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에 번역 출간된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어 원제는 [Becoming Nicole]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니콜’은 태어날 때는 ‘와이엇’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성별을 지정받았습니다. 동생인 조너스와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지요.
그런데 벌써 2살 무렵부터 와이엇은 자신의 성별이 여자라고 자각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와이엇과 그 가족의 삶에는, (때로는 와이엇의 아버지에게조차 완전히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와이엇이 여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어이없다 싶었던 에피소드가 뭐였나면, 미국 학년으로 5학년 때, 아직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인 와이엇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걸 보고 같은 학년의 어떤 남학생이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니까, 그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더러 “그러면 너도 내일부터 여자 화장실을 써라. 그 와이엇이라는 ‘남자애’가 여자 화장실을 쓴다면 너도 쓸 수 있어야지.” 이러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손자는 또 할아버지의 말대로 여자 화장실을 쓰겠다고 덤비구요.
그 이후로도 와이엇을 많이 괴롭힙니다. 그 손자, 그 할아버지와 더불어 와이엇/니콜과 그 가족을 많이 괴롭히는 사람들 중에 어김없이 ‘기독시민연맹’이라고 단체 이름을 내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자기 뜻을 꺾을 친구는 아니었던 니콜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인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게 됩니다.
이 연재칼럼에서도 몇 번 다뤘습니다만, 성소수자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운운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니콜의 경우는 ‘선천적’일까요 ‘후천적’일까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동생은 그냥 남자로 살고 있으니 ‘선천적’이라고 하긴 어려울까요? 그런데 2살 무렵에 이미 자기가 여자라고 자각했다는데, 2살 무렵이 될 때까지 무슨 ‘후천적’인 영향이 그리 많았을까 생각한다면 ‘후천적’이라는 말도 쉽게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선천적이네 후천적이네 하는 이야기는 별 쓸데가 없다는 거구나 싶기도 하네요.
물론 이 책에서도 트랜스젠더가 되는 원인의 신체적 차원과 관련하여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결과들의 주된 공통점은 태아 때 성기가 형성되는 시기/메커니즘과 뇌가 형성되는 시기/메커니즘이 서로 다르고 젠더정체성 형성은 주로 후자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구요. 어떤 단일한 요인 하나를 찾아서 이걸로 다 설명된다 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게 더 맞겠습니다.
2.
어제 11월 20일은 매년 국제적 차원에서 지키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습니다. 성소수자라고 느슨하게 통칭되는 다양한 집단 중 어느 집단도 혐오범죄나 자살의 위협에서 자유롭진 않습니다만 트랜스젠더는 전반적으로 혐오범죄나 자살의 위협이 강한 편에 속하는 집단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성소수자가 아닌 척 그냥 넘어가기('패싱'이라는 용어를 씁니다)가 조금 더 어렵다는 점과,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자신의 신체 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예를 들어 앞에서 다룬 니콜의 경우에도 와이엇이라는 이름으로 살 때에, 샤워를 할 때 자신의 몸을 보기가 싫어서 샤워실 불을 꺼놓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가 꽤 많다는 점 등이 작용하는 듯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면, 사실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살펴 보면 트랜스젠더는 의외로 운동 안에서도 겉도는 경우가 꽤 많았던 집단이기도 합니다. 또한 해방운동의 한 큰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페미니즘 안에서,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하지만 트랜스젠더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이 아예 다른 갈래의 ‘페미니즘’을 만들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제 이것도 몇 년 지난 이야기긴 합니다만, 트랜스젠더를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입학하는 걸 반대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졌었죠.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성소수자 영화 중 하나인 [너에게 가는 길] 중에, 방금 언급한 숙명여대 사건이 벌어질 때 그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트랜스젠더 남성(트랜스젠더 말고도 다른 정체성들도 많이 표현하는 분이지만)이 그 사건을 두고 무척 괴로워하는 시퀀스가 나옵니다. 그 괴로움의 장면과 맞물리는 다른 장면에서 그 분의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자신의 자녀가 이 세상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 죽음의 자리에 같이 있어 주는 것이 어머니인 자신의 할 일일 것 같다는 말씀이었습니다.
3.
서두에 언급한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의 원서 [Becoming Nicole]은 201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니콜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성별 재지정 수술까지 마친 이야기,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점점 더 확장되는 이야기로 마무리짓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2015년 이후 미국은 트럼프의 임기를 한 번 겪었고, 지금 두 번째로 겪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 때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이 꽤 많았고, 두 번째 임기인 지금에는 아예 트랜스젠더라는 사회적 범주 자체를 공적 차원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미국 여권을 출생 때의 지정성별로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죠. 이 책의 주인공 니콜도 다시 와이엇으로 ‘돌아가서’ 살라고 압력을 받고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니콜이라면, 그리고 니콜의 일란성 쌍둥이 남동생인 조너스를 비롯한 니콜의 가족들이라면, 그런 압력을 받는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할 사람들은 아니겠죠. 미국의 니콜이 그러하듯이, 한국의 트랜스젠더들도 마찬가지겠구요. 그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