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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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산 남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이 되었다. 그 당시엔 울산에 구치소가 없어 남부경찰서 유치장이 구치소를 대행하고 있었다. 유치장 구치소는 넓고 컸다. 마치 콜로세움 경기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유치장의 규모는 매우 웅장했다. 나는 청송감호소의 위용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터라 감옥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소위 전과자의 이력이 그런 분위기를 뛰어 넘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경찰 간수를 따라 감방 앞에 섰다. 감방 안에서는 신입을 받는답시고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는 듯 했다. 그런 분위기는 한 눈에 읽을 수 있는 나였다. 간수는 철문을 따주고는 나를 안으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했다. 철창살이 빼곡하게 박힌 감방 안에는 서른 명쯤 될 만한 죄수들이 촘촘히 정열해서 앉아 있었다.
나는 철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감방 안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울산 남부유치장 하면 전국에서도 감방규율이 거세기로 유명하다는 일화를 보호실에서 이미 들었으므로 나는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감방 안을 침착하게 둘러보았다. 감방은 약 10여 평 될법했다. 검은 마룻바닥은 죄수들이 얼마나 닦았음인지 뻔질뻔질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감방 뒷벽으로는 용변 보는 사람의 머리가 보일 정도의 화장실 문이 낮게 매달려 있었으며 그 옆으로 담요뭉치를 쌓아 놓았는데 그 뒤에 인간 하나가 거만하고 여유롭게 쳐 박혀 있었다. 감방장일 것이라는 추측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양은 그릇 두 개와 스푼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을 때 죄수 중에 키가 작달만한 녀석 하나가 내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왔다. 간수는 철창 앞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간수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키가 작은 죄수 녀석이 드디어 앙칼지게 입을 열었다. <걸레물고 꼴아 박아！>
군대말로 걸레를 입에 물고 원산폭격을 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감옥소의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최대의 예의는 순응이었다. 나는 일단 순응키로 했다.
나는 걸레를 입에 물고 머리를 마룻바닥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두 손을 허리춤으로 올려놓았다. 순간, 머리가 터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키 작은 죄수 녀석이 다시 한 번 더 짧게 외쳤다.
“앞으로 전진！”
아뿔싸, 원산폭격 체형을 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나는 마룻바닥에서 머리를 질질 밀기 시작했다. 순간, 온 몸이 휘청거렸다. 그 몸짓은 금방이라도 넘어질듯이 위태로웠다. 그때였다. 마룻바닥에 앉아있던 죄수 서너 명이 벌떡 일어서더니 <이 새끼야 똑바로 해！>하며 엉덩이를 발로 내려 차며 넘어져 있는 나를 짓뭉개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발길질에 속절없이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유치장의 인권유린이 예상보다 혹독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참았다. 죄수끼리의 구타와 유린은 지루한 징역 시간을 때우기 위한 <땜방질>이라는 것도 나는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머리를 마루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앞으로 전진 하려 애를 썼다. 그러기를 10여분, 그들은 철문에서 화장실까지 채 5m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내가 그곳에서 원산폭격을 한 채로 가지는 못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키 작은 죄수가 짧게 말했다.
“일어서”
내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일어섰을 때는 머리를 장발을 한 잘생긴 사내 하나가 나를 보고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사내는 단순 범죄자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런 놈은 대개가 소매치기과에 속해있다는 것쯤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좁은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도록 했다. 바깥간수들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그를 마주보았다. 그도 쭈그리고 앉았다. 그와 나의 거리는 채 50㎝도 안 될 거리였다. 그는 잘생긴 꽃미남이었다. 그 꽃미남은 아무 말이 없더니 순간적으로 <훅>을 날렸다. 나는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날아온 그의 주먹에 <흡>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어서 그의 주먹이 나의 복부로 날아들었다. <한번, 두 번…세 번….>그는 세 번을 나를 향하여 주먹을 날렸다. 나는 고스란히 그의 주먹을 받아들였다. 그가 다시 네 번째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나는 그의 주먹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단호하고 낮게 말했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나도 꽈배기요”
그는 예상치 않았던 나의 강력한 방어에 잠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어？ 이 새끼 봐라 꽈배기 흉내 내고 있네！” 그는 바깥 감방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그렇지만 나는 “좀, 봐 주슈, 나도 이곳 경력이 꽤 돼요. 이번에도 오래 살것 같은데….” 나는 꽈배기(묵은 전과자)흉내를 심하게 풍겼다. 그것은 겁을 내지 않고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을 설득시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 두슈, 이형 그만둬> 이불로 쌓은 굴에서 그리 중후하지 않은 목소리가 뺑기통 안으로 들려왔다. 감방장인듯 했다. 아마도 나의 꽈배기 행동이 메시지로 통했나 싶었다. 그들은 감옥의 신참과 경력고참을 심하게 구분했다. 그것은 경력 고참은 이미 감방세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다간 감방장의 위치까지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어 그것을 방지키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경력 고참을 잘 대우 해주어 수족으로 쓰는 것이 감방 안 체제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감방 고참이 사회에서는 냉대 받지만 감방 안에서는 역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과부가 과부마음 안다는 식의 논리로 이해되어도 좋을 듯 싶었다.
