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경주 APEC에서 한미 정상 간의 회담을 확인한 Joint Fact Sheet이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 지난 경주 APEC에서 한미 정상 간의 회담을 확인한 Joint Fact Sheet이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담긴 한미 안보·군사 합의는 핵잠수함, 핵농축, 국방비 증액, 미제 무기 대량 구매, 주한미군 지원 확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한국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깊이 결박한다
- 핵잠수함과 핵농축의 “승인”은 기술, 연료, 검증 체계 전반에 걸쳐 한국의 미국에 대한 예속을 강화할 뿐,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신장시키지 않는다
- 한미가 합의한 군사·안보 패키지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보복을 유발하여 한국의 경제, 산업, 공급망 전반이 결정적 타격을 받을 위험이 매우 크다
- 국방비의 급격한 증액은 한국의 재정적 자율성을 침식한다
- 대규모 미제 무기 구매는 한국의 방위산업을 미국 무기 체계 중심으로 재편하고 산업·기술적 자율성을 축소한다
- 한국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에 예속되어 군비 확장의 길로 가지 않고, 남북 관계 정상화, 주변국과의 선린 우호 관계, 장기적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전략적 자율성과 평화를 확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11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관세 합의 결과를 담은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를 직접 발표하고, 그 내용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핵잠수함 건조와 핵물질 농축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국가적 숙원 해결”로 규정하며, 한미 관세 합의가 국익의 균형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한미 안보동맹이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국방비 증강, 미제 무기 대량 매입, 주한미군 주둔 지원 등과 같은 사안을 아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시선을 가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라라고 달러 플랜(Mar-a-Lago Dollar Plan)”에 따라 안보와 경제의 교환 논리를 전면화하고, 한국의 외환을 미국 재정의 안전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언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긴급칼럼] 2천억 달러의 대미 현금 투자 결정, 주권 없는 협력은 종속이다”([에큐메니안], 2025년 10월 31일자)에서 깊이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더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오직 한미 안보·군사 합의에 담긴 심각한 문제들만을 살핀다.

한미 안보·군사 합의와 관련된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의 안보 인식과 외교 전략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핵잠수함과 핵농축, 그리고 국방비 증강 등의 안보 패키지는 한국의 자주성을 확보하기는커녕 미국의 군사·정치적 전략과 산업·기술적 전략, 그리고 금융전략에 한국을 단단히 결박할 것이다.

필자는 핵잠수함, 핵농축, 국방비 증강 등의 안보 패키지 이슈를 살피고, 한국이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며 평화의 길로 나아갈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핵잠수함 보유의 의미: 미국에 대한 군사·정치적 종속과
산업·기술적 종속의 심화

한국 정부는 핵잠수함 보유를 “국가적 숙원”의 해결로 규정하며 이를 자주국방 강화의 계기로 해석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는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기록했지만, 팩트시트의 문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가 오스트레일리아 핵잠수함 보유 협정(AUKUS) 모델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향후 핵잠수함 건조에 관한 한미 협상에서 그 모델이 유력하게 검토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으로부터 인수한 핵잠수함은 고농축 우라늄(HEU)이 이미 장전된 원자로가 밀봉된 상태로 장착된 핵잠수함이었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는 핵잠수함 건조, 수리, 부품 조달, 폐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제공하는 기술, 연료, 설계, 운영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핵잠수함 추진 동력인 HEU를 한국에 직접 이전하지 않을 것이고 HEU 생산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HEU가 핵무기 제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어떤 동맹국에도 HEU 생산 능력과 해군용 원자로 기술을 이전한 적이 없다. 따라서 한국이 장차 보유할 핵잠수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처럼 미국이 공급하는 봉인된 원자로 모듈을 장착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연료 주기 전체가 미국의 통제 아래 놓이고 원자로의 유지, 보수, 부품 교체, 폐기도 모두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핵잠수함의 핵심은 HEU로 추진되는 원자로뿐만 아니라, 전투체계, 데이터링크, 암호체계, 음향 탐지 체계 등을 관장하는 소프트웨어다. 미국은 이 모든 시스템을 자국의 네트워크에 통합된 형태로 제공한다. 따라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는 한국이 잠수함의 구조물만 만들고 미국이 제작한 HEU 원자로와 핵잠수함의 운영 시스템을 그 구조물에 조립하는 데 그칠 것이고, 그러한 조립조차도 미 군사 당국의 엄격한 감독과 명령 아래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작동과 임무 수행은 위기 상황에서조차도 미국의 통제와 조율에 의존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보유하는 핵잠수함이 많아지면,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이 커지지 않고, 도리어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도가 더 커지는 역설이 벌어지게 된다. 더욱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얕은 수심과 복잡한 해저 지형은 핵잠수함의 은밀성과 작전 지속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게 만들어 핵잠수함 보유는 한국의 군사적 역량을 높이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의 치명적 결과: 중국의 반발과 보복

