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이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이하 감신대) 학우들의 세종대왕상 기습 시위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좋았어! 역시 감신! 해냈구나!”였다.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경찰서로 달려갔고, 면회를 요구하며 경찰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간신히 면회를 할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며 “기사 봤어? 사진 웃기게 나왔던데?”와 같은 농담을 주고받고, 한바탕 신나게 떠들다가 경찰서를 나오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 있었다. ‘이 친구들의 뜻과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민중신학은 한국적 상황에서 한국인이 만난 한국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신학이다. 민중신학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을 ‘정초(定礎)기억’이라고 고백한다. 예수의 비참한 십자가 위 죽음이 오히려 민중들에게 ‘부활신앙’이라는 한층 더 거센 저항의 바람(성령)을 일으키고, 예수가 그들과 영원히 함께하게 되었듯, 한국의 전태일 사건은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를 다시 일어나게 했고, 전태일은 영원한 노동자의 친구가 됐다.

우리는 오늘 세월호 참사라는 참극을 눈앞에 두고서도 부활을 이야기해야 하는 괴로운 그리스도인들이다. ‘이 상황에서 과연 부활을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번민을 하고 있을 때, 감신대 친구들의 소식을 듣게 됐다. ‘아이들을 살려내라!’는 그들의 외침은 이대로 결코 아이들을 잊어버리고, 보내버릴 수 없다는, 예수와 전태일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바로 그 고백과 통하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하나의 시리고도 맑은 빛줄기로 가슴을 후벼 파고, 양심을 깨우는 감신대 친구들의 이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연대와 계승을 요구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청계광장에서의 삭발, 단식 농성을 계획하게 됐다.

‘왜 삭발 단식 농성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것은 우리의 성명서에 나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카락과 끼니를 끊음으로서, 이제 이 짐승 같은 권력과 폭력, 죽음의 시대를 우리의 삶으로부터 끊어낼 것이다.’ 이러한 이유 말고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의 목소리가 매주 한 두 차례씩 열리는 집회에서만 외쳐지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내내 서울 한복판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에 단식으로서 조금이나마 연대하며, 이 모든 책임은 박근혜 정권에게 있음을 외치는 ‘빡빡이’들이 하루 종일 청와대 방향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잊지 맙시다! 끝까지 책임을 물읍시다!’라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는 것을 원했다. 이 움직임이 더 커지기를 바랬다. 5월 15일 삭발, 단식 농성을 시작하면서 감신대 학우들과 함께 <이 땅의 모든 신학생 학우 여러분들께 보내는 제안서>를 발표했다. 이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신학생들이 연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단식 5일째, 감신대 학우들이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단식, 농성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21일에는 함께 단식 농성 중이던 우리 한신대 민중신학회와 감신대 도시빈민선교회, 사람됨의신학연구회에 더해서 한신대학교 신학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한신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학우들이 연대 의사를 밝히며 합류했다. 그 밖에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총신대학교 신학과,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등에 속한 신학생들이 부분적으로 함께 연대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힘을 모아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한신대 민중신학회 학우 세 명이 시작한 농성이 많은 신학생 학우들과 함께 하는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요구사항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요구는 ‘가족대책위 요구 전면 수용!’으로, 보다 구체화 되었고, ‘현 내각 총 사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의 주체가 되어 나서라!’는 요구는 ‘박근혜 퇴진!’으로 더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희생자, 가족들의 존재와 삶의 완전한 회복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치적 요구는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도저히 세월호 참사를 풀어나갈 능력도 없으며, 그럴 생각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5월 15일부터, 이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저항의 행동을 펼치자는 생각으로 단식 농성을 정리한 5월 31일까지 정말 많은 시민 여러분들이 지지, 격려해 주셨다. 단식 농성이라 어차피 음식은 먹을 수 없었고, 대신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물이나 얼음 등으로 더위를 견딜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주시는 데서 정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한신대 신학과 교수님들은 29일,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을 전격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모두가 무척 힘이 되었다.

하지만 딱 하나,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바로 코앞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시민들이 연행당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할 때였다. 2주 동안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행 당했는데, 그때마다 경찰 측의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해산 경고’ 방송과 시민들의 비명 소리가 가슴을 온통 헤집었다.

80년 5월 광주의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는 단식 농성장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이곳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우리는 서로 “이제는 가만히 있는 투쟁은 절대 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아직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서럽다. 앞으로 가만히 있는 투쟁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소위 ‘먹레기’라고 불려야 마땅한 개신교 목사들의 망언이 줄을 잇고 있다. 목사, 아니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망언을 보며 한국 교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세대 미래의 목회자들이 신학과 목회를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각성을 갖게 했다.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신학과 목회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신학과 목회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됐다. 가족들이 받았을 상처, 국민들이 느꼈을 분노와 개신교에 대한 절망감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다시 새롭게 기도하고, 공부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보름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얻은 것 중에서 가장 큰 성과는 바로 ‘함께 함’이었다. 우리가 함께 함으로서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고, 더 많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앞으로도 우리가 모여서 많은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5월 31일,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은 일단은 청계광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가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가족대책위의 요구가 전면 수용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진상규명과 해명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도 함께 맞물려 가야한다는 인식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선은 몇 일 전 합의, 시작된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결코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현재 정권으로는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태생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된다.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국정조사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거리 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외치는 것을 중단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국민들의 삶의 자리와, 가슴 속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과 박근혜 퇴진이라는 정치적 행동으로 연대하기 위한 작은 ‘농성장’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국민들이 모이고 모여서, 아픔을 나누고, 그 아픔을 넘어 거룩한 분노가 일렁이는 새로운 저항의 물결에 뛰어 들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진도 체육관을 내려갔을 때 보았던 가족들의 모습, 그리고 청와대로 찾아가겠다는 가족들을 겹겹이 둘러싸고 막던 국가 권력의 모습을.

하지만, 우리의 희망은 여전히 우리의 새로운 세계와 삶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과 특히 애통해 하는 사람들을 축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고 서로 격려하며 다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외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거리에 나올 것이다.

‘사랑하라! 분노하라! 행동하라!’

김진모 학회장(한신대 신학과 민중신학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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