나는 감방장의 배려로 그날 밤은 더 이상의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고 죄수들 틈 사이에서 깊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속칭 면벽참선을 당해야 했다. 신참은 별도의 신고식이 있을 때까지 이틀정도 면벽참선을 시키는 것이 관례인가 보였다. 그들은 나의 면벽참선 자세를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이틀 동안 면벽 참선에 빠져있을 때 다음날 오후 점심을 끝낸 후 그들은 다들 감방가운데에 앉을 것을 명했다. 그리고 종이쪽지를 주며 순서대로 말 할 것을 주문했다.
1. 주소 2. 죄명 3. 성명 4. 구속동기
그들은 종이에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먼저 들어오신 선배님들, 옥중생활이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부디 좋은 결과 있으시어 하루속히 사회로 석방되시기를 기원하며 저의 주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요절복통할 내용의 문장을 읽고 얼마나 속으로 낄낄 거리며 웃었는지 모른다.
지들이 무슨 독립투쟁이라도 하는 듯이 <옥중생활>운운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내용을 처음 보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실수를 범 할 뻔 했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주소와 죄명과 구속동기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나의 죄명과 구속동기를 쥐 죽은 듯이 듣고 있던 감방에 작은 술렁임이 일고 있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소위 내가 자기들과 같은 파렴치범이 아닌 양심 사범이라는데에 대한 놀라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파렴치범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의식>같은 것이었는데 일종의 열등의식의 표현이었다. 같이 수감된 죄수 신분일지라도 결코 자신들과 같은 죄수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파렴치범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나는 그들의 갑작스런 반응에 도리어 적잖이 당황스러워졌다. 짐짓 무게만 잡고 있던 감방장 까지도 황감해 하는 눈치가 역력 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감방에 신분이 전혀 다른 <귀한 분>이 왔다는 모습들이었다.
나는 감방장의 은밀한 지시에 의하여 감방 고문으로 임명받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계급이 정해져 있었는데 감방 안은 작은 자치 정부로 형성되어 있었다. 배식반장/규율반장/창고반장/식수반장/총무 등 여러 개의 직책들이 그들 사이에는 공존하고 있었다. 그들은 감방안의 지배계급이었다. 입감 순서에 따라 그 직책은 정해지는데 한사람이 출소하고 나면 다음계급이 물려받곤 했는데 다음 순번이 어리숙한 사람이면 절대 자리는 보장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화장실 앞에서 꼴찌 신입으로 대우 받아야 할 내가 단번에 감방장과 함께 밥상을 같이하는 고문 자리에 취임케 된 것이다. 나는 이 기이하고도 이상한 우대 구조에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감방에서 정해지는 결정에 불복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우스웠지만 나는 이 작은 자치정부의 뜻에 순응키로 했다. 그리고 감방의 분위기를 며칠 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 감방은 대개 아침 6시경에 기상하여 밤10시경에 취침에 들어갔다. 그들은 참으로 질서 정연 했다. 서른 여명의 인원들은 양치질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했으며 모든 것을 순서대로 질서 있게 진행했다. 그들은 놀랍게도 그 질서에 매우 능수 능란 했으며 누구도 사회에서 범죄인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양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것은 감방안의 지배구조였다. 그 방에도 권력층과 기층민중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낮에는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왔는데 면회를 다녀간 후에는 반드시 사회에서 넣어 주는 차입물이 있고 차입물에는 푸짐한 다과류가 들어왔다. 이 지배층들은 그 다과류를 아래계급들과 결코 공평하게 나누어 먹지 않고 있었다. 