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정의와 평화를 위한 종교 공동체'를 주제로 모스크바 다닐로프스키호텔 컨퍼런스홀에서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러시아정교회 및 WCC 관계자，한국교회 대표들이 참가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협력했던 러시아 교회와 WCC의 노력，그리고 평화열차와 제10차 부산총회에 대한 전망 등을 내용으로 발제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후 우리는 크렘린 궁전으로 평화순례를 떠났다. 크렘린이라고 하면 스탈린 독재정권을 연상하지만,  모스크바는 1147년 러시아가 처음 세워질 때 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 크레린궁의 아름다운 예배당ⓒ에큐메니안

모스크바 강을 따라 주민들이 정착하고 이어 나무로 성벽을 쌓고 또다시 주민이 늘어나면서 확장하여 돌로 성을 쌓는 등 계속 인구가 늘어났고 15세기에는 수도로 정해졌다. 이 때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빙하여 수도를 디자인하였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비슷한 건축물이 많이 있다. 피터대제 때 수도가 산트 페테스부르그로 이전하였지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스크바는 다시 러시아 수도가 되었다. 크렘린 궁전은 모스크바에서 성안에 있는 지역을 말하며 주로 왕족들이 살던 성안을 지칭하며, 크렘린이라는 말 자체가 왕권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크렘린 궁전입구에는 러시아 군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일행 중에 한 명이 사진촬영을 시도해도 전혀 움직임이 없다. 좀 웃으면서 환영하는 뜻으로 포즈를 취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입장을 바꾸어 그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들에게 미소를 짓는다면 고역일 것이다. 그래도 사진촬영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을 보면 크렘린이라는 이미지는 없어지고 군대의 경직성은 많이 풀린 것 같다. 

▲ 시실리아 대성당ⓒ에큐메니안

입구를 들어가면 왼쪽으로 성당이 보인다. 우리의 안내자는 우리가 교회에 관계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 교회가 바로 스탈린이 나가던 교회라고 설명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당에 슬픈 사연이 있다니 놀랍다. 스탈린은 이 교회당에서 부인이 자살하자 더 이상 그 교회당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의 권력자도 부인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긴 부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최고 권력자의 아내라는 높은 지위를 포기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포기를 택했을까!  정문 오른쪽에는 피터대제가 지은 무기고가 있고 그 맞은편은 후르시쵸프가 건축한 공산당 본부 건물이 보인다. 지하 16미터로 깊게 파서 각종 중요시설에 대한 보안조처를 구축해놓았고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까지 있다고 한다. 지금 이 건물은 공산당 본부의 건물로서 역할을 하지 않고 공연 등 일반인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 푸탄근무하는 대통령궁ⓒ에큐메니안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대통령 집무실이 보인다. 여기에는 현재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세기 후반에 야콥이란 디자이너가 순수 고전양식으로 지었는데, 볼셰비키혁명 후에 레닌은 이곳을 자신의 집무실 겸 사택으로 사용하였다. 레닌 사후에는 레닌 기념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박물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집무실 위에는 돔이 있고 그 돔 위로 센트 조지 동상이 보인다. 이 동상이 워낙 무거워서 건축할 때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디자이너가 정확히 그 무게를 예측하고 가능하다고해서 돔 위에 설치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관광객은 그 근처에 갈 수가 없으니 그 동상의 무게를 짐작해볼 수가 없었다. 교황이 참배객을 위해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각에 창문에 나와 손을 흔들듯이 푸틴 대통령이 나와서 손이라도 흔들어준다면 얼마나 보기에 좋을까!

▲ 크렘린궁정의 대포ⓒ에큐메니안

더 지나가면서 왼쪽에는 군사학교가 보이고 그리고 그 건너편에 일련의 대포들이 정렬해 있고 더 지나니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586년에 제작된 이 대포는 무게가 40톤이나 나가는 엄청난 것으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나. 그런데 왜 전시해 놓은 것일까? 그 뒤에는  또다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 전시되어 있다. 1735년 제작된, 무게가 2백 톤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이지만, 제작 시에 온도차로 인해 종이 깨져서 들어 올릴 수도 없어서 그냥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울리지 않는 종, 한 번도 발사되지 않은 대포를 전시하는 것은 러시아의 웅장함을 관광객들에게 과시하려는 것일까?

그 뒷면에는 아름다운 예배당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15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왕위즉위식을 거행한 예배당, 장례식을 거행한 예배당, 가정의례(왕족의 세례, 결혼 등)를 거행한 예배당 등 다양한 용도의 성당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이곳 성당의 종탑보다 높은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었다고 하니 그 높이(81미터)와 웅장함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성당 내부에는 사방 벽과 천장이 니콘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득하기에는 너무나 촉박한 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 쇠파이프로 가로막힌 대통령궁ⓒ에큐메니안

크렘린 궁전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무명용사의 무덤이 보이고 그 곁을 지나 오른쪽으로 향하면 그 유명한 붉은 광장이 나타난다. 크렘린 궁전의 벽이 붉은 벽돌이라 붉은 광장이라고 불렸는지, 아니면 피의 역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붉은 광장이라고 명명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넓은 광장에 무엇인가 설치하기 위해 쇠파이프들이 연결되고 있어서 전혀 광장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쇠파이프로 전면을 가린 채 드러난 대통령 궁을 바라보면서 푸틴 대통령이 철의 장막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선입관 때문일까?

개혁과 개방 후에  땅에 떨어진 국가체면을 살리기 위해 강력한 독재를 행사하고 있는 푸틴대통령은 언제까지 그 절대 권력을 행사하게 될까? 두 번에 걸쳐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3선이 헌법에 금지되어 있어서 총리에게 대통령직을 맡겨 막후정치를 한 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된 푸틴은 과연 러시아를 구원해준 인물일까? 멀리 모스크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진 바실리블라제누이 성당, 굼백화점 등을 바라보면서, 구세주 성당에서 푸틴의 독재에 항의한 지식인 시위를 다시 떠올려 본다. 

최정의팔  smc@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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