핵잠수함 보유는 한국의 외교를 미국 중심의 전략적 편향성에 고착한다.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한국이 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받아들여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명백히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이 대통령은 한국이 핵잠수함을 갖고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할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중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보복을 결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한 중국의 반발과 보복은 한국 경제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가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 깊이 결합해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총수출의 23~25% 수준이며, 반도체, 배터리, 석유화학, 기계류 등 핵심 산업의 중간재 의존도는 30~60%에 이른다.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의 지구적 공급망에서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희토류, 양극재, 흑연 등 전략 소재의 80~90%를 공급한다. 중국의 제조업은 전 세계 제조업에서 27%의 비중을 차지하며, 17%에 불과한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기회가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은 그 때문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반발해서 한국에 경제보복을 한 전례가 있다. 사드 배치 이후 한국 관광 산업, 문화 산업, 소비재 산업은 수십조 원의 손해를 입었다. 사드는 방어용 무기라는 핑계를 댈 여지라도 있었지만, 핵잠수함은 은밀성과 장기 작전 수행 역량이 있는 최첨단 공격무기다. 한국이 핵잠수함 보유를 통해 중국을 사실상의 적국으로 상정하게 되면, 한국의 경제와 산업과 공급망 전반은 중국의 보복으로 뒤흔들릴 위험이 크다. 그러한 사태는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입힐 것이 뻔하다.

사정이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이 핵잠수함 보유를 “국가적 숙원”을 해결한 일로 내세우는 것은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한 극단적 오판이자, 한국이 스스로 전략적 유연성을 포기하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핵농축 승인이 겨냥하는 것: 한국의 미국에 대한 핵 의존의 심화

한국의 핵농축에 관한 미국의 “승인” 역시 한국의 핵 역량을 향상하지 않고, 도리어 미국에 대한 한국의 핵 의존을 심화할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는 독자적인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미국의 핵농축 승인이 마치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높이는 조치가 되기나 하는 것처럼 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팩트시트를 정확히 읽는다면, 미국의 “승인”은 민수용 저농축 우라늄(LEU)의 범위에서 미국이 절차적 협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HEU의 생산이나 무기급 플루토늄의 재처리는 여전히 2015년에 체결된 “한‧미 123협정”(1)과 미국 국내법에 의해 철저히 금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이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가능성을 강력하게 봉쇄했다. 팩트시트에 명시된 “평화적 목적”이라는 문구는 법적 제약의 핵심이며, 미국은 한국이 민수용 핵연료주기 전체에 걸쳐 미국의 기술, 장비, 검증 체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꽁꽁 묶어 놓았다. 미국은 한국의 핵물질 농축과 재처리를 “관리”하되, 그와 관련된 기술을 어떤 경우든 “이양”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일본은 그러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즉각 핵무장에 나설 것이다. 일본은 이미 플루토늄을 40t 보유하고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시아는 남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 핵무기로 서로를 겨누는 초고밀도 핵 군사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도 평화 상태일 수 없다. 그것은 대량살상무기로 서로를 위협하면서 간신히 버티는 극도로 위험한 군사적 긴장 상태일 뿐이다.

국방비 증액의 군사·정치적 의미

팩트시트에는 “한국이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까지 증액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아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을 위한 미국의 동맹국 분담금 요구에 충실하게 따랐다. 미국의 어느 동맹국도 미국의 요구에 그토록 순응한 적이 없다. 2024년 현재 NATO 국가들의 국방비는 GDP의 2.2% 수준이며, 일본은 1.6%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군사·정치적으로 본토 수호 중심 전략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회피하고 대중국 봉쇄 책임과 그 비용을 한국, 일본, 호주 등에 전가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이 그러한 미국의 군사·정치적 전략에 따라 국민의 세금을 들여 국방비를 한국 전쟁 이후 사상 최고 수준을 높일 이유가 무엇인가? 냉정하고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을 적대시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 중국과 선린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해야 경제 발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을 앞장서서 수행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이 미국의 군사·정치적 전략에 포섭되는 한, 한국의 국방비 증강은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지 않고,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오히려 줄인다. 한국의 국방비 증강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배를 불릴 뿐이다. 급속한 고령화, 복지 수요 증가, 기후 위기 대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GDP의 3.5%에 이르는 국방비가 한국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공공정책 수립과 집행을 압박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군사·정치적 요구에 굴복해서 군방비 증액에 나선 이재명 정부의 결정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의 결과: 한국 군수산업의 재편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은 향후 5년간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액수는 최근 한국의 방위력 개선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금액이다. 그러한 대규모 미제 무기 구매는 한국의 국방 산업 구조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대중 봉쇄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의 군사 인프라와 방위산업 인프라를 미국 체계에 통합하고, 한국이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의지를 관철하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조선업과 방위산업이 자체적인 기술 축적을 할 여지가 줄어들고, 미국산 무기를 유지하고 수리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예산이 고정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조선업과 방위산업의 대미 종속이 심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가 합의한 대규모 미제 무기 구매는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한국의 방위산업이 자율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가로막고, 대미 기술 종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 지원 확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일방적인 비용 부담인가?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한국이 향후 주한미군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33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주한미군 운영비 분담에 관한 특별협정(SMA)이 규정한 연 10억 달러의 분담금보다 몇 배나 많은 엄청난 주둔 지원비 증액이다.