설사 아무리 많은 차입물이 한 개인에게 들어왔다 해도 그가 지배층이 아니면 빵 배당분은 1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하부계급들이 잠들 시간에 지배계급들인 자신들끼리만 일어나서 그 많은 음식물들을 먹어치운다는 사실이었다. 하부계급들은 그들이 즐겁게 다과류를 나누어 먹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입속에서 침이 다이빙을 하는 처절한 배고픔을 밤마다 경험해야만 했다. 물론 내 자신 또한 고문이었지만 그들 실세 계급들이 즐기는 그 밤의 잔치에는 끼워지지 않았다. 배고픈 밤, 그들이 부스럭거리며 먹어 치우는 사제 음식냄새는 기가 막히게 식욕을 자극시켰다. 배고픈 밤, 20여명의 피지배계급들은 그들이 음식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는 하나같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누군가로부터 면회가 왔던 기억이 있다. 그는 면회 후 많은 차입물을 넣어주고 갔다. 다른 사람 면회 분량의 대 여섯 배가 넘는 거대한 차입물이었다. 나는 내 차입물만은 지배계급 피지배계급 구분치 않고 골고루 음식을 나눠먹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그들만의 밤잔치 못지않게 한번 식욕을 달래보리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순진한 생각은 어이없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내 차입물을 자신들의 것 인냥 창고 담당에게 넘겨주고 그날 밤 역시 그들만 모여서 <쩝쩝>거리며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누워 자는 척 했지만 나라도 그 자리에 끼워주겠지 했다. 그러나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그들은 끝내 나를 부를지 않았다. 어이없는 착각이었고 착취였다.
나는 그날 밤부터 고민에 빠졌다. 이 지배구조를 무너뜨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밤마다 규율을 잡는답시고 정기적으로 이어지는 폭력은 참으로 쳐다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 20대 초반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한결 같이 결손가정 출신이거나 고아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이들은 간수들의 묵인 방조 아래 철저히도 구박하고 폭력 당했다. 나는 이 지옥 같은 감방 안 분위기를 바꿔놓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나의 그 결심은 그들과 피 튀기는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바깥사회에서나 감옥사회에서나 주류들에게의 도전에는 항상 핍박과 고난이 따른다는 것은 그 구조나 성격면에서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바깥세상의 기형적 구조를 폭로하여 저항하려다 미수에 그쳐 들어온 내가 감옥 안에서조차 구조적 모순에 희생된다는 것은 참을 수없는 치욕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지배했다. 나는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내가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의 다짐을 하고 있던 즈음에 하늘이 도왔는지 학원 강사 출신 한명이 사기죄로 들어 왔다. 그는 부산대 출신이었는데 강사료를 미리 받고 출강을 하지 않아 사기죄로 구속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말이 조금 통하는 그와 필담을 두고 받았다. 글을 써서 감방간부들이 보지 않도록 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감방구조에 대하여 지적을 하자 신참취급을 받고 있던 그 자신이 그 대상인지라 금방 내 지적에 호응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내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금방 내 요구에 응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 삼십 여명의 죄수들에게 나는 최대한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절대 반말을 쓰지 않았으며 먹을 것 한 조각이라도 생기면 그들과 나누어 먹었다. 밥이 들어와도 꼭 한 숟가락씩 옆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남은 밥으로 배를 채웠다. 방청소도 나이 많은 사람이 하면 내가 대신 쓸어주기도 했으며 혹 누가 잘못을 하여 체벌을 받을라치면 감방장에게 누누이 설명을 하여 그를 감싸주려 애썼다.
