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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어디 계시나이까?<이윤상 목사의 세월호 이야기>
이윤상 목사 | 승인 2014.12.11 14:44

   
 
2014년 4월 16일, TV 생중계로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 성회수요일이던 그 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서 맞았던 이들 중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성회수요일에 일어난 이 사건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울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이 날의 사건은 구원받은 공동체라는 교회에 던져진 커다란 충격이었다. 우리는 304명의 생명이 차디찬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후 고난 주일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이처럼 생생하고 참혹하게 느껴진 때가 있었을까? 하루 하루 차디찬 바다 속에서 생환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부활의 아침은 밝았지만 살아 돌아온 이는 없었다. 간절한 기도의 응답은 없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혼란에 빠져 들었다. 성경적이지도 않은 설익은 답을 던진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의 뭇매를 맞았다.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뜻이라는데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하느님의 뜻이 304인의 생명이 수장되는 것이었는가? 그렇다면 304인의 희생은 새 시대를 향한 속죄 재물이란 말인가? 동의할 수 없다. 304인은 하느님의 순리를 벗어난 악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이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창조된 세상,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생명 대신 물질 중심과 권력 중심에 눈 먼 죄인들의 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그럴싸한 논리로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한 자들의 범죄에 면죄부를 던져주며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이 날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 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을)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 기도는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깨박이 시연이가 드린 기도다. 지금도 이 기도를 들으면 숨이 막힌다. 시연이가 기도드린 그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

미국에서 목회 하시는 장준하 선생님의 삼남 장호준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묻는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지금 다시 대답한다.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 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과 함께 빠져 있다’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해진다. 꺼내라 꺼내야 한다. 그 어린 아이들의 꽃 같은 고귀한 몸을 꺼내듯 하느님을 꺼내야 한다. 권력이 정의가 된, 가진 자들만의 대물림이 공평이 된, 경찰 차벽에 둘러싸인 곳만이 평화가 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꺼내라. 하느님을 꺼내서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라.”

시연이의 기도와 장호준 목사의 답을 담아 지난 5월 세월호에서 희생된 이들과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생명의 하느님, 하느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임을 믿나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심을 믿나이다.

하지만 저희는 2014년 4월 16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이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찢기는 가슴을 안고 애타게 기도했나이다.

부활의 생명을 보게 하소서. 살아 돌아온 아이들과 부활의 새벽을 찬미하게 하소서. 부활의 아침은 밝았지만 기쁜 소식은 들리지 않았나이다. 차갑고 어두운 거친 바다 속에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절망했나이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나이다. 저희의 약함을 도와주소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저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심을 믿고 기도하였나이다.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나이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살아 돌아 올 줄 알았던 아이들은 너무도 평온히 그 숨결을 하느님 품에 안긴 채, 깊은 안식에 들어갔나이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아빠, 엄마를 얼싸 안을 것 같은 아이들의 생생함은 저희를 더욱 아프게 했나이다.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나이다. 그 아이들이 바로 제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았나이다. 그 아이들의 희생이 저희의 눈을 밝혔나이다.

아이를 잃고 비통에 잠긴 이들이 또 다른 나였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한 지체였음를 비로소 알게 되었나이다. 살아 숨쉬는 모든 아이들이 너무도 고마웠나이다. 비로소 저희가 그들의 이웃임을 알았나이다.

수학여행 같다 온다더니, 이제 집으로 오라는 애끓는 엄마의 외침에서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이 순간이 은총임을 알았나이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신 주님의 말씀이 사무쳤나이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한 아버지는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10달이나 품고 있었으면서 한 달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아이들이 이제 좋은 곳 갔으니 이제 보내달라고 말할 것 같다고” 하며 애써 슬픔을 억누르던 그 모습에서 별 볼일 없어 보여도, 가진 것 없어 보여도, 배움이 짧아 보여도 하느님의 지혜가 모든 이들에게 있음을 보고 중심을 보신다는 하느님을 알았나이다.

그럼에도 주여! 살아 돌려보내주시라는 저희의 기도는 원망이 되었나이다. 지난 어버이 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버인 날을 맞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단원고등학교 2학년 姑 김시연 양의 기도입니다. 이 아이의 기도가 너무도 아픕니다. 우리의 믿음은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많은 이들이 묻나이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살아계신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저희는 믿나이다.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 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과 함께 빠져계시다'는 것을

 이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은 아이들을 사지로 차갑고 어두운 심연으로 아이들을 잠기게 하였나이다. 아이들이 들었을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가 저희 주변을 옥죄고 있습니다. 질식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려는 물속으로 뛰어 들려 달려 온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을 꺼내 달라는 울부짖음에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분노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망언을 쏟아놓은 언론에 항의 하는 희생자 가족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대통령에게 간청하러 가는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이웃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아픈 이웃에게 달려가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모세 한 사람이 깨달았을 때, 모세는 광야로 도망쳐 고난의 세월을 보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노예들이 모두 깨달았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저 깊은 바다 속 그 어린 아이들의 꽃 같은 고귀한 몸을 꺼내듯 하느님의 생명을 꺼내게 하소서. 권력이 정의가 된, 가진 자들만의 대물림이 공평이 된, 경찰차 벽에 둘러싸인 곳만이 평화가 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공의를 꺼내게 하소서. 언제까지 '하나님은 저 차가운 바다에서 고통 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과 함께 있다'라는 자조와 절망 속에 웅크리고 있지 않게 하시고 분노하고, 일어나 외치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을 꺼내 들고 죽음의 세력과 맞서 싸우게 하소서! 성령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외치게 하소서.

사랑의 하느님,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숨져간 이들을 주님 안식으로 인도하시고 남겨진 자들에게는 하늘의 위로로 치유하소서. 지금 머리 숙여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에게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능력을 주소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이 기도를 드리고 난 이후, 삶의 변화가 있었는가? 솔직히 삶의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도의 힘인지 대한민국 전체가 이 사건의 충격 속에 있어서 인지 구분할 수 는 없으나, 여느 사건과는 다르게 그 관심이 지속되며 온 나라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 벌여진 말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한 당혹감과 죽어 가는 생명을 그저 안타까워하며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사건의 현장을 찾았을 때, 그 곳에는 많은 이들이 뒤엉켜 있었다. 희생자의 가족들, 정부에서 파견된 많은 사람들, 기자들, 경찰들, 모두가 자신의 맡은 바 일들을 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삶을 뒤로 한 채,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너 주는 이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종교와 사상, 삶의 방식과 환경을 뛰어 넘어 아픈 마음 나누며 자신을 내어 주는 이들 안에 하느님은 계셨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셨다. 나는 그 힘을 하느님의 거룩한 영의 역사라 부른다. 나는 거기서 그들에게서 하느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분명히 보았다. 애곡하는 곳에서 본 천국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난 12월 6일 다시 찾은 팽목항에는 지난 4월의 찬바람이 다시 부는 듯했다. 북적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120여일을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나의 곁에서 고통과 슬픔의 땀과 눈물을 쏟았던 이들이 그 곳에 있다. 그리고 그들을 하느님은 움직이고 계셨다.

   
 

이윤상 목사  rev.yoons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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