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해설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출생과 살아남음 (출 2:1-10), 성년이 된 모세의 살인과 도피 (출 2:11-15), 미디안에 정착하는 모세와 결혼 (출 2:16-22),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경청ㆍ공감 (출 2:23-25)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1) 뜻은 좋았다, 그러나 ... (출 2:11-15b)
세월이 지나자 모세도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아갔다(와예체). 여기 나오는 형제라는 말은 히브리인(이스라엘 아들들)을 가리킨다. 이는 모세가 그들을 자기 형제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니, 매우 감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다(야차)라는 낱말도 범상치 않다. 이는 출애굽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이는 낱말, 곧 출애굽 단골낱말들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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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ll Er Retabeth(Raamses), 성전 전면의 왼쪽에 있는 벽화 중에서 | ||
이는 폭력의 희생자가 쉽게 폭력적 가해자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히브리 성경은 이 과정을 매우 뛰어난 형식으로 묘사하였다:
11a 그가 나갔다(봣예체 ↼ 야차)
11b 그가 보았다 ... 그가 보았다(봣야르 ... 왓야르 ↼ 라아)
11b 치는 것을(막케 ↼ 나카)
12a 살펴보고 (봣이펜 ↼ 파나; 왓야르 ↼ 라아)
12b 쳤다 (봣야크 ↼ 나카)
13a 그가 나갔다(봣예체 ↼ 야차)
이 일은 곧 파라오에게 보고되었다: 그는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확실히 이 일이 탄로났도다(알려졌구나)’ 하였다(출 2:14c 직역).
모세가 행사한 폭력은 의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높게 평가한다. 심지어 이사야서 말씀에 연결시키기도 한다(사 59:15 ...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이로써 모세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은 언제나 저항과 또 다른 폭력을 부르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이런 행동을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것으로, 다시말해 설익은 행동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를 그들은 그의 이런 소극적인 저항(출 2:14)이 i) 동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였고, ii) 파라오의 보다 강력한 대응폭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출 2:15a)는 데서 찾는다. 모세가 보여준 공감과 의분과 신중한 태도 - 그 자체는 훌륭하였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파라오가 이스라엘 자손및 모세에 대해 취한 행동은 헤롯대왕의 그것과 묘한 공명(共鳴)을 울리게 하였다. 파라오의 살해의지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자손 전체에게 향하다가 나중에 모세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헤롯대왕의 그것은 처음에는 아기 예수 한 사람에게 향하다가, 나중에는 베들레헴과 그 인근의 모든 아기에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2;15(LXX)와 마태복음 2:13에 쓰인 용어들은 이런 사실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h;kousen de. Faraw to. r`h/ma tou/to kai. evzh,tei avnelei/n Mwush/n avnecw,rhsen (출 2:15 LXX).
me,llei ga.r ~Hrw,|dhj zhtei/n to. paidi,on tou/ avpole,sai auvto, (마 2:13).
성경은 그 행동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가 어느 쪽도 내리지 않고, 담담하게 그 일 자체를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평가되든, 이 일로 그는 두려움과 실망을 안은 채 왕궁을 떠나 미디안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출 2:15b). 이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일들을 거치지 않았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사회구조와 그 폭력에 계획도 없이 감성적으로만 접근하였기에 결국 모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 사람들은 고대국가에서 한 나라 공주의 아들이 이만한 일로 죽음의 위협을 느껴야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이는 두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 우선 파라오 왕에게 여러 아들딸과 여러 손자 손녀들이 있었을 경우이다. 만일 그렇다면 권력을 둘러싸고 그들 사이에 생겨나는 경쟁과 알력은 대단하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히브리 노예를 도우며 이집트인을 죽인 일은 상대방에게 아주 좋은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둘째로 요세푸스의 기록대로 파라오에게는 그 공주가 무남독녀였을 경우이다. 이 경우 모세를 왕재(王才)로 만들려는 뜻에서, 파라오와 그 신하들은, 실제로 죽일 의도는 없었더라도, 죽음을 운운하며 아주 강하게 압박하였을 것이다.
