정직한 대면을 위해 개벽 신학의 논리를 철저하게 계발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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