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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2>『논어』위정편(爲政篇) 22.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1.20 12:04

<명구>
「爲政篇」22.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자왈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해석>
공자가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그의 쓸모를 알지 못하겠다.

<성찰>
위정편은 학이편에 이어서 『논어』의 두 번째 장이다.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에서 인간다움이 손상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어떤 공동체가 이상적인 공동체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제일의 관건인가 라는 등의 질문과 성찰이 주를 이룬다.
  
공자는 맨 첫 마디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德’으로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어서 모든 다른 별들이 그것을 향하여 도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즉 그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법이나 경제, 군사 등, 오늘날의 정치에 까지도 제일의 원리가 되는 물질적인 힘보다도 덕과 학과 예 등의 정신적인 힘을 이미 그 시절부터 강조하고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 뒤이어서 곧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유명한 “『시경』 詩 300편의 정신은 한 마디로 하면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공자는 정치와 詩, 정치와 진실, 정치와 인간사고 등의 관계를 밝히면서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인간이 함께 사는 삶과 정치에 있어서 기본 토대와 근거가 되는 일임을 밝혔다.
  
이 위정편에서 공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자신 인생의 6단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15세에 ‘學問’(공부)에 뜻을 두고서 70평생을 걸쳐서 갈고 닦아서 노년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그는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거나 편 가르지 않고(耳順’), ‘매순간 자기 마음(감정)의 움직임이 같이 사는 세상의 보편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從心所欲 不踰矩). 이것을 통해서 그는 정치와 학문, 정치와 교육의 관계를 잘 지적한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참된 학문과 공부, 교육이란 이렇게 그 성취의 열매가 정신적이고 도덕적으로 맺어진다는 사실을 밝혀준 것이다. 
  
이 위정편에서 또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孝’에 대한 것이다. 보통 생각하기를 정치와 효, 또는 정치와 가족적 삶이 무슨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인가 하기 쉽지만, 공자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선생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서경』에 ‘효도하라,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에 미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정치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잘하는 것, 그 부모세대가 지내온 세월과 이룬 것에 대해서 ‘존숭감’(敬)을 가지고 예를 갖추는 것, 과거를 간단히 무시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잘 살펴서 오늘을 위한 배움으로 삼는 것(溫故而知新), 그런 모든 일들이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가족과 같은 작은 공동체와 기초공동체를 위해서 정성을 쏟는 일이 정치가 아닌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 이야기에 뒤이어서 곧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유명한 “『시경』 詩 300편의 정신은 한 마디로 하면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공자는 정치와 詩, 정치와 진실, 정치와 인간사고 등의 관계를 밝히면서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인간이 함께 사는 삶과 정치에 있어서 기본 토대와 근거가 되는 일임을 밝혔다.
  
이 위정편에서 공자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자신 인생의 6단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15세에 ‘學問’(공부)에 뜻을 두고서 70평생을 걸쳐서 갈고 닦아서 노년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그는 ‘어떤 말을 들어도 화내거나 편 가르지 않고(耳順’), ‘매순간 자기 마음(감정)의 움직임이 같이 사는 세상의 보편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從心所欲 不踰矩). 이것을 통해서 그는 정치와 학문, 정치와 교육의 관계를 잘 지적한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참된 학문과 공부, 교육이란 이렇게 그 성취의 열매가 정신적이고 도덕적으로 맺어진다는 사실을 밝혀준 것이다. 
  
이 위정편에서 또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孝’에 대한 것이다. 보통 생각하기를 정치와 효, 또는 정치와 가족적 삶이 무슨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인가 하기 쉽지만, 공자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선생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서경』에 ‘효도하라,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사에 미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정치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늙고 힘없는 부모에게 잘하는 것, 그 부모세대가 지내온 세월과 이룬 것에 대해서 ‘존숭감’(敬)을 가지고 예를 갖추는 것, 과거를 간단히 무시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잘 살펴서 오늘을 위한 배움으로 삼는 것(溫故而知新), 그런 모든 일들이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가족과 같은 작은 공동체와 기초공동체를 위해서 정성을 쏟는 일이 정치가 아닌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가 인간 ‘신의’에 대해서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믿음과 신의가 없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그 사람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말로써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자질은 신뢰할 수 있는 능력, 아니 신뢰받을 수 있는 능력임을 밝힌 것인데, 스스로도 타인과 세계와 미래를 믿을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한 공동체가 인간적인 지지대를 하나 더 얻어서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기대서 삶을 펼쳐갈 수 있는 기초가 되지 못한다는 이중의 부재를 말한다.

‘信’이라는 글자는 사람 ‘人’ 자에 말씀 ‘言’ 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신약성서 <히브리서>의 유명한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대로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언술하고, 그 언술대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위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 단어는 지시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 전부터 모여 살아오며 이러한 경험을 축적해 왔기 때문에 ‘인간’과 ‘언어’의 두 글자를 합쳐서 믿음 ‘信’ 자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인간 말의 힘이 얼마나 센 것인가를 경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자신의 말이 믿을 만하도록 책임적이어야 하고, 오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말이 이루어지도록 실행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의 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HM, 어제가 없는 사람)은 그의 의식 속에 미래의 시간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즉 과거 경험의 일화가 있기 때문에 미래 상상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오늘 우리 ‘믿음’ 해석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과거의 삶에서 말이 실천되는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과거에 격려의 말을 많이 듣고, 진실과 공감과 사랑의 언어를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미래에의 소망과 상상과 기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즉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교 전통의 ‘믿음’(信)의 언어는 보통 기독교에서 인습적으로 믿음을 단지 단 한 번의 결단의 일과 어떤 초월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 등으로 해석하는 일의 한계를 보게 한다. 맹자도 믿음이란 “우리 몸에 있는 것”(有諸己之謂信)이라고 했다. 인간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꿈꾸면서 현재에 그 소망을 품고 행위 하면서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공자의 위정편은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그렇게 더 풍성히, 더 평등하게, 모두의 가능성이 되도록 현재의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간적인 성품보다도 인간의 믿을 수 있는 능력이 그 으뜸임을 가르쳐준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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