그러한 주둔 지원비 증액은 미국이 대중국 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에 필요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한 의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계속한다고 확약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에 이바지하는 측면이 있지만, 미국 본토를 방어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는 핵심 전력이기도 하다.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에 군대를 주둔하는 측면이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을 미군 주둔 비용의 분담자로 규정하고, 한국이 미국보다 더 큰 부담을 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자주국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정치적 전략을 전개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핵잠수함, 핵농축, 국방비 증강 등의 안보 패키지는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극도로 약화한다

핵잠수함, 핵농축,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주한미군 지원비 대폭 증액 등은 서로 독립적인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포괄적인 패키지다.

그 패키지는 어떤 측면에서도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신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패키지는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 산업·기술적 자율성, 외교적 자율성, 재정적 자율성을 극도로 축소한다. 생각해 보라!

핵잠수함은 제작, 수리, 부품 교체, 해체는 말할 것도 없고 작전 운행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자율성을 완전히 박탈한다. 그것은 핵농축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국방 산업은 미국제 무기의 대량 구매로 인해 미국의 무기체계에 더 깊이 종속되고 자율적 발전의 기회를 잃는다. 저 안보·국방 패키지는 한국이 군사·정치적으로 완전히 미국 편향적인 입지를 취했음을 세계를 향해 분명하게 천명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더욱더 악화하고, 한국이 외교적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극도로 좁아진다.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한 비용을 예산에 고정해야 하기에 재정적 자율성도 크게 침식당한다.

주권 국가라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다. 민중이 나서서 전임 정권의 쿠데타 시도를 분쇄한 뒤에 국민주권의 정부를 자처하며 등장한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군사·정치적 전략과 압력에 굴복해서 국가 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을 포기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민중과 더불어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하면서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막 아래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다. 한국이 미국에 군사·정치적으로 종속되는 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사라지고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치적 긴장은 증가한다. 한국이 미국의 “승인”을 얻어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미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향상을 지원한다면,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정치적 긴장과 대립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군사적 평정을 꾀하는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고도의 전략적 자율성을 행사하고 꿋꿋이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평화를 위한 전략적 자율성을 최대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방안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것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적대가 완화될수록 한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고,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적 관계를 넓힐 여지가 커진다. 남북 경제 협력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 기반이다. 남북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고 남북한 경제의 유기적 통합을 고도화하는 것은 한반도 경제 공동체와 동북아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의미가 있다.

둘째 방안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과 선린 호혜 관계를 돈독하게 형성하는 것이다.한국의 국익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동북아시아 차원의 평화와 안정이 자리를 잡을 때 최대화된다. 인도, 브라질, 터키 등 중견국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구사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과 경제 발전의 기회를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타산지석이 된다.

셋째 방안은 장기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시아 비핵화, 지구 차원의 비핵화를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 핵 군비 경쟁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 체제와 동북아시아 평화 체제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핵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평화 전략과 평화 이니시어티브를 변함없이 추진하는 것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나라도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핵농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언했을 때, 많은 사람이 환호했고, 엄청난 군사비 증강,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 주한미군 주둔지 증액 등이 안전과 평화의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은 이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는 폭력을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평화는 폭력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때 비로소 온다.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정의라면, 평화는 정의의 열매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가 군비 확장의 길로 가서는 안 되고, 군비 확장 그 자체가 필요 없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자고 외쳐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지금은 민중과 더불어 역사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이번 한미 군사·안보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기 위해 목청을 높여야 한다.

시민사회와 노동자 세력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정치적 패권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주권 국가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도록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주

(1) “한미 123 협정”은 「미국 원자력법」(Atomic Energy Act) 123조에 근거했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미국 원자력법」 123조는 미국이 제3국과 핵협력 협정(“123 협정”)을 체결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률 프레임이다. 그 핵심 내용은 핵 비확산을 위한 9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규정, 미국 원산의 핵물질, 원자로, 연료의 이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123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규정, 표준 123 협정만으로는 미국 기원의 핵물질에 대한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명문 규정, 사전 포괄 동의와 같은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려면 123 협정을 개정하거나 별도 부속 합의가 필요하다는 규정 등이다. “123 협정”의 개정이나 별도 부속 합의를 위해서는 미연방 대통령이 비확산 평가서를 연방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가 이를 90일간 검토한 뒤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123 협정”의 변경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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