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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뺨을 돌려대자<이수호 칼럼>
이수호 | 승인 2015.12.23 10:22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평화시장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사회의 불합리와 불평등, 비상식에 저항하며, 자기 몸을 스스로 불태운 지도 어언 45년이 되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묘역, 이제는 이소선 어머니 품에 안기듯 앉아 있는 전태일의 묘 앞에는, 처음 장례를 치르며 세웠던 ‘기독청년 전태일의 묘’라고 쓴 작은 비석이 있다. 뒷면에는 ‘300만 근로자 대표’라 새겨져 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대구에 있는 청옥 고등공민하교에 몇 개월 다니다가 서울에 올라와,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온갖 궂은일을 다하다가, 평화시장 봉제공장 삼일사의 시다로 들어간 때가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중간관리자인 재단사가 됐지만, 함께 일하는 주로 여성노동자인 미싱사나 시다들의 최악의 근로조건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아파하고 대신 싸우며 나선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것은 그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었기에, 결국은 전체 노동자를 위해 싸운 것이고, 전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기 몸을 태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300만 근로자의 대표’가 된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어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절규를 들어보자.

“저는 1955년 3월 생으로 올해 만 60입니다. 현재 00대학교에서 3년차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청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출근시간이 원래 6시인데 할당량이 너무 많아 30분 일찍 출근하고 있어요. 어떤 노동자는 남편까지 와서 일을 도와주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강의실을 시작으로 해서 교수실, 화장실, 복도, 계단, 난간, 창틀 등등, 오후 4시까지 치우고, 쓸고, 닦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가 시급 5,580원, 최저임금이에요. 한 달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116만 원입니다. 먹고 사는 게 죄라서 당장 벌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아픈 몸을 끌고 다닙니다.”

전태일이가 만났던, 병이 나도 병원도 못가고 햇볕도 제대로 안 드는 좁은 다락방에서 고픈 배를 움켜쥐던, 당시의 나이 어린 여공들과 다를 바 없다. 형태와 질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름 때문에 노동자의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저임금 속에서 온갖 차별과 착취와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전태일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당시의 봉제노동자의 근무실태 조사부터, 근로기준법 공부, 바보회 삼동회 결성, 공장주에 대한 호소, 모범업체 설립 준비, 노동청과 시청 방문, 대통령에 편지쓰기, 언론보도 및 사회적 호소, 국정감사 요구 등등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법에 위배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전태일은 해고되었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전태일은 삼각산기도원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높은 차원의 새로운 저항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2000년도 더 전 유대 땅 갈릴리 지방의 예수라는 지도자는 이렇게 가르쳤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까지 돌려대라’ 이 말에 대해 그 동안 우리 제도교회는, 폭력의 피해자로 하여금 더 큰 폭력에 순응하도록 가르쳐왔다.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무저항주의를 옹호함으로, 비굴하더라도 폭력 앞에 순응하는 것이 교인다운 선택이라 하며,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인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한완상 씨는 다르게 이해한다. 그는 ‘해학과 저항의 예수’라는 글에서, 이 가르침이야말로 예수의 제대로 된 저항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당시 ‘뺨치기’에 대한 유대의 관행적 인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오른 손으로 사람을 때릴 때 손등으로 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일정한 정치 사회적 의미를 가졌다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낮은 자의 분수를 깨달아 예절 바르게 행동하도록 깨우치려 할 때, 오른손 등으로 낮은 자의 오른뺨을 경멸하듯 때렸다. 이를테면 로마인이 유태인에게, 주인이 종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까불지 말고 절도 있게 행동하면서 분수에 맞게 자기 자리를 지키도록 권면할 때, 오른 손으로 가볍게 때렸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모멸감을 주기 위한 행위로, 약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비굴하게 처신하게 하려는 강자의 건방진 몸짓이기도 했다.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가르침이 갖는 의미는 뚜렷하다. 강자가 오른손 등으로 경멸하듯 약자의 오른 뺨을 칠 때, 약자가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비굴한 순종이다. 그때 약자가 자기의 왼뺨을 돌려대며 강자에게 당당히 맞서는 것은, “나는 당신의 부하나 똘마니가 아니오.”라고 외치는, 당당한 주인 선언이다. 이것은 비폭력적이지만 적극적인 저항이다.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는 인간선언이요, 참으로 용기 있는 자세이다. 약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강자가 쥐고 있었던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이러한 저항은 죽음을 각오한 강도 높은 저항이기도 했다. 예수 자신도 로마 지배세력이나 당시의 종교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결국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던지는 저항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가르침의 실천이라 하겠다.

억울하게 직장에서 쫓겨나 삼각산기도원에서 막노동을 하던 전태일은, 깊은 명상수련을 통해 예수의 이러한 저항정신을 배웠던 것 같다. 그는 다시 고통당하고 있는 어린 여공들에게로 반드시 돌아가리라는 다짐을 하며, 그들과 운명을 함께할 것을 맹세한다.

요즘 정세가 이와 유사하다. 박근혜 정권은 경제침체와 사회혼란의 책임을 약한 노동자들에게 뒤집어씌우며,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를 탄압함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그 동안 분단이데올로기의 냉전논리로, 전교조나 민주노총을 빨갱이 종북 세력으로 몰아 보수진영과 편을 가름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보아왔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밀어붙이는 노동개혁의 내용은 정도가 지나쳐, 그대로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노동자와 노동의 재앙을 넘어 경제 전반과 나라 전체의 재앙으로 이어져, 말이 아닌 실제로 헬조선이 될 것 같아 앞이 캄캄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정권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해결할까로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오히려 엉뚱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또 들고 나와, 온 국민을 혼란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는, 이제 민주주의를 체득해가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정서나 상식 수준에 너무 못 미쳐서, 마치 멀쩡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뺨을 얻어맞는 기분으로, 많은 국민이 너무 크게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결국 국민은 온갖 방법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도한 막무가내 박근혜 정권은 너무도 무지막지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절망감에 빠져있다.

결국 전태일은, 아무 쓸데가 없는 근로기준법을 태워버리기로 하고, 화형식 집회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 집회마저 원천봉쇄 되고, 동지들마저 잡혀가자 결심을 굳히게 된다.

‘왼뺨을 돌려대자’

그렇게 전태일이 간 지 45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괄목할만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전태일을 따라 살려는 많은 노동자, 청년, 시민들이 스스로 전태일이라 나서고 있다. 스스로 불씨가 되자고 소리치고 있다.

“우리 모두 왼뺨을 돌려대자!“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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