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환경주일 연합예배가 진행 중이던 24일 성공회 서울 대성당 앞마당에 악기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하게 보이는 물건들을 두드리며 연습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더 알아볼 틈도 없이 이들을 뒤로 하고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폐품으로 만들어진 악기를 사용해 공연을 하고 있는 노리단 소속의 어린 예술가들.

예배를 마치고 다시 나온 성당 앞마당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주먹밥 콘서트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지는 않아 보이는 청년들 사이에 초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어린이 5명도 끼어있었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열심이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미소가 귀여운 한 여자 아이를 붙들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저씨 기자거든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선생님께 물어보고 올게요.” 그러고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선생님께 가서 뭐라고 하더니 나를 보고 ‘씨~’ 웃는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앞에 차려진 벤치에 앉아 이 꼬마 숙녀와 점심을 앞두고 허겁지겁 짧은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 영등포에 위치한 하자 센터 내에 마련된 작은 학교라는 대안 학교에 다니며 공부와 공연 연습하고 있는 김예리 양. 자신의 적성과 기쁨을 찾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희망을 본다.

“이름이 뭐예요?” “레몬이에요!” “응?” 그러자 자리를 함께 한 청년 선생님이 한 마디 거든다. “별명 말고 진짜 이름도 가르쳐 드려.” “아~ 김예리가 진짜 이름이에요.”

옆에 있던 청년 선생님 또 한 마디. “저희 팀에서는 자신이 직접 별칭을 만들어서 불러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은 없어요.”

“예리 어린이는 몇 학년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이요.” “어~ 그러면 학교는 어떻게 하고 이렇게 공연을 왔어요?” 이번에도 청년 선생님. “영등포에 있는 ‘하자 센터’ 안에 ‘작은 학교’라고 하는 대안학교가 있어요. 이 학교는 성미산 대안학교에서 출발한 거에요. 지금은 작은 학교라고 이름을 바꾸었어요. 예리는 그 학교 소속이에요. 거기서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주로 연습을 해요.”

이번엔 청년 선생님께 질문했다. “이 단체 이름이 뭡니까?” “‘노리단’이라는 단체에요. 이 단체 안에 ‘나마스떼’, ‘사운드 플레이 그라운드’, ‘스몰 엔딕’ 이렇게 세 팀이 있어요. 그 중에 ‘나마스떼’는 네팔 인사말로 ‘내 안의 신이 당신께 인사드립니다’ 혹은 ‘우리의 영혼은 같습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스몰 엔딕’은 주로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팀입니다.”

“그러면 예리는 어디 소속이야?” “스몰 엔딕이요.” “어떻게 들어가게 됐어?” 질문이 어려웠는지 망설이는 예리의 응원군이 또 한 명 있었다. 한 아주머니 정확하게 기회를 포착해 대답해 주신다. 알고 보니 예리 양의 어머니다. “제가 자원봉사 하는 단체에 이 팀이 공연을 오게 되었어요. 그 공연을 본 예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래서 학교도 옮기고 공연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럼 예리는 공연팀에 언제 들어가게 된 거야?” “어~ 어~” 옆에 있던 청년 선생님. “올해 1월 달부터잖아.” “아~ 맞다. 1월 달부터 들어가서 연습하고 했어요.” “안 힘들어?” “아니요. 재미있어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해?” “하루에 2시간 정도 연습해요. 연습은 악기 연습이랑 몸을 악기같이 두드리는 몸벌레 연습을 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어?” “새만금 때문에 했던 공연이요.” “새만금에 내려가서 공연했어?” “아니요. 저기~ 아~ 거기가 어디더라?” 이번에도 청년 선생님. “정동극장에서 새만금 문화제를 위해서 했던 공연이에요.”

“예리는 앞으로 꿈이 뭐야? 앞으로 계속 이 공연팀에서 있을 거야?” “네” “정말? 다른 꿈은 없어? 해보고 싶은 거 없어?” “네” 그러자 이번에 어머니. “너 저번에 엄마한테 꿈 얘기했잖아.” “아~ 가수하고 싶어요.” “가수?” “네”

이렇게 꿈 이야기까지 하고는 밥을 먹기 위해 총총 걸음으로 엄마를 따라 가는 예리의 뒷모습에서 세상의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사회가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무슨 붕어빵 찍어 내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기쁨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격.

▲ 무지하게 진지한 두 사람. 김예리 양과 이은영 선생님.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미셀 푸코가 그랬다고 한다. “병원, 학교, 군대와 같은 규율 공간은 권력이 작동하는 장이 되고, 이곳에서 유포되는 지식은 미시적인 권력으로 작동 된다”고 말이다. 아마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길러내는 붕어빵 공장이라는 말일게다. 그래서 홍세화 씨는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게 하는 의식화”라는 무지하게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최초 고용 2년 내에 자유롭게 해고 할 수 있는 ‘최초 고용 계약법’(CPE)”이 프랑스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통해 무산된 사실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국의 한 잡지에서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와 인격을 길러낸 프랑스 교육의 승리”라고 격찬했던 기사가 기억난다.

예리가 크면 우리 사회도 프랑스 대학생들과 노동자들과 같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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