이런 식의 생활을 한 달 정도하고 나니까 감방안 죄수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의견이 수시로 표출되었다. 혹 감방회의를 형식적으로 나마 열면 그런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심리적인 외로움과 재판에 대한 공포심 따위를 내게 의지하려 들었다. 나는 일일이 그들의 가정문제와 재판 문제 등에 대하여 소홀히 하지 않고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때로는 대필을 하여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면회를 오게 하는 개가를 올리게 하기도 하였다. 항소장도 대필하여 주기도 하였고, 법률상담도 아는 만큼 성심껏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이런 분위기가 되다보니 감방장도 어느새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나는 짐짓 모르는 척 했고 나 역시 그들에게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내게 어떤 꼬투리가 없는 한 그들은 나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몇 번이나 간식 배식에 대한 문제를 감방장과 감방간부들에게 거론을 했다. 함께 골고루 나누어 먹자고… 그러나 그들은 나의 말을 못들은 척했다. 그들은 감방에서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담배를 구하여와 내게도 피울 수 있는 특혜를 주었으나 나는 담배 피는 것을 거절했다. 감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제일 큰 규칙위반이다. 나는 그 규칙위반을 겁내기보다 원래 담배 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사 핀다고 하여도 그들에게 약점이 될 것이므로 담배에 관한한 정중히 거절을 한 것이다. 이런 나의 원칙적인 행동이 따르니까 그들은 내게 불만이 있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드디어 거사 날짜를 정하였다.
나는 감방 간부들과 협상할 내용을 미리 최 선생과 필담으로 의논하였다. 첫째, 감방식구들에게 구타를 가하지 말 것, 둘째, 간식을 골고루 나눌 것, 셋째, 감방 간부 제도를 없애고 감방장만 둘 것, 넷째, 감방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것. 이렇게 네 가지의 요구사항을 정하고 나서 지금부터 이틀 뒤 소위 저녁 군기시간에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의견을 따르는 자들은 전부 규율반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내 지시에 따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감방식구의 ⅔이상이 내 식구가 되어있었다. 적어도 20명이상이 점조직으로 나를 따르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다. 스트라이크 날짜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감방식구들은 눈짓과 행동에서 내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기대에 차 있었다. 갇힌 것도 고통스러운데 같은 수인으로부터 죄인 취급 받으며 수탈당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지 그들은 하루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앉은 자리가 법당>이라고 누가 말 했던가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그곳이 지옥 인 것이다. 그들은 출소는 꿈도 못 꾸니 감방살이라도 마음 편하고 육신 편하게 살고 싶음이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내게 또다시 면회가 있었다. 나는 면회 올 사람이 정하여져 있었다. 면회 올 사람은 이미 두서너 사람이 전부 왔다 갔다. 이제는 한 달 뒤에나 그들이 면회를 올 것인데 누가 왔을까, 분명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의아스러웠다. 간수가 철문을 땄다. 나는 면회실로 가면서 간수에게 누구 면회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서 감옥은 교도소와 달라서 바깥을 내다 볼 공간이 없다. 즉 창문이 없는 것이다. 창문이라고 해봤자 천장 옆에 공기 구멍만한 작은 구멍하나가 딸랑 뚫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바깥 하늘이라고 구경해봤으면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면회실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바깥 면회실문이 열리며 여인 하나가 들어섰다. 나는 잠깐 눈이 부셔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촌음을 사이에 두고 그가 누구인가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순옥씨가？”
“이런데서 만나네요. 선생님”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도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도 감정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워 내 쪽에서 먼저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귀한 분에게 험한 꼴을 보여드려서…. 저는 원래 이런 놈입니다.”
“잘 몰랐어요. 소식 기다리다가 연락이 없어서 이삿짐센터를 찾아갔었어요. 거기서 선생님 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재수가 좋은 셈이었지요. 아마 선생님 심부름으로 임금 받으러 왔다가 날 만났나 봐요.…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는 것을 억지로 물어서 알았어요.”
“실망했습니까？”
“대강은 짐작을 했어요. 선생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 사이에 예쁘게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아직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내같은 사람 가까이 하면 혼이 납니다. 다음부터는 오시지 마세요. 생채기 생기기전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말했다.
“선생님, 저도 어린아이 아니에요. 저도 민족문학 진영의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선생님 만나고 난 뒤부터 무식 하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공부 많이 하는 걸요”
“그래요？ 하하”
나도 짐짓 명랑한 척 소리 내어 한 번 웃어주었다. 그녀는 소리 내어 크게 웃고 있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듯 했다. 갇혀 있는 사람에게서 보는 웃음이 신기했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단 한 번 본 여자일 뿐 한 번도 가까이서 개인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데… 대화의 화두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감옥에서 언제 나와요？”
나는 막막했다. 순간 뭐라고 답을 해주나, 이 순진한 여성에게 무슨 말을 해주나 싶었다.
