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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의 보은기(報恩記) Ⅰ-9(상)<제2부. 당신들과 함께 하여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김경남 목사 | 승인 2015.05.06 12:49

<김경남의 보은기(報恩記) Ⅰ-9>는 분량상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다음 회 (하)편에서는 본문 중에 있던 첨부문서(자세한 내용)가 담긴 내용입니다. -편집부-

주께서는 또 다시 우리에게 보은(報恩)의 기회를 주셨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원장으로서의 일을 시작하여 1년여 쯤 지난 2006년 3월 어느 날, 필자는 <아시아기독교사회문제연구단체협의회>(<Association of Christian Institutes for Social Concern in Asia (ACISCA)> 총회 초청장을 받았다. 명칭 그대로 아시아 지역의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연구단체의 협의체로서 매년 총회를 개최하는데, 그 당시의 사무총장은 인도인, 펠릭스 목사(Rev. Dr. Felix N. Sugirtharaj)이었는데 회의 장소는 그의 나라인 인도 첸나이(구 마드라스) 비벌리 호텔이었다.

그해의 주제는 2004년 12월에 발생한 인도양 연안의 해일지진(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금 사용에 관한 비판적 검토였다. 우리나라를 위시한 세계 각국의 상당한 액수의 지원금이 정부와 교회 등 사회단체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분배 되었는데, 특히 인도에서는 교회 등 사회단체를 통한 분배는 30%에 미치지 못하고, 더욱이 정부는 총액의 10% 밖에 기층 민중에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그 어떤 곳에서도 문제를 삼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ACISCA>의 회원 단체를 통해 아시아 각 지원국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어 국제적인 압력을 통해 이 문제를 시정(是正)하게 하고자 한 것이 사무총장인 펠릭스 목사(Rev. Dr. Felix)의 의도였다.

한국의 <기사연>을 포함하여, 일본, 필리핀, 태국, 홍콩, 대만, 인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기독교 연구원 대표 30여명이 참가를 하였다.
1박2일의 연구회를 마치고, 인도 참가자를 제외하고, 필자를 포함하여 아시아 각국에서 참석한 10여명의 참가자들은 1박 2일의 뱅골만 연안의 츠나미 피해지역의 어촌(漁村)들을 순방(巡訪)하는 현장방문과 한 나절 정도 첸나이 시내의 <첸나이 박물관>과 <성 도마 기념교회>(St. Thomas Church) 등의 탐방도 있었다.

   
▲ 환영나온 달릿목회자들(암바캄센터에서)
   
▲ 펠릭스 목사, 김정명 목사, 김경남 목사, 알렉산더 목사.
   
▲ 자기 소개하는 달릿 목회자들
   
▲ 아동들의 환영 군무.

이 일정의 안내는 펠릭스 목사가 원장으로 있는 <첸나이 빈민센터>의 두 연구원이 수고해 주었다. 그중 통역을 맡은 알렉산더라고 하는 젊은이는 보통 인도사람들의 영어와는 다른 수려한 옥스퍼드 영어를 구사하는 스마트하고 친절한 영국신사와 같은 젊은이였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가 신학대학에서 달릿신학을 전공한 신학석사요, 정식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인도에서는 옛날과 달리 불가촉천민인 달릿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이 어느 정도 향상되어 법적으로는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교통비나 학용품, 교과서 구입 등에 소요(所要) 되는 경제적 문제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며 대학원을 마친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이 극히 드믄 경우란다.

현장방문 동안에 덤으로 참석한 첸나이 시내의 한 기독교(달릿) 가정의 결혼식에서 순서지를 보니 신랑 xx 대학 신학석사, 신부 oo 대학 문학사라는 소개의 문구가 있었다. 모든 인도인들의 관습인지 달릿사람들만의 특유한 관습인지는 몰라도, 학력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더 노골적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흥미롭게 느꼈는데, 그런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 오리엔테이션장에서~펠릭스 목사, 김정명 목사, 알렉산더 목사(왼쪽에서부터)
   
▲ 열공 중인 달릿농촌교회회원목사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현장 방문 시 내내, 펠릭스 목사는 물론, 알렉산더 목사와, 또 다른 연구원, 제임스 씨는 필자가 박사가 아니라고 해도 굳이 “김 박사, 김 박사” 하고 불렀다.
아무튼 알렉산더 목사는 마지막 날 나와의 대화 끝에,
“닥터 킴,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요?”
“무슨 일인데요?”
“김 박사님, 제가 민중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제가 유학 할 수 있게 한국에 초청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나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그의 친절 뒤에 그런 꿍꿍이 속이 있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뜨아해졌다.