2) 모세의 미디안 정착과 결혼 (출 2:15c-22)
|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이다.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이 있는 곳을 찾아 말을 몰았다. 때마침 우물가에 한 여인이 있어 물 한 그릇을 청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수즙어하며 바가지에 물과 함께 버들잎을 한 줌 띄워 주는 게 아닌가. 이에 이성계는 "아니, 물을 주려거든 그냥 줄 일이지 이게 무슨 고약한 짓인가?" 라고 화를 냈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하였다: "갈증으로 급히 달려오신 것 같아 급히 마시고 체하실까 천천히 드시라 그리하였나이다." 이에 감탄한 이성계가 그 여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여인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이다. |
출 2:15c에 개역개정은 ‘하루는’, 표준새번역은 ‘어느 날’이란 문구를 삽입하였으나, 히브리성경에는 이런 것이 없다. 모세의 행동을 묘사하며, 히브리성경은 ‘모세가 (미디안 땅에) 머물며 ... (우물가에) 앉았다’ 라는 구절에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야샤브)를 씀으로써, 언어놀이(word play or figura etymologica) 기법을 사용하였다. 히브리 성경은 16절에 ‘그리고 그들이 왔다. 그리고 그들이 물을 길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채웠다’ (직역) 라는 식으로 와우연속법(waw consecutive)을 3차례 되풀이 씀으로써, 부지런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엘리에셀?), 야곱, 그리고 요셉의 경우와 비슷하게 전개된다(우물가, 목자들, 양떼, 여성 목자). 그렇지만 창세기의 그곳과는 달리 이곳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이를 우물가의 로맨스로 볼 수 없다. 이곳에서는 치열한 경쟁(대결) 현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디안에 사는 십보라의 자매들과 이들을 밀쳐내려는 (가라쉬) 목자들은 서로 아는 사이이고, 같은 마을(지역)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우물가에서 그들은 적대하며 공격적으로 행동하였다. 특히 동사 가라쉬가 강의형(Piel 까라쉬)이 쓰임으로써, 그 의미가 한층 강하게 표현되었다(마구 쫓아내다, 무자비하게 몰아내다). 그 분위기가 매우 살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십보라 및 그 자매들에게 구원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힘센 자들의 힁포에 눈물을 머금고 물러서야 하는 약한 자 편에 선 것이다. 이를 강조하려고 히브리성경은 17절과 19절에 ‘구원하다(야샤), 구출하다(나찰)’는 말의 사역형(히필)을 사용하였다(우리말 개정개역 성경은 이 낱말을 ‘도와, 건져내고’로 각각 옮겼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 모세와 십보라의 만남도 그러하다. 결혼 이전 20-30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스쳐가지만, 어떤 두 사람에게 서로 인연이 닿아 부부로 맺어지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요, 신비에 속하는 것이다. 결혼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비중에 높을수록, 가정생활에도 평화와 활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야곱과 라헬의 결혼처럼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가 개재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사람의 의도 그대로 되기도 하고, 전혀 엉뚱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이런 것을 사람이 어찌 다 예측하며, 그 의미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3) 경청ㆍ공감하시는 하나님 (출 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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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돌찍기와 쌓기(고대 이집트) | ||
이스라엘은 네 번에 걸쳐 되풀이 부르짖는다: 탄식하다(아나), 부르짖다(자아크), 부르짖는 소리(솨아), 고통 소리(느아카).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알라 = 올라가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을 들으셨듯이(창 18:20),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부르짖는 히브리인의 신음소리를 귀담아 들으시고 반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셨다(샤마으),”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자카르),”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셨다(라아),”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셨다(야다).” 이런 표현양식은 히브리어의 일반규칙을 벗어났다. 곧 ‘하나님’이란 주어를 한번만 쓰고, 그 나머지는 동사변화형 또는 인칭대명사로 대신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이란 명칭을 4번이나 꼬박꼬박 쓰고 있다. 이는 주어를 대단히 강조하는 어법이다. ‘하나님’ 이란 낱말이(주어가) 4번 되풀이 나오는 출 2:24-25을 직역하면 이렇다:
| 23 그리고 많은 세월(날들)이 지난 후 일이 이리되었다. 곧 이집트 왕이 죽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고된 노동 때문에 신음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었다. 그러자 고된 노동으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그들의 외침소리가 하나님께로 들려 올라갔다. 24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25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보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셨다. |
여기 나오는 동사들 가운데 5개(올라가다, 듣다, 기억하다, 보다, 알다)에 주목해 보자:
① ‘들려 올라갔다’는 말(알라)은 마치 향이나 번제물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듯이, 이스라엘 민족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 보좌에 가 닿았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은 성도의 기도를 금 대접에 가득 담긴 향에 비유하였다:
|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
‘올라가다’는 이 말은 i)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를 가리키는 용어일 뿐만 아니라, ii) 출애굽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들 가운데 하나이다(출 3:8). 우리말에서도 어느 지방에서든 서울로 가는 것을 가리켜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함경도에서도 경상도·전라도에서도 서울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라고 표현하듯이, 여기서도 이스라엘에서도 유다(예루살렘)로 가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말(샤마)은 하나님 귀가 이전과는 달리 이스라엘 아들들의 하소연에 민감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진지하게 듣다'(to take heed of), '반응하려는 마음을 담아 귀담아 듣는다’(to hear response to)는 의미이다(출 3:7; 6:5; 참조 창 16:11; 시 31:7; 145:19).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 大學 正心篇).
