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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3>『논어』 팔일편(八佾篇)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1.27 12:29

<명구>
八佾篇 17 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팔일편 17 자공욕거고삭지희양.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해석>
자공이 고삭의 희생제에서 양을 바치는 예(禮)를 없애고자 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사(자공)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 있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

<성찰>
『논어』제3편은 2편의 정치에 이어서 ‘종교’(禮)에 대해서 논하는 팔일편이다. 이 편의 이름이 연원된 ‘팔일무’(八佾篇)란 당시의 예에 따르면 천자(天子)만이 열 수 있는 대무(隊舞)였다. 그러나 당시 대부(大夫)로서 세도가였던 계씨 집안에서 그것을 열자, 거기에 대해서 공자는 그가 그런 일도 감히 하는데, 앞으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세찬 정치비판을 수행한다.

이렇게 공자는 앞의 위정편에서도 보았듯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을 잘 처리하는 근거로서 ‘믿음’을 든 데 이어서 여기서는 예절과 제사, 전통, 권위 등에 대해서 말한다. 믿음과 신뢰가 현재와 미래와 더 관계하는 것이라면, 禮와 종교, 전통은 과거의 권위와 더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신뢰할 만하고, 성실하고, 정직하며 선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인데,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해서 가르치고,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하고, 다시 바른 행위에로 부를 수 있는가? 공자는 그 일을 禮와 전통과 과거의 권위(종교)가 바로 섰을 때 가능해지는 일로 보았다. 그만큼 유교는 ‘권위’를 중시 여겨왔고, ‘전통’이나 ‘예절’을 인간 공동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기반으로 삼아 왔지만 현실에서 그 과부하가 걸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정도를 잃고 스스로의 힘과 욕망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고서 전횡을 할 때(인간 모두는 한편으로 그러한 자기중심주의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를 물어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 자신이 옆의 사람과 하나를 이루고 살았을 때의 기억, 자신의 시원에 대한 감사와 아무리 스스로의 물리적 힘이 더 강하다 해도 감히 그 힘으로도 범할 수 없는, 범해서는 안 되는 부모나 가족, 같은 조상의 공동체나 상대가 있다는 자각과 공경심 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禮와 공경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인간 예의이고, 제사이고, 전통과 권위에 대한 존숭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가 결코 종교가 아닌 것이 아니다.

공자와 유교 전통에서의 禮의 강조는 본래 그 안에 인간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믿음, 전통과 권위가 서지 않으면 현재의 인간 삶은 쉽게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양육강식의 힘의 각축장으로 전락한다는 지혜가 녹아있다. 유대 기독교 전통이 자신들 조상의 시원을 하늘의 하느님에게까지 닿아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기독교 전통에서도 사도와 교회 공동체의 권위를 중시 여기듯이 그렇게 인간다운 공동의 삶을 위해서 유교전통도 ‘전통, 권위, 종교’의 삼중주를 중시한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제자 자공이 당시 제후가 초하룻날 드리는 곡삭의 제사에 산 양을 바치는 禮를 없애려고 하자,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지만 나는 그런 희생제의 전통에 깃들어 있던 정신이 사라질 것을 애석히 생각한다’고 응수했다. 즉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부자였다던 자공이 산 양을 잡아 드리는 희생제를 실용의 차원에서 그만두려하자, 공자는 그렇게 현재만을 생각하는 실용주의는 자칫 전통을 통해서 이어져온 인간적인 정신을  훼손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마치 예수가 그의 발에 비싼 향유를 쏟는 막달라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하는 제자를 일깨우시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공자는 눈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나 돈보다는 보이지 않는 인간적인 가치를 더 중시한 것이고, 여기서 그의 깊은 초월의식을 본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이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했으며, ‘사람이 하늘에 드리는 ‘체’(禘)제사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천하의 일에 있어서도 마치 자신의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는 것같이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즉 하늘과 자신의 기원과 과거에 대해서 존숭감을 잃지 않고, 배은망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한계와 근거를 아는 사람만이 현재와 현실의 삶에서도 현명한 인간적인 리더가 될 수 있고, 그의 마음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과 지혜로 공자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삶에서의 ‘구별의식’(別)과 권위, 하늘에까지 닿는 전통의 禮를 중시한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이 팔일편에서 분명히 밝히기를, “사람으로서 仁하지 않으면 禮를 어디에 쓰며 ... 음악이 있는 들 무엇이겠는가?”라고도 했다. 또한 “예는 사치보는 차라리 검소해야하고, 상을 당해서는 형식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그는 사람이 모여 사는 일에 있어서 쉽게 빠져드는 자기중심주의와 폭력성을 인간다운 방식으로 조절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음악이나 시, 회화의 중요성도 잘 알았다. 즉 예술과 문화의 일을 말하는 것이며, 그 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순화하는 예술을 깊이 있게 배웠다.

그러한 모든 것이 공자의 禮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禮와 예술(藝)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하늘에 맞닿아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종교심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 공동 삶, 정치의 기초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동시에 종교가 아닌 정치란 나에게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종교 없는 정치는 인류에게 그의 영혼을 죽이는 한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과거와 전통과 권위를 모르는 정치, 예술과 문화와 종교를 모르는 정치가 어떠한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팔일편은 잘 가르쳐준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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