미묘한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한국에 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는 장로인데 교회를 네 군데나 개척한 평신도 목회자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옆에서 목사도 아니고 학위도 없는 아버지의 한계를 보면서 아버지의 한계를 뛰어 넘어 펠릭스 목사처럼 보다 폭넓은 달릿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인도 사회뿐만 아니라 달릿 교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기왕이면 이미 공부한 달릿신학과 민중신학과의 비교연구로 박사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펠릭스 목사는 3대 목사로서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이지만 대학 교수는 물론 첸나이의 큰 교회나 교단의 고위직책을 마다하고 농어촌빈민 선교에 일생을 바쳐 수십 개의 미자립 인도 농촌 달릿교회와 농어촌 빈민들을 지원하는 일에 전력하여 오고 인도교회(달릿교회)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도의 박형규 목사와 같은 훌륭한 분이었다.
알렉산더 목사의 설명을 들은 후, 필자는 농촌 달릿교회를 위해 펠릭스 목사처럼 일 해보겠다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KNCC> 인권위원회 재직 시절, 소관부서(所管 部署)는 아니지만 ‘한·비 교회 협의회’(한국NCC와 필리핀 NCC 간에 상호협력을 위해 3년에 한 번 씩 개최된 정기협의회로 국제국이 담당했다)에 참관(參觀)한 적이 있었다.
양국 간의 선교사문제를 논의하자는 필리핀NCC 대표의 제안이 있을 때, 한국교회가 필리핀에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해달라는 요청을 하려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교회 대표들의 요청은 전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인구의 93%가 기독교인(신·구교 포함)인 필리핀에 너무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선교를 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해 <KNCC>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선교사 파송을 자제(自制)하도록 지도(指導)해달라는 것이었다. <KNCC> 뿐만 아니라, 소속 교단 본부도 지도할 수 없는 대형교회의 무분별한 자가 영역 넓히기 식 선교방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고백할 수 도 없이 우리 대표들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일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그 때에,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피선교국에 자기 교회의 지교회를 설립하여 자기 교회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물량공세(物量攻勢)를 통하여 기존의 신자들을 쟁탈(爭奪)함으로써 피선교국의 교회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선교방식은 지양(止揚)하고 피선교국 교회의 지도력의 양성과 피선교국 교회가 자국어로 자국민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지원하는 네비우스 선교방식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 공항까지 배웅 나온 그에게 나는
“미안합니다. 나는 알렉산더 목사를 초청할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목사님의 아버님이신 장로님이 개척한 교회들과 같은 미자립 달릿교회를 지원할 수 있는 교회들은 찾아보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다.
미자립 달릿교회의 목사 사례비를 포함한 운영비로 추정되는 월 10만 원 정도의 지원을 할 교회는 찾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귀국한 나는 이런 취지에 동의하는 몇 몇 목사들을 중심으로 달릿교회의 상황을 배우기 위한 ‘인도 달릿 농촌교회 방문단’을 조직하였다.

*‘제 1차 달릿 선교 방문’
그 결과 이명남 목사(예장, <당진교회>), 이석형 목사(예장, <구리교회>), 이상진 목사(예장, <황지중앙교회>), 최태순 목사(예장,<대천중앙교회>), 김지석 목사(기하성, <여수은혜교회>, 김정명 목사 대리) 등 <KNCC>인권위원회와 <한국교회재일동포인권선교협의회>에서 활동했던 목사들과 이영재 목사(기장, <전주화평교회>), 김경남 목사(기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등 7명이 2006년 11월에 10일간의 ‘제 1차 달릿 선교 방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 당진교회(예장 통합-이명남 목사)의 자매교회 Iyyapalayam 달릿교회(Ravi 전도사)
   
▲ 대천중앙교회(예장 통합-최태순 목사)의 자매교회Arani달릿교회(D. Selvam목사)

‘제 1차 달릿교회 선교방문’을 마치고 돌아 온 목회자들은 <한국·달릿동역선교회>(이하 <달릿선교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김정명 목사, 사무총장에 김경남 목사를 선임하고 우선,

“선교정책에 있어 직접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것에 의존해 왔던 기존의 선교 방법을 바꾸어 현지민과 지역에 맞는 선교전략들을 세워야 하는 필요성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선교방법론으로는, 1) “교인 만들기” 선교 방식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 선교방식(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만들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2) 무조건적인 선교사 파송의 방식에서 원주민 선교사역자 지원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라는 내용의 ‘새로운 아시아 선교 제안서’(하기 첨부 1을 참조)를 <기사연> 통신란에 올려 회원을 모집하여, 2007년 1월부터 농촌 달릿교회 지원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한국·달릿동역자 선교회>의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1.서울 동광교회(예장 합동:김희태 목사)~1)Enadimelpakkam달릿교회(Rev,M.P. Kumar) 2)Alagiripettai달릿교회 (Pastor Karunaikannan)
2.구리 밀알 교회(예장 통합: 이석형 목사)- Periyavedu 달릿교회(Rev. K. Muthuchristian)
3.여수 은현교회(기하성: 김정명 목사)~1) Eguvarpalayam달릿교회 (Rev. N.Mani) 2) Cherivi 달릿교회 (Rev. Rajaiah)
4.당진교회(예장 통합:이명남 목사)~ Iyyapalayam 달릿교회 (Pastor Ravi) 5.서울열림교회(기장: 나핵집 목사)~1)Mallavapalayam 달릿교회 (Rev. N. Yesuraj) 2) Anandheri 달릿교회 (Pastor S. Thomas)
6.대구평화교회(예장통합: 김락현 목사)~1)Palavakkam달릿교회 (Rev. Moorthi) 2) Sunnambukulom달릿교회 (Rev. M.C. Paul)
7. 조문희 집사(기장:미술학원 원장)~ Ambakkam 달릿교회 (Pastor Robert)
8.대천중앙교회(예장 통합: 최태순 목사)~Arani달릿교회(Pastor D. Selvam)
9.광주신흥교회(기장: 임명진목사)~Ramachandrapuram달릿교회(Pastor. Devanesan)
10.광주나눔과섬김교회(예장 통합: 조인선 목사)~1)Pudhupettai 달릿교회(Pastor Paul Daniel) 2)Agraharam달릿교회 (Rev. Devan)
11.황지 중앙교회(예장 통합: 이상진 목사) ~Edapalayam (Pastor A. Johnson Babu)