③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말(자카르)도 마치 하나님께서 이제까지는 하나님 백성과 맺은 언약을 까막득히 잊고 계시다가, 문득 생각이 나셨다는 뜻이 아니다. 기억한다는 말은 기억된 그 사실에 바로 지금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개입하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출 6:5; 창 8:1).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모습은 특히 창 17:4-8(창 19:29; 26:3, 24; 28:15 참조) 에 하나님의 보증을 동반하며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2; 6:7).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언제나 하나님 백성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나타났다.
④ ‘하나님이 보셨다’는 말(라아)은 어떤 사람과 눈을 마주쳤거나, 어떤 일을 들여다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친절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출 3:7, 9; 4:31; 창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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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 시대의 파라오로 추정되는 라므세스 II (주전 1303-1213) | ||
설교를 위한 힌트
1)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가 출 1-2장에는 두 가지 나온다: 이스라엘의 아들들(후손들); 히브리인. 후자는 파라오가 즐겨 쓰는 낱말이다(출 1:9만 예외). 아마 이 용어는 ‘노예, 종’이란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세를 살린 파라오의 딸도 그를 처음 보자마자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들이로다’(출 2:6)라고 말한다. 모세의 누이는 파라오의 딸에게 ‘히브리 여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출 2:8; 파라오 앞에 선 모세와 아론도 히브리인들이란 용어를 썼다 5:3 참조). 이로 미루어 보아, ‘히브리인’이란 낱말은 이집트인에게 널리 통용되던 말인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켜 꼬박 꼬박 이스라엘의 아들들(= 쁘네 이스라엘 1:1, 7, 12, 13; 2:23, 25; 3:9, 10, 11, 13, 14, 15; 4:22, 29, 31), 내 백성(암미 3:7, 10; 5:1), 내 맏아들(쁘니 베코리 4:22) 이라 부른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야곱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이는 야곱의 후손들이란 뜻이다. 이런 명명(命名)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생각나게 한다. 더 나아가 모세는 그들을 가리켜 ‘자기 형제들’이라고 하였다(에카브 출 2:11-12; 4:18). 파라오의 눈에는 일개 노예집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무리, 그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존재를 향해 하나님과 모세는 이렇게까지 존중하다니,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모세 정도의 위치에서 히브리인을 ‘자기 형제’로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부모나 형제자매를 모른 체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호칭할 때, 존중하는 낱말을 선택할 수도 있고, 깎아내리는 낱말을 선택할 수도 있다(성경을 번역할 때에도 예전에 ‘절뚝발이’라고 했던 것을 지금은 ‘다리를 저는 사람’ 로 바꾸는 등 용어선택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언어습관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의 경중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평소 그를 존중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언급할 때에도 품위있고 무게있는 어휘를 사용할 것이고, 평소에 그를 무시하거나 낮추어보았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용어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오늘 우리는 묻는다: ‘나는 나를 누구라 하는가? 나는 내 주변 사람을 누구라 하는가? 그들을 부를 때, 어떤 용어를 선택하는가?
2) 일상생활 속에 잉태된 특별한 날
자기 동족이 겪는 이 고역을 목격한 그는 동족을 구해낼 생각을 품게 되었다. 히브리서 11:24-25의 해석 그대로이다:
|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행 7:23-24 참조). |
이는 모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나머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따라 판단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 일로 모세는 커다란 곤란을 겪었다. 그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으며, 거기서 목동이 되었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인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에게서 배척을 당한 모세가 미디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모세의 장인이 된 미디안 사제 르우엘(이드로, 출 18:5 참조)이 그 딸들에게 하는 말 - 1)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2)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3)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출 2:20) - 에 모세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어쩌면 그 아들에게 붙여준 ‘나그네’(게르솜 ←게르)라는 이름이(출 2:22) 그 자신의 현재 상태 또는 자아의식을 비춰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이 배척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며, 모세는 특별한 위치와 역할을 지녔던 사람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탈바꿈하였다. 이집트 왕궁에서 특별한 사람(somebody)이었던 그가 미디안에서 보통 사람(nobody 또는 anybody)로 지내며, 기다림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잘 안다. 목표를 세우고 그를 향해 뛰어드는 것보다 일단 좌절된 그 목표를 되새김질하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더욱 더 힘들다는 것을. 그렇지만 이 과정은 그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유익하게 작용하였으리라. 지도자는 모름지기 평범한 백성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훌륭해질 수 있는 법이다.