“좀 있을 거예요, 약간 오래….”
“약간 오래 ？”
“네, 약간 오래…”
“한 달？… 두 달？ ”
“아뇨？ 그보다 훨씬 더 길어요. 한 열배쯤…”
“열 배나요？ 그럼 1년？ 2년？”
나는 대답을 않고 웃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죄는 약간 길게 살아요. 대통령이 매우 싫어하는 죄거든요…. 자신의 과거를 폭로 하려 했으니…”
“변호사 선임하셨나요？”
“네,”
나는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변호사를 선임 했노라고 말해주었다.
“선생님 편지 쓸께요. 이 경찰서 유치장으로 쓰면 되지요？”
“그러세요. 주소는 물어보면 됩니다. 여기서 1심 재판 때까지 약 두어 달 있을 거예요. 그 이후 부산구치소로 가게 될 겁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면회 종료 벨이 울렸다. 나는 그녀를 보고 나가보라고 손짓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문밖으로 나왔다. 왠지 까닭 모를 슬픔이 <와락> 밀려왔다. 자꾸만 그녀에게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쓸데없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이제 또 2년 이상의 징역을 살 놈이 웬… 여자를 생각하다니… 어리석은 놈…>하면서 자신을 질타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바깥에 있는 한 여인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작은 혁명을 하고 있다. 혁명가는 여자 때문에 울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혁명을 해야 할 중대한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 그 세월은 1~2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잊어라… 아니, 남의 귀한 여자의 장래 망치지 말아라> 나는 또 한번의 눈물을 훔치며 그 여인을 마음 밖으로 강제로 밀어내고 있었다. <독해져야 한다. 독해야 이룬다> 감방으로 돌아오니 나의 측근 수인들이 누가 면회를 왔느냐고 막 물어댄다. 나는 웃기만 했다.
그들은 나의 면회가 무척이나 궁금한 듯싶었다. 내게 면회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가 매우 궁금한 듯 했다. 소외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바깥세상에서는 범죄자 취급받으며 감옥으로 밀려났으며 감옥에서조차 소외된 인간들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언제나 가진 자, 배운 자들에 대한 동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한 끼 밥이 소중하여 몸부림치다 사회공동체로부터 인간 외곽지대로 밀려난 것이었다.
드디어 스트라이크를 일으킬 결사의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일치감치 식사 후에 눈짓으로 동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금 뒤면 규율반장이 군기 대열로 정좌를 시켜 놓고 사람들을 후려칠 것이다. 이유도 없이 군기가 빠졌노라며 사람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때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시를 거부할 것을 선언하고 수인들에게 나를 따를 것이냐 규율반장과 감방장을 따를 것이냐고 묻고 그들이 시키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며 모두가 단체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계획은 아주 짧은 순간에 힘 있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나를 따르는 숫자가 적으면 쿠데타가 불발에 그칠 것이나, 그래도 나는 혼자라도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감방의 간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바둑을 두거나 숨어서 담배를 피거나 하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계획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조금 뒤였다. 규율반장 박 경용이 작달만한 키를 흔들며 감방 가운데 버티고 섰다. 그가 군기를 잡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후려 칠 시간인 것이다. 그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나이 스물셋,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할 나이인 그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 많은 어른이라도 말을 팍팍 까버리는 버릇 나쁜 녀석이었다. 녀석은 소매치기 전과자로서 벌써 감방을 네댓 번째 들락거린 놈이었다. 아는 것 이라고는 감옥소 분위기에 너무 밝다는 것뿐이며 범죄세계에서는 알아주는 놈 이라는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만이 살맛이 나는 놈이라고 했다. 바깥보다 감옥이 더 정겹고 살기가 편하다는 하류인생이었다. 그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이새끼들 군기 빠졌어！ 모두 벽 타！”
그의 명령이 떨어졌다. <벽 타！>라는 말은 1초 내에 벽을 기대고 정좌하라는 말이다. 이어서 <정렬！>이라는 구령이 또 떨어졌다. 사람들이 벽에서 등을 떼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감방 가운데 횡대로 줄을 지어 보기 좋게 정좌했다.