이상 11개 한국교회와 평신도 1인(조문희 미술학원장)이 16개의 달릿교회를 지원하였고, 서울 동광교회가 양측 사무국의 재정(달릿 측 대표와 간사의 사례비 포함)을 담당해 주었다.(총 18인의 달릿 목회자의 사례비와 16개 교회의 재정 후원)

   
▲ 대구평화교회(예장통합-김락현 목사)의 자매교회Palavakkam달릿교회(Moorthy목사)

달릿회원교회 목회자들은 매월 1회씩 목회서신(주일설교, 심방, 세례 등 한 달 동안의 목회 현황)을 타밀어로 작성하여, 알렉산더 목사가 영어로 번역하여 한국에 발송하면, 김경남 목사가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여 한국의 자매교회들에게 발송하였다.
그 후 한국 측은 두 차례의 달릿형제교회 선교 방문을 실시하였다.

* ‘제 2차 달릿교회 선교방문’
2007년 1월에 조인선 목사가 제 2차 달릿교회 선교방문을 실시하였다,

*‘제3차 달릿교회 방문’
2008년 2월에 <달릿선교회> 한국 대표 김정명 목사와 사무총장 김경남 목사에 의해 제3차 달릿교회 방문이 이루어졌다.

*<한국·달릿교회동역선교회> 제 1차 선교평가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첨부-3을 참조)
<한국·달릿교회동역선교회> 인도 측 대표 펠릭스 목사는, 본 선교회의 결성 후 3년 째 되는 해를 맞이하여, 동 선교회의 성과를 평가하였다. 그는 평가자로서는 남인도교회 마드라스(첸나이의 옛 이름) 교구 폴 윌리엄 목사와 사무엘 제이콥 목사를 선정하였다. 두 목사는 2달여에 걸쳐 평가를 실시하여 2010년 10월10일에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였다.

1) 매월 하루 종일의 적절한 신학교육과 사회분석 기회가 목회자들에게 부여 되었으면 한다.
2) 효과적인 목회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봉사를 위해 목회자들에게 약간의 사례비 인상이 있었으면 한다.
3) 목회자들의 자녀들과 신도들 가운데 가난한 아동들에 대한 교육비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4). KDSCF-K(한국측)가 건축한 세 교회를 제외하고, 다른 교회들은 낡거나 부서진 곳이 많아, 지원을 받아 신축을 하거나 수리를 하여야 한다. KDSCF-K 회원교회들이 교회들을 신축해 주시거나 수리해 주실 것이 간절히 요청된다.
5) 사례비를 제외하고, 앞의 두 가지 중요한 이유( 교육비와 주택비)에서 한국의 회원 교회들로부터 약간의 수당이 주어졌으면 한다.

*이와 같은 <한국·달릿교회동역선교회> 인도 측 회원교회 평가를 끝낸 후인 2010년 12월에, 인도 측 대표 펠릭스 목사는 정년퇴임을 하고 알렉산더 목사를 신임 대표로 천거하였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직을 그만두고 귀농(歸農)한 한국 측 사무총장인 필자도 사임(辭任)하였다.

우리는 <한국·달릿교회동역선교회>의 양측 회원교회들과 목회자들이 계셔서 행복했었다.
우리 주님도 이분들에게 잘했다 칭찬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상기의 평가에 따른 향후 <한국·달릿교회동역선교회> 한국 측 회원교회에게 남겨진 숙제를 포함하여 보다 발전된 달릿 선교활동은 신임 사무총장에 선임된 이영재 목사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후임 사무총장 이영재 목사를 포함하여 인도 등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새로운 선교를 시도해 보실 분들을 위해, ‘새로운 아시아 선교 제안서’(2006년 11월), ‘달릿교회와의 자매결연상황 (2009년 8월 10일 현재)’,‘<한국·달릿교회 동역선교회>(KDSCFI) 인도 측 회원교회 평가서’ 를 첨부한다. 혹시라도 이것들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조가 된다면 더욱 행복하겠다.

   
▲ 아동기숙학교(암바캄 자활센터 내)의 아동들
   
▲ 어린이에게 안수하는김정명 목사(Iyyapalayam 달릿교회)

<필자 소개>

   
 
김경남 목사

1949년 (66세) 전남 완도 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법대, 한국신학대학 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한국민주화기독교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무주<푸른꿈고등학교> 교장,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본부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경남 목사  gisoo9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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