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영 신임 사장은 취임사에서 에큐메니안을 통한 한국교회개혁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에큐메니안
남재영 신임 사장은 취임사에서 에큐메니안을 통한 한국교회개혁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에큐메니안

한국교회  위기와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종교학자들은 오늘 우리 사회가 탈종교시대에 진입했다고 봅니다. 통계도 그렇습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는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1998년부터 2023년까지 5차례에 결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를 했습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한 1998년 종교인구와 비종교인구의 비율이 57%와 47%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2023년 5차 조사보고서에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비율이 37.1%와 62.9%로 역전되어 급격한 탈종교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같은 지료에서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의 비율이 2012년에는 10.5%였으나, 2023년 불과 10년 사이에 26.6%로 2.5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년 우리나라 개신교 인구는 771만 명인데 그 가운데 226만 명이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로 드러났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전 방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3 내란쿠데타 이후 광장에서 보여준 개신교 극우파시즘세력이 마치 기독교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비쳐지면서 나락에 빠진 한국교회는 그 출구를 찾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 무렵 에큐메니칼 진영 안에서 이런 위기의식으로 예민한 성찰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사장 김영주, 한기민)’이 시작합니다. 한기민 이사회 공식논의를 통해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한기민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플랫폼으로 에큐메니안을 산하단체로 받아들여 본격적인 교회개혁운동에 나서기로 결의합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안 창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에큐메니안 이사회를 구성하고 채수일 박사를 이사장으로 추대합니다. 이후 한기민은 에큐메니안을 새롭게 재창간하는 과정을 거쳐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의 명실상부한 플랫폼으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한기민은 에큐메니안 운영과 실무를 총괄하고 책임질 사장으로 본인을 호명합니다. 그 배경에는 첫째, 제가 2021년 이후 전광훈이 한국교회에 끼친 해악을 공격적으로 비판하다 현직 목사로서는 처음으로 법정투쟁까지 벌여 최종 승리하게 된 경험이 있고. 둘째, 오랜 시간-NCCK 정의평화위원장과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 상임대표로-비정규직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오랜 현장운동의 경험을 가졌고. 마지막으로, 감리교 본부 기독교타임즈의 재창간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취재편집부장으로 재직한 경력을 고려할 때 한기민이 지향하는 에큐메니안을 통한 교회개혁운동의 최적임자로 저를 지목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한기민의 요청은 제가 평생을 붙잡고 살아온 거룩한 대의(大義)와 일치하기에 저는 에큐메니안을 통한 교회개혁운동이라는 엄중한 부름 앞에 기꺼이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오늘 에큐메니안의 현실을 보면서-대의와 현실 그 사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괴리감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사장으로 저는 한기민의 요청대로 에큐메니안을 에큐메니칼 운동의 교회개혁 플랫폼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재창간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지금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의를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고 한 점 부끄럼 없이 수행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에큐메니안을 위한 헌신에도-미력하지만-저의 혼신을 다 쏟아 사장직을 감당해나가겠다는 저 자신의 결의를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아울러 한국교회개혁을 위하여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에큐메니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막구지기’ 20년 희생과 헌신을 거름삼아

2005년 창간한 에큐메니안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반을 둔 유일한 정론지입니다. 그 연조 또한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큐메니안의 20년 역사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울산 대암왕공원에는 ‘막구지기’라는 곳이 있습니다. ‘구지기’는 그 지방 방언으로 ‘구석자리’라는 뜻입니다. ‘막’은 ‘맨’이라는 말입니다. ‘막구지기’는 ‘맨 구석자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에큐메니안은 지난 20년 동안 오롯이 에큐메니칼 운동을 기반으로 자기 정체성을 세워 왔습니다. 하나 에큐메니안은 에큐메니칼 영역에서는 ‘막구지기’였습니다. 그 존재는 확실했지만 어떻게 연명해 왔는지 거의 괸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막구지기 20년 에큐메니안은 일꾼들의 개인적 희생과 헌신으로 메꾸어온 역사였습니다.