그러자 박경용은 검정 고무신짝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등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그가 때리기가 수월하게 등을 구부려 주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따딱 따딱>하며 감방을 신경질적으로 핥고 지나갔다. 간수들은 그 시간쯤이 되면 일부러 자리를 비워 주었다. 자기들 대신 군기를 잡으라는 뜻이었다. 누군가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하여 박경용은 그의 목을 신짝으로 사정 볼 것 없이 내려쳤다. 그가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순간 나는 눈에 불꽃이 튀었다. 나는 용수철 튕기듯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야！ 박경용 그만해！”
순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에 감방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감방간부들은 < 아니 저 새끼가？>하고 나를 소리 없이 째려보고들 있었다. 다음 행동은 여차하면 나를 덮쳐서 몰매를 가할 모습들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야！ 박경용 그만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 중 너보다 나이 작은 사람은 두 명 밖에 없어. 너 밤마다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구타, 린치하고 있어. 이건 명백한 인권유린이고 범죄행위야！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
나의 예기치 않은 반발에 감방 안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감방장은 이불무덤 뒤에서 이 예기치 못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까 하고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기서 항명을 하는 것은 감방장과 더 나아가 유치장 간수장에게 항명하는 것이나 똑같은 것이다. 박경용은 하수인에 불과 한 것이다. 만약 여기서 감방장이 뒷수습을 못하면 감방장은 그만큼 지도력과 권위를 잃게 되고 감방장의 위치까지도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감방 안에는 권력에 도전하는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사회로 치면 민주화운동과 같은 것이다. 민주화운동이란 것은 잘못된 체제에 도전하여 그 체제를 바로 잡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니만큼 국가나 작은 공동체나 그 의미는 똑같다 할 것이다.
다시 내가 외쳤다.
“여기 앉아 있는 동료 여러분！ 저기 서있는 박경용 이가 밤마다 군기를 명목으로 사람을 구타하고 린치를 가하고 있어요. 그러니만큼 내 말을 따를 사람은 일어서고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앉아 있어도 좋아요. 나는 여러분과 내 자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분명히 말합니다. 방안에는 구타가 없어야 합니다. 두 번째, 간식의 배식이 똑바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 감방에 웬 간부가 그리 많습니까？ 감방장외에는 간부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네 번째, 모든 인간은 법 앞에는 평등합니다. 감방에서는 감방장을 비롯하여 모두가 똑같은 피의자신분입니다. 같은 피의자로서 평등하게 감방에서 지내야 합니다. 자 내 말을 따를 사람은 일어서시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대로 앉아계세요.”
사람들은 내 말이 떨어지자 말자 우르르 일어서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최영호씨가 일어섰다. 그다음에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줄잡아 이십 여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때 박경용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감방장 쪽으로만 연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구원의 요청인 것이다. 금방까지도 기세등등했던 규율반장의 권위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는 쥐새끼처럼 아주 나약한 미물로 변해있었다. 서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전부가 얼굴들이 상기되어 있었다. 혁명이었다. 혁명의 힘은 그렇게 큰 것이었다. 감방간부 누구도 이십 여명이 넘는 많은 숫자를 어떻게 처리 하지를 못했다. 사실 감방안의 작은 체제는 경찰 당국과 맞물려 있었다. 경찰당국은 감방유치장을 통괄하려면 질서를 잡아야 했다. 그들은 감방간수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고 감방간수는 감방장에게 각 감방의 질서를 위임시켜 놓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감방의 구조적 모순은 경찰당국과 맞닿아 있다 하여도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감방 안에서의 혁명은 경찰당국과 맞짱을 뜬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방장의 머리는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였다.
