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지금 이 서물이 전 세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자본주의 비판이론의 21세기 최고작으로 격찬되고 있다. 심지어 혹자는 토마 피케티를 '부활한 칼 맑스'로 부르기까지 한다. 해서, 토마 피케티의 '자본주의 비판'에 담겨진 그 분석적 핵심이 무엇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다소 긴 글이다. 바쁜 분들은 그냥 패스하시면 된다. 그러나 피케티의 핵심을 접하고자 하는 분들은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읽어 주시길 바란다. 그의 책 자체는 워낙 길고 방대하다. 참고로, 나는 피케티의 논의에 '절대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배'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이 책의 '출판사 직원'이 아님을 밝혀 둔다. 어디까지나 그 논의의 핵심을 '객관적으로' 또 '상대화하여' 소개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소득격차 문제는 19세기 칼 맑스(Karl Marx) 이후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분석하는데 있어 가장 집중해서 주목하고 있는 긴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학 강단에서 주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불리는 '보수적인' 경제학에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항상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계급 간 소득격차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이렇다 할 소득분배의 이론체계가 없다. 굳이 언급하자면, 주류경제학 내에는 '자본과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그 대가를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지불받는다'는 이른바 '한계생산력설'로 불리는 매우 소박하고 천진스러운 이론(주류경제학자들은 이를 명백한 소득분배 이론이라 주장하고 있다)을 들 수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의 자원배분과 관련된 이론이지, 미국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가 강한 여러 나라(물론 우리나라도 포함된다)에서 지금 심각해지고 있는 극단적인 소득격차 현상를 제대로 분석하고 또 원인규명할 수 있는 이론적 수단은 아니다. 어림 없다.

*주: 주류경제학의 '한계생산력설'에 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좋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21747&cid=40942&categoryId=31819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집필한 이 책은,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장대한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칼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명제와 키워드를 '수량경제사'로 불리는 정치경제학의 한 방법론적 수단을 활용하여 재조명하고 또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국부(National Wealth)와 소득분배에 관한 매우 방대한 데이터를 입수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론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분명 '진보적인' 서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의 논의와 방법이 '자본'의 저자인 칼 맑스를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있는지, 또 얼마만큼 그것과의 '연속성'을 갖는지에 관한 논의는 차치하고 말이다.

*주: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프랑스의 좌파 경제학자(주로 내 전공인 '조절이론'과 같은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과 관련된 연구자)들과 나름 학문적 네트워킹을 해오고 있는데, 그 때문에 피케티가 집필한 각종 논문과 또 이 책의 불어판 드래프트, 그리고 이에 대한 프랑스 경제학자들의 서평 등도 2-3년 전부터 이에 대한 비판적인 또는 옹호적인 연구 모임 등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그간 나의 게으름과 서툰 불어 독해 실력으로 그것들을 정독하지 못 하고 있다가 올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그의 '영문판'을 손에 넣어 이번엔 나름 꼼꼼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피케티가 집필한 이 '두터운 책의 결론'은 사실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다. 그가 '자본주의의 제1 법칙'으로 부르는 명제는 바로 다음과 같은 매우 '간단한'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실 이 식만 이해하면 질릴 정도로 긴 그의 책을 읽지 않고도 '핵심'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만 인내력을 발휘해주시길!

α＝r×β

여기서 α는 '자본분배율(자본수익/소득)'이며, r은 '자본수익율', 그리고 β는 '자본/소득 비율'이다. 이 식은 단순한 회계적 항등식인데, 결국 소득분배가 '자본수익율'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단순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케티가 입수한 통계를 보면 α는 역사적으로 볼 때 'U자형 곡선(커브)'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본분배율'의 장기 시계열 추이를 보면,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소득분배는 유럽보다 더 평등하게 이루어졌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에 유럽의 '자본분배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미국의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미국의 불평등한 소득분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다.

