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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정치인에게 굽신대다니<이병두 칼럼>
이병두 | 승인 2016.01.22 16:05

   
 
불교 집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끽다거(喫茶去)’라는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이 중국 당(唐)나라 시대의 선승 조주 종심(趙州 從諗)이 남긴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유래한 것임을 아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주스님이 말년에 머물렀던 관음원(觀音院)에 어느 날 젊은 수행자 둘이 찾아와 물었다. “불법(佛法)의 큰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가 되물었다.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으신가?”
수행자가 대답했다.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자 조주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
곁에 있던 다른 수행자가 다시 물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큰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는 그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으신가?”
그 수행자가 대답했다. “예, 한 번 와보았습니다.”
그러자 조주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
이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원주(院主: 절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소임자)가 조주에게 물었다. “스님, 어째서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사람이나 한 번은 와 본 사람에게나 똑 같이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라고 말씀하십니까?”
조주선사가 원주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원주스님도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

이 일이 있은 뒤로 조주선사의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는 선가(禪家)의 화두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심지어 찻집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가톨릭프레스의 독자 투고 <묵주기도 중단시킨 유정복 인천시장: “신자들은 바보가 아니다...”>(2016. 1. 12.)(기사보기)라는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5일 오후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가톨릭 인천교구 사제 ‧ 부사제 서품식에서 매우 희유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서품 의식에 앞서 5,0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묵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유정복 인천시장님께서 오셨습니다”라며 갑자기 기도를 중단시키고 마이크를 시장에게 넘겨 그의 “저도 세례명 바오로인 천주교인입니다. ⋯⋯” 로 시작되는 ‘입에 발린 인사말’을 듣게 하였다. 묵주 기도 뒤에는 서품식에 얼굴 비추러 찾아온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 이름을 거명하며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일이 가톨릭 인천교구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비롯하여 불교계의 크고 작은 행사장에는 가장 중요한 순서가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 축사를 하고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사제 서품식이라고 하면, 불가에서는 새로 온전한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비구 ‧ 비구니 스님들이 구족계(具足戒)를 받는 수계식과 같은 위상일 터인데(부사제 서품은 불가의 사미 ‧ 사미니계 수계와 비슷한 위상일 것), 이처럼 거룩한 의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혹시라도 인천교구에서 운영하는 성모병원 노동쟁의와 노동자들의 애타는 사연을 함께 모른 체 해주는 동지의식에서 유 시장에게 이런 특별한 대우를 한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정 종교와 교파를 가릴 것 없이 보통사람들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숱하게 일어나는 곳이 한국의 종교계이니, “이 정도 일을 갖고 흥분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 종교계가 놓여 있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고, 한국 종교계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헌법에까지 담고 있는 나라에서 종교인들 스스로 그 원칙을 깨는 데에 앞장서는 것이다. 시장과 국회의원을 잘 대접해서 그들에게서 예산 지원 등 혜택을 기대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극진한 예우를 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면 찾아오는 손님을 푸대접하라는 말이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먹을 것을 구하러 찾아오는 이들,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지관과 병원의 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은 마음으로 대했는가?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병원 노동자들의 절규를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지난 2010년 12월 정부 ‧ 집권 여당과 불편해진 대한불교조계종이 몇 달 동안 ‘정치인 출입 금지’를 내걸었을 때 한편으로 기대를 하면서도 “출입금지까지 시켜야 할까? 찾아오는 정치인이 있으면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하면 될 것을. …” 하는 생각을 하고 주변의 길벗[道伴]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절에 찾아왔을 때 아무런 예산 지원 등 부탁은 하지 않고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수뇌부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만남 자체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몇 달 동안은 ‘불교계와 정치권 사이의 관계’가 그런대로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던 기간이었다. 2011년 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장에서도 정치권 인사들을 따로 소개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적절한 거리 유지’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난 뒤부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전국 사찰에 이어졌고, 새해 예산을 확보하려는 사판승들의 발걸음이 정부 각 부처 ‧ 지방자치단체와 국회에 끊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면서 예전보다 더 끈끈한 정을 과시하는 일도 잦아졌으니, ‘정치인 출입 금지’ 사태는 아예 없었던 일보다도 못하게 되었다.

불교 경전과 율장에 전하는 붓다의 일생을 보면, 꼬살라와 마가다 왕국의 빠세나디 ‧ 빔비사라 왕도 붓다가 설법하던 곳에 올 때에는 멀리서 말에서 내려 주변의 경호원들을 물리친 채 걸어왔으며, 대중의 뒤에 조용히 앉아서 법문을 듣곤 하였다. (붓다가 자주 설법을 했던 인도의 영축산(靈鷲山)에 오르는 길에는 지금도 빠세나디 왕이 말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던 시점을 표시하고 있다.)

정치인들이란 존재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찾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특정 종교를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종교계가 행사를 열면서 그들을 불러 축사를 해달라고 안달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종교계가 앞으로 정치인들을 초청하는 일 자체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인데, 성스러운 의식을 중단시키면서까지 그들의 인사말을 들어주는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닌가.

고위 관료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찾아오면, 이 덕담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차(커피) 한 잔 하고 가시죠!”

출처 : 가톨릭프레스 (http://www.catholicpress.kr/)

   
▲ 필자 이병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불교계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최근 경력은 문화체육관광부 불교 담당 종무관으로 5년 근무하고 2015년 5월 말 퇴직한 뒤 현재는 자유롭게 글 쓰기와 번역으로 소일하고 있다.

역저서에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영어로 읽는 법구경』,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및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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