그가 만약 머리가 명쾌한 사람이었다면 경찰 간수장과 내통을 하여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유치장체제 비판자로 몰아 얼마든지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너져 내리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그는 이불무덤 뒤로 나를 살짝 불렀다. 그리고 소근 거렸다. <이고문, ( 그는 나를 이고문이라 불렀다.) 뭐가 부족해요？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일단 사람들을 방바닥에 앉혀요.> 그의 그 말은 백기를 든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일단 착석 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내게 미리 말하면 될 것이지 왜 단체 행동을 해요> 그는 밀수범답게 아주 은밀하게 나와 거래를 요구했다. 그리고 방안의 모든 특혜를 자신의 위치 다음으로 줄 테니 요구사항을 백지화 시키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찼다. 이 사람은 내 하나 편하자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인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구타 근절, 간식 배분, 방안의 민주화>를 나는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와 나의 담판은 그날 밤에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나을 유혹했으나 나는 계속 거절만 했다. 뒷날에 조식 뒤에도 그는 내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계속 보챘다. 심지어는 그 귀하다는 양담배까지도 내게 권해 왔다. 물론 거절 했다. 사람들은 감방장과 내가 속삭이는 밀담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나와 감방장이 협상하는 동안에는 방안은 예전의 강제군기는 완전히 사라진 자유천지였다. 사람들은 달라진 감방안 분위기 때문인지 모두 인상이 풀려 있었다. 주전자의 물도 마음대로 부어 먹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다녀왔으며 마음대로 일어서서 걸어 다니기도 했다. 또 누구나 철창살 앞에 걸어갈 수도 있었고 마음대로 간수를 부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부자유였다. 모든 것이 규율반장의 허가 하에 이루어졌던 금기사항들이었다. 감방안의 분위기가 자유화 분위기로 바뀌니까 기득권세력들은 자존심이 상해 미치겠다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람들을 두들겨 팰 것 같은 심한 인상들을 해보였다. 감방장이 지시만 내리면 진압을 해버릴 무서운 인상들은 해보이고 들 있었다.
그러나 협상을 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침묵했다. 감방장은 마지막 협상에서 구타근절과 간식 평등배식만은 실천 할 테니까 나머지는 거두어 달라고 했다. 즉<감방간부제도>와 <감방안의 완전평등>은 허락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와 입씨름을 했다. 그의 말은 감방 안에 완전평등을 시행하면 질서는 오간 데가 없어지게 되고 규율이 엉망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나는 1조 2조 3조 십 명당 한명씩 조장을 정하여 강제가 아닌 자율로 감방분위기를 유지해보자고 하였다. 감방장은 그러면 조장은 간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장은 1주일 단위로 돌아가면서 맡으면 된다고 맞받아쳤다. 어쩌면 감방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바깥에서 부모말도 안 듣고 범죄 하던 사람들이 자율제를 시행한다고 잘 지켜질 것 같냐는 얘기였고 감방규율이 엉망이 되면 결국 바깥 간수들이 감방내부생활에 간여하게 되면 감방의 자치규율은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간수들이 원칙적인 감방규칙을 요구하면 곱징역을 살아야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간수한테 체벌을 받고 간수에게 곱징역을 살지라도 같은 피의자에게서 수모를 받는 것은 더 못할 일이라고 맞섰다.
그때였다. 갑자기 감방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에이- 개새끼>하며 내게 참아왔던 감정을 일시에 폭발을 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 순간 그의 욕설을 듣는 순간 <뭐？ 이 새끼가！>하고 맞섰다. 그때 감방장이 벌떡 일어서더니 나의 복부를 걷어찼다. 나는 기습을 당한 뒤 나도 재빨리 일어나 지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면상을 보기 좋게 한 방 날려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그동안 참고 있던 감방안의 간부들이 떼를 지어 나를 공격해왔다. 그들은 내게 이불을 뒤집어씌워놓고 짓밟기 시작했다. 갑자기 숨통이 막혀왔다. 감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씌워놓고 두들겨 패는 <모다구리>는 오래전부터(일제 때부터) 내려온 감방전통의 체벌이었다. 즉 소리 나지 않게 두들겨 패는 요령이었다. 나는 그때 고함과 괴성을 질렀다. 몸은 결박당하여도 입은 살아있는 것이다. 입을 통하여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므로 내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감방에는 <우당탕>하는 소리로 일대 난리가 났고 수많은 감방들은 우리방의 동정을 살피느라 온 사동(舍洞)이 갑자기 침묵에 잠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경 간수무리들이 우리 방으로 한 무더기가 뛰어들어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와 감방장이 바깥 간수실로 끌려 나갔다. 나는 기세등등하게 바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둘은 조사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간수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감방장편에 서 있었다. 나는 간수들에게 방안의 비민주화와 집단폭행의 부당성을 호소했으나 그들은 그 말은 먹어주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나는 난감했다. 