▲ 자본분배율의 'U자형 곡선'

이와 같은 일국 자본주의 내에서의 소득분배의 변화를 주류경제학의 이른바 '한계생산성(marginal productivity, 여타 요소의 투입이 고정된 상태에서 어느 한 요소의 1단위 추가 투입에 대한 증분된 산출의 비율)' 개념으로는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다. 피케티는 이와 같은 소득분배의 양상을 설명하는 가설로서, 다음과 같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제시한다. g를 성장률로 볼 때, r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부등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r＞g

g는 경제전체의 성장률이며 r은 자본축적을 통해 얻는 자본수익률이다. 여기서, r이 g보다 크면, 자본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데, 이때 자본의 투자가 늘어나 결국 자본/소득 비율이 높아지게 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제1 법칙'에서 '자본분배율'이 상승하는, 이런 연결적 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즉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항상 상회하게 되면, 자본수익이 늘어나는 속도가 자본가가 쥐득하는 것 외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상회하게 되면서 소득격차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소득분배의 불평등화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 피케티의 핵심 가설이다. 세계의 역사를 통해 r과 g의 장기 시계열 변화를 보면, r은 항상 g보다 크게 나타났는데, '과세(tax)' 후의 수치 추이를 보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시기에는 r＜g 으로 나타나고 있다.

▲ r과 g의 시계열 비교(과세 후의 수치)

즉, 전쟁과 공황에 의해 자본이 파괴되고 무용화되어, 특히 해외에 투자된 자본이 식민지 독립 등에 의해 작동하지 못 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자본분배율'은 크게 하락하여 결과적으로 미국보다 더 평등한 소득분배를 보이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미국만큼 자본축적이 이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분배는 평등하게 이루어지게 되었고,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성장률은 높게 나타났다. 또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율'보다 높으면 성장률 역시 높아졌다.

패전에 의해 자국 '자본이 파괴된' 일본과 독일의 1945년 이후의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것도 자본축적(자본스톡)이 영미 수준을 따라가는(catch-up) 과정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희한한 현상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 1인당 GDP가 영국 수준에 근접했을 단계에 성장이 멈추었다. 1990년대 이후, 신흥국의 등장과 편입으로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높아졌으나, 이 역시 자본축적이 더 진행되면 이에 따라 수치는 역전되고 또 소득분배의 불평등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요약해보자. 결국 '자본과잉'에 의한 소득불평등의 확대가 '200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바로 피케티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결론이다. 특히 미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여 상위 1/100 계층에 미국 전체 소득의 약 20％가 집중해 있다. 이는 미국의 '자본수익률'이 유럽이나 일본, 한국 등 기타 지역 경제 선진국에 비해 높아 결국 자본/소득 비율 역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인 것이다. '자본수익률'을 어떻게든 낮춰야 '자본과잉' 현상을 막아 결국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본과잉' 현상은 피케티의 이론적 입장에서 볼 때 인구가 감소하여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는 나라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 '전형적인' 예로 언급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을 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미의 경제수준을 따라잡아 가는 과정에서는 g＞r의 양상을 보였지만, 1980년대에 이 부등식은 역전되었다. 1990년대에는 버블 붕괴로 일본의 경제성장이 멈춰버리면서 r＞g의 양상으로 역전되었고 또 이 때문에 일본 기업의 저축(내부유보)초과 현상이 나타나면서 결국 임금 수준이 크게 내려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직까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한국의 자본/소득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우리나라의 '자본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이 책의 가설은 다소 소박하고 러프하며 또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 타이틀과는 달리 '맑스주의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200년 간의 전 세계 통계 데이터에 철저히 뿌리를 두는 그 실증적 관점에 선 그의 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역사적으로' 짚어내고 또 그로 인해 주류경제학의 방법이 갖는 무능함을 폭로하는, 박력있고 설득력 있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과잉' 현상에 대한 대책 또는 대항으로서, 피케티는 글로벌 차원의 '자본과세'를 야심차게 제안하고 있다. 그 실현 가능성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의 제안은 실증적이고 또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논리 정합적이다. 자본주의 체제 내 '소득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자본과잉'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피케티가 주는 실천적 함의이다.

양준호(인천대 교수, 경제학)

양준호(인천대 교수, 경제학)  junho@incheon.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