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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5>『논어』 공야편 23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2.17 11:23

<명구>
公冶長篇 23 :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공야장편 23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으러 오자 그가 이웃집에서 빌려다 주었다 한다.”

<성찰>
앞 편의 이인편(里仁)에서 공자가 모든 인간 문화와 정치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仁에 대해서 들었다. 5편의 공야장편에는 주로 그 仁에 근거해서 그가 주변의 제자들과 당시 유명 인물들에 대해서 평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이 편의 이름이 된 공야장은 공자의 제자이면서 사위가 된 공문 칠십이현의 한 사람이다. 그는 새의 언어를 알아들을 정도로 섬세하고 뛰어난 공감(仁)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자는 그를 전과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사위로 삼았다도 한다.

공야장편 23편의 미생고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여성성리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2)의 유고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성이 미생이고 이름이 고였던 그는 당시 매우 정직하고 올곧은 인물로 소문이 나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꾸러 오자 자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웃집에 가서 꾸어다가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미생고를 공자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았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남에게 꾸어서라도 자신을 너그럽고 풍족한 사람으로 치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경험을 우리도 많이 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착한 여자’ 콤프렉스 같은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여러 가지 가식이나 치장, 심지어는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상황을 감추고, 정직함을 훼손하면서 겉모습을 위해서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공자는 어쩌면 우리가 이해해줄 만도 한 이런 응변에 대해서 그것은 直이 아니며, 그래서 인간다운 것(仁)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공자는 이 구절 다음에 다시 좌구명(左丘明)이라는 사람이 “교언영색(巧言令色,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밈)”하면서 지나치게 공손하게 구는 것과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匿怨而友其人)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속으로는 원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거짓이고,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삶의 행태는 오늘 우리도 많이 행하면서 사는 모습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경쟁시대에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화를 드러내는 일을 실패로 여기며, 친구관계도 얻어지는 이익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는 타인과 더불어 스스로를 속이는 일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미생고 이야기에 대한 한 주석에 의하면 여기서 ‘미생’(微生)이라는 이름은 양의 해인 ‘을미년’(乙未年)에 태어난 사람을 뜻하는 성으로 얼마전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서 큰 인기를 끈 ‘미생’(未生)과도 통하는 뜻이라고 한다. 즉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아니 아직 태어난 것도 아니어서 태어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남의 눈치를 보고,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참으면서 자기를 숨기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내적 자존감과 자긍심이 약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 행태로 내몰린다.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자존감이 길러지지 못했고, 또 오늘날처럼 이른 시기부터 경쟁에 내몰려서 항상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상대화되면서 자신 속에 독자적인 판단과 행위의 중심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와 공자도 어린 시절 아주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러한 난점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고유한 인격으로 성장하셨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 편에 따르면 공자는 70세 노인  아버지와 어린 신부 사이의 후처 태생이었고, 아버지가 세 살 때에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창고지기나 가축사육인 등 비천한 일을 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수나 공자 모두에게서 그 어머니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예수의 마리아도 그렇고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顔徵在)도 온갖 어려움과 사생아 아들들의 탄생에 대한 마음의 고초, 물질적인 빈곤함 속에서도 자식들의 자긍심과 자존감이 손상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오늘날은 오히려 그런 어머니 역할을 여성들이 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시대가 모성의 역할을 하찮게 여기거니와 당장의 돈벌이가 여성들로 하여금 그 역할을 방기하고 이양하도록 만든다.

예수와 공자의 어머니 모두 그 자녀들에게 심어준 가장 귀중한 자질로 스스로 배움과 뜻을 찾아 나서는 ‘자발성’이었던 것 같다. 공자는 이 공야장편의 마지막 언술로 “열 집 고을에 반드시 나만큼 충성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지만, 나만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하였다. ‘배우는 것을 좋아함’(好學), 학문을 깊이 사랑하고, 스스로 깨우쳐가는 것을 좋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서 마침내 그들이 이룩한 경지란 놀라운 것이다.

요즈음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식 교육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이 이 공부에서의 자발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 스스로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 요사이 『공부하는 엄마들』(김혜은, 홍미영, 강은미 공저, 유유)이라는 책이 소리 소문 없이 많이 읽힌다고 하는데, 이렇게 이 땅의 엄마와 여성들 가운데서 호학자가 많이 생긴다면 그들 자식들의 공부에 있어서도 오늘날과 같은 억지와 억압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영적이 것에 관심이 많고 젊은 엄마의 사생아였던 공자는 그런 가운데서도 잘 성장하여서 자신 삶의 뜻을 “나는 늙은이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에게는 믿게 해주고, 젊은이들을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子懷之)라고 고백하는 큰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서구 기독교 사상가 페스탈로치의 고백대로 궁극적으로 은총이 없이는 사랑과 믿음이 가능하지 않지만, 공자나 예수, 페스탈로치와 같이 인류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람들에게서는 은총과 학문, 종교와 교육은 동전의 양 편이다. 이들에게서의 교육과 공부는 인간 자연 속에 놓여진 신적 불꽃을 참된 인간성으로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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