3)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출 2:14c는 개역개정 등 우리말 성경에 제대로 번역되지 않앗지만, ‘확실히, 진실로, 참으로’라는 부사(아켄)로 시작된다. (이에 모세는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분명히 이 일이 알려졌구나!, 확실히 이 일이 탄로났도다!) 모세는 처음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행하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감추어질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12절). 그렇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어떤 일이든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추어지기가 이렇게 어려울진대,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야 두 말해 무엇하랴! 진실로 어느 쪽에서 행한 것이든 감추인 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숨긴 것 또한 알려지게 마련이다(막 4:22; 눅 8:17; 12:2-3).
4) 하나님의 숨은 준비
모세의 피신(망명), 40여년에 걸친 목동생활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충동에 사로잡힌 설익은 행동이 낳은 자업자득? 아니면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섣불리 나선 변혁조급증?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채 뛰어든 무모한 만용(변혁 모험주의)? 아니다. 그런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목적을 위해 사람에게 숨은 준비를 시키신다. 모세가 방랑족속인 미디안의 켄족에게 가 생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숨은 뜻이다. 곧 장차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여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광야생활(또는 방랑생활)을 전혀 모르는 그들이 이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 최소한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만이라도 광야의 풍토와 기후와 지형 등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주인, 곧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런 전망아래, 모세를 일찌감치 광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목동으로 40여년을 지내면서 광야생활을 습득하게 하신 것이다.
일찍이 슈바이쳐 박사(1875-1965)는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독일국적을 지닌 그는 일차세계대전 때, 그곳에 진격해 온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혔다(1917년 9월). 그는 스페인에 가까운 프랑스국경 지대로 끌려가 7년여 동안 벽돌쌓는 일 등 건축노동을 강요당하였다. 이는 의사이자, 신학박사, 철학박사, 음악가, 선교사인 그에게는 전적인 낭비요, 의미없는 일이었다. 자기 경력에도 계획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포로생활을 마치고 람바르네(Lambarene)에 정착하여 의료선교활동을 계속하던 그에게 그 때 그 경험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곳에 밀려드는 환자와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병원과 숙소를 짓게 되었을 때, 건축기술자를 찾기 어려운 그곳에서 슈바이쳐는 포로생활 중에 익힌 건축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때로는 사람이 알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그러나 충분하게 준비를 시키신다.
5) 경청과 공감
예나 지금이나 공감하는 태도 혹은 공감하는 능력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듣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는 다음과 같다: “판단하며 듣는 사람 17%, 질문하며 듣는 사람 26%, 조언하며 듣는 사람 35%, 감정이입을 하며 듣는 사람 22%.” 이 가운데 어느 부분의 비중에 높아야, 경청 또는 공감인가?
성경은 여러 곳에서 여호와는 경청공감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출 2:24-25에 나오는 동사 5개가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님은 경청공감하시는 주님이시다. 자신을 찾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 15:22) 라 부르짖는 여인의 음성을 예수님은 경청하셨다. 그리고 그의 처지와 형편에 공감하셨다(마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주님의 경청공감은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6) 성도다움을 드러내기
모세는 힘센 자가 약한 자에게 부당하게 가하는 횡포를 가로막았다. 우물가에서 그는 약한 자의 편에 섰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그 어떤 종류든 - 자기 자신 안에서건, 사회국가국제관계에선 - 불의와 불법을 멀리하고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는 데서 드러난다(사 56:1; 마 9:12-13; 벧전 3:13-14). 진리와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약한 자를 돕는 것 또한 성도의 본분이다(마 5:16). 사실 정의로운 사회ㆍ국가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자체 안의 약한 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달려 있다. 약한 자를 배려할수록 살맛나고 정의로운 것이지만, 강한 자를 배려할수록 살맛이 떨어지고 불의한 곳이다. 세상에게는 정의와 진리와 평화를 요구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이런 부분에서 무감각하게나 관대한 것 또한 성도다운 생활은 결코 아니다. 불의를 가로막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부터 불의를 멀리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우선 자기 주변에서부터 화해와 화평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엡 5:11 참조).
7) 결혼의 신비
모세와 십보라의 만남과 결혼은 참으로 신비롭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야곱은 외국인(이방인) 중에서 아내(며느리)를 들이지 않았다. 이삭은 에서가 외국인과 결혼한 것을 곱게 보지 않았다(창 26:34-35). 지난 날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인과의 결혼을 이상하게 보거나, 깎아내리는 경우가 있었다.
성경에서 최고의 지혜자로 존중되는 요셉이나, 유대 역사상의 최고 지도자로 손꼽히는 모세가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꺼리는 유대인에게도 성경은 이런 사실을 하나도 감추지 않았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신비요,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서로 다른 사람끼리의 상생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이 귀하면 저 나라 사람도 귀한 것이요, 내 자녀가 귀하면 저 사람의 자녀도 귀한 것이 상식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결혼상대방의 신분이나 출신을 이유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거나 폄하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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