오늘 이사장과 사장의 취임식은 지금까지 에큐메니안을 지켜온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이를 거름삼아 에큐메니안의 새로운 출발=재창간을 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장의 직을 맡은 저는 이제 에큐메니안이 어제의 에큐메니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실천적으로 확인시켜 드려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여 저는 새로운 에큐메니안의 사장으로 그 첫 발을 지역교회와 함께 내딛습니다. 에큐메니안은 지사를 통해 지역교회와 함께 한국교회의 수구보수적인 토양을 객토하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DNA를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취임식을 갖는 오늘까지 5개의 에큐메니안 지사(대구, 부산, 광주전남, 전북, 대전)를 조직했습니다. 전국 단위의 <에큐메니안 연대>를 통해 한국교회 개혁운동을 위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의 생태계를 지역교회와 함께 경작해 나가겠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한국교회 개혁운동의 지렛대로 에큐메니안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에큐메니안 운영 체제와 시스템도 재창간에 걸맞게 혁신해야 합니다. 지금 에큐메니안의 가장 절실한 과제는 안정적인 물적 토대의 구축입니다. 에큐메니안 재창간 작업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매우 어려운 문제이나 오늘 에큐메니안의 현실로는 충분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에큐메니안의 두 크리딧(Credit)

저의 확신은 무모하지만 현재 에큐메니안 안에서 발견한 명확한 두 가지 근거를 통해 이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입니다. 첫 번째 근거는 바로 에큐메니안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에큐메니안 일꾼들의 희생과 헌신은 오늘 에큐메니안의 정론지가 되게 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안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론지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에큐메니안 일꾼들의 희생과 헌신은 당사자들에게는 아픔이었지만 그 아픔은 매번 그냥 소모되어 버린 아픔이 아니었고 에큐메니안의 영혼으로 살아 있습니다. 하여 에큐메니안의 가장 큰 크리딧은 바로 에큐메니안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두 번째 크리딧은 채수일 이사장입니다. 한기민이 20년 에큐메니안의 역사에 처음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면서 채수일 이사장을 추대한 것은 ‘신의 한수’였습니다. 채수일 이사장으로 에큐메니안 이사회는 대외적인 신뢰도를 높였습니다. 사장 선임 이후 재창간 작업의 여정에서 제가 만났던 전국의 에큐메니안(현재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들은 이구동성으로 채수일 이사장에 대한 안정적인 기대감을 표시했습니다. 제가 확인 한 것은 오늘 에큐메니안에서 ‘채수일’이라는 고유명사는 이미 누구에게나 에큐메니안에 대한 안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크리딧이었습니다.

일은 사람이 합니다. 누가 그 일을 하느냐가 그 일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습니다. 함께 일을 도모하면서 존재 그 자체가 선한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한기민의 호명을 받고 이사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채수일 이사장과 에큐메니안 재창간 작업에 관한 보고와 논의를 하면서 채수일 이사장의 크리딧으로 에큐메니안의 재창간 여정은 안정적으로 순항하게 될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저는 채수일 이사장이 이끄는 이사회와 물적 토대를 구출하는 사업에 호흡을 맞추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함께 이루어 내도록 하겠습니다.

에큐메니안이 교회개혁을 위한 도구로 재창간하는 의미에 대해 남 사장은 한국교회의 극우화를 꼽았다. ⓒ에큐메니안
에큐메니안이 교회개혁을 위한 도구로 재창간하는 의미에 대해 남 사장은 한국교회의 극우화를 꼽았다. ⓒ에큐메니안

에큐메니안-우리 모두의 과제

달리 생각하면, 에큐메니안의 물전 토대를 구축하는 과제는 에큐메니칼운동에 헌신해온 우리 모든 에큐메니안들의 공동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12.3 내란쿠데타가 있고난 다음 광장에서 개신교 극우 파시즘세력의 선동을 확인했습니다. 전광훈의 광화문광장이 독점해온 개신교 광장의 극우파시즘 선동세력은 내란 한 달 만인 올해 1월 3일 손현보가 출현하여 ‘세이브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개신교 광장의 극우파시즘 세력으로 분화되고 진화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이 양대 극우 세력은 체제전쟁이라는 동일 본질에서 핵분열을 하여 극우광장에서 경쟁적으로 파시즘 선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마치 개신교 전체가 극우파시즘을 선동하는 집단이 아니라 해도 거기 동조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내란 이후 우리가 목격한 광장의 개신교 극우파시즘 선동세력은 한국교회를 자멸의 길로 내몰고 있습니다.