나는 간수들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감방장은 감방으로 되돌아갔다. 간수들은 내게 수갑을 덜컥 채웠다. 조용히 하라는 것이었다. 수갑을 얼마나 세게 채웠던지 손목이 끊기는 통증이 엄습했다. 내가 힘겨워하고 있을 때 그들은 수갑을 풀어 줄테니 감방에서 조용히 지내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조건부의사를 제시했다. 나는 일단 <그러마>라고 그들의 말에 순응했다. 약 10여 분만에 그들은 수갑을 풀어주고 감방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런데 이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감방으로 되돌아가니까 감방동료들이 느닷없이 만세를 부르고 야단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늦게 알았지만 감방장이 간수실로 끌려가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감방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함께 끌려 나가는 것은 지배자가 엄청난 권위적 손상을 입은 것이라는 것이다 .웬만하면 감방장은 절대 끌려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방장의 잘못이 약간 있어도 간수들은 절대 죄수들 보는 앞에서 감방장을 불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관례였다는 것이다. 방안 규율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간수들이 만들어 낸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간수들이 감방장과 나를 나란히 불러내 간수실로 끌고 갔고 똑같이 아무 일 없이 감방으로 보낸 것은 이미 감방장의 권위를 뺏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간수들이 나를 곱게 돌려보내준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소리 없는 혁명에 대한 묵인이며 이미 감방장에게서는 자격을 박탈한 것이며 또 그 감방장의 권력을 내게 묵언으로 승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감방장은 두 어깨에 힘이 쫙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날부터 이불무덤 뒤에서 <끽>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다. 드디어 사람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감방 간부들은 내게 전부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내가 어떤 처분을 내릴 것인가. 즉 감방 간부를 누구로 임명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나는 그 감방에서 처음으로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최영호씨는 내게 감방장을 맡으라고 야단이었다. 나는 실소했다. 모두가 죄인인 주제에 누가 감방장이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감방장을 맡아줄 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다시는 지금의 자유를 뺏기지 않겠다는 심리가 바닥을 깔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감방자치회의를 결성했다. 그리고 <지금의 감방장은 그대로 인정한다. 대신 명예직이며 봉사직이며 특권은 없다. 모든 간부직은 지금부터 직위해제다. 조장제로 하여 10명당 한조가 되어 3개조로 결성하고 조장들이 감방 안 봉사직을 수행한다.
감방의 규율을 깨트리는 자는 화장실 청소로 벌을 대신한다. 야식은 함께 먹는다. 그것도 차별 없이 배분한다. 매일 밤 열리는 간부야식 파티는 폐지한다. 감방장은 입감순서대로 받는다. 그리고 감방장의 이불무덤 자리도 해체한다. 이불은 제자리에 보기 좋게 쟁여 놓는다. 입감신고식도 폐지한다. 입감신고식은 < 입감 위로 파티 >로 대체한다.
그날부터 우리 감방은 대한민국 감방 사상 최초의 자율주의 민주감방이 되었다. 두달 뒤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그 감방을 떠나올 때는 온 감방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작은 혁명이었지만 바른 혁명 정신을 심어 주려 노력했다. 또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면 얼마나 편한 것인가도 직접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이 비록 범죄인이었지만 그들에게 자율적인 자치적 요소를 부여 했을 때 그 자치는 결코 파괴되지 않았음도 나는 확인을 한 것이다.
작은 공동체든 큰 공동체든 민주주의는 절대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누군가가 자기희생의 거룩함이 담보되지 않을 때는 그 길은 멀고 요원함을 알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내가 떠나오던 감방은 감방이 아니었다. 이별을 아쉬워하던 야간 기차 정거장과도 같았다. 특히 소년수들이 많이 울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나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울었다. 나는 부산에 가서 항소를 했다. 항소심에서 얼마 전 대법관을 마지막 임기로 퇴직한 조무제판사로부터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의 3년에서 무려2년 2개월이 깎인 셈이었다. 조무제판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징역을 3년이나 살 뻔했다. 징역 10개월은 항소심까지 진행되는데 5개월이 걸리고 형이 확정되면 5개월 정도가 남았는데 5개월 쯤 되는 형기는 내겐 아무런 문제도 안 되었다. 계엄령위반으로 3년을 복역한 경험이 있는 내겐 징역 5개월은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출소 뒤 정확히 4개월 뒤 나는 또 한 번의 유적(流謫)을 체험해야 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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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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