6.3 대선으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민주정부입니다. 돌아보면 개신교극우세력의 준동은 민주정부 하에서 더 거침이 없었습니다. 전광훈이 광장에서 괴물처럼 몸집을 키운 것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NCCK와 에큐메니칼 진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구보수적인 주류한국교회는 문재인 정부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전광훈의 체제전쟁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전광훈과 손현보는 이재명 정부에서 마냥 꼬리를 내리고 있을 걸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단언컨대 전광훈과 손현보는 이재명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극우경쟁을 하는 괴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특히 내란정국에서 세계로교회 설교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악마화 시켜온 손현보는 전광훈보다 훨씬 더 흉측한 한국교회의 괴물로 진화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이들을 퇴치하는 것은 모든 에큐메니안-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기는 전투를 위한 의기투합을

지난 해 10월 27일 서울 시청 앞에서 손현보가 주동한 ‘10.27 200만 연합예배’에는 전국의 주류한국교회가 동원됩니다. 개신교 극우광장세력을 양 갈래로 주도해온 전광훈과 손현보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와의 체제전쟁이라는 이념과 반동성애 차별금지법을 무기로 삼아왔습니다. 저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이건 그 본질은 불의한 기득권을 지키는 것입니다.

권력 친화적 DNA를 가진 한국교회가 반공을 고리로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권력에 부역했습니다. 그렇게 쌓아온 한국교회 수구보수적인 세력들은 민주시민사회와는 전혀 다른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사회로 발전해 가는 만큼 자신들의 불의하고 성역화 된 기득권이 누추해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극우광장에서 이 세력들은 반상식적이고 극단적인 극우선동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해왔습니다.

전광훈 손현보의 극우광장을 지켜본 우리 에큐메니안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거룩한 분노가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분노’가 저를 에큐메니안의 사장으로 소환하여 오늘 취임하게 했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장의 극우세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분노’는 절박한 우리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한국교회의 길을 다시 회복하게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더하여 파죽지세로 번지는 극우광장의 파시즘 선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에큐메니안의 능력을 더 키울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더 능력 있는 에큐메니안을 위하여 저는 묵정밭을 갈아 새밭을 만들고 에큐메니칼 현장에서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라도 빈총을 들고 전투에 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에큐메니안은 진지가 구축되어 있지만, 이기는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에큐메니안이 한국교회 개혁의 선두에서 반개혁을 청산하는 언론으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에큐메니칼 운동의 자부심을 가진 모든 에큐메니안들이 함께 의기투합하여 응원해 주시고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개혁은 사랑과 환대와 축복의 언어로

에큐메니안이 꿈꾸는 교회개혁의 길은 사람의 존엄을 세우고 높이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길입니다. 흔히 에큐메니칼을 진보언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재창간을 선언한 에큐메니안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적 잣대가 아닌 사람의 존엄성을 높이는 언론의 길을 가겠습니다. 기독교의 오랜 영성적 가르침에는 신화사상(神化思想)이 있습니다. 신화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신 까닭을 사람이 ‘하나님만큼’ 존귀하고, ‘하나님처럼’ 존엄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에큐메니안의 사장으로 저는 사람의 존엄이 근본이 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재물(資)을 세상의 근본(本)으로 환원시키는 경제적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떻게 사람의 영혼을 빈껍데기로 만들어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에서 무자비하게 살아남는 것만이 마치 성공의 묘약으로 강조하는 이면에는 사람의 영혼에 빨때를 꽂아 영혼을 빈 껍질로 만드는 악마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동안 사람의 얼굴을 상실한 악마의 논리와 이념과 가치와 체제가 신앙의 이름으로 미화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습니다. 식별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가 외려 사람의 존엄을 가로막는 혐오와 배제와 폭력을 조장하는 자리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말씀이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한 바구니에 담아 놓은 것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정의와 다른 걸음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타자를 환대하여 우리 가운데에서 그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사랑은 모든 피조물이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존엄한 생명이라 그 존재를 축복의 길로 이끕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언어는 사랑과 환대와 축복을 북돋우는 언어입니다. 오늘 수구보수적인 교회가 광장에서 선동하는 혐오와 배제와 폭력의 언어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는 반기독교적인 언어입니다.

에큐메니안은 혐오와 차별과 폭력에 오염된 언어를 정화하여, 사랑과 환대와 축복의 언어로 사람의 존엄성을 높이는 새로운 영성 길을 가는 언론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에큐메니안은 시대정신을 헤아리고, 시민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응답하며 문명사회의 집단지성을 수용하면서 이 시대 교회가 가야할 길-그 맨 앞자리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절 에큐메니칼 운동은 인권과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기여해온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이 자긍심을 영성의 언어로 번역하여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신앙의 언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재창간으로 새롭게 출발을 하는 에큐메니안을 위하여 함께 손을 잡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응원과 격려를 이끼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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