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아시아 공동체론 두번 째 강의는 사나다 요시아키(真田芳憲)선생(일본, 주오대학 명예교수, 법학)이 강사로 참여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구축에 관해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 모색했다. 다음은 사나다 선생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이다.

역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 - 불교의 연기관을 빌어

나는 1937년 일본에 태어났다. 청일전쟁도, 러일전쟁은 중요한 역사지만, 내가 체험한 역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체험을 공유하지 않는 역사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나는 불교인으로서 불교의 가르침을 따른다. 불교적 세계관은 연기관에 기반해 있다. 연기관에 따르면, 각각의 존재는 다른 것에 의존하면서 저마다 비범한 절대적 존재이다. 모든 것은 보편적인 시간적 공간적 관계성의 장 안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고, 서로를 살리고 서로 살려지면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연기관에 의하면 전 인류는 나 하나 속에 존재하고 전 인류의 역사는 나 안에 응집되어 있다. 전쟁 전 77년의 군국주의, 패권주의적 일본의 침략의 역사도 당연히 나 안에 응집되어 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열린 하나’의 고난과 좌절의 길 - 전쟁을 반대했던 코우토쿠 슈우스이

소위 ‘코우토쿠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의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10년 12월 코우토쿠 슈우스이 등 24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천황 암살을 위한 준비 또는 공동 모의를 하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판결 후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12명의 피고인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로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메이지 정부가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위해 꾸며낸 사건으로서, 근대 일본 재판 역사상 최대의 ‘암흑재판’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나다 요시아키 교수(왼쪽), 통역자 이사호 씨(오른 쪽) ⓒ이찬수

이 코우토쿠 슈우스이가 체포될 때 소지하고 있던 가방 속에 한 장의 엽서가 있었다. 이 엽서에는 안중근의 얼굴 사진과 안중근을 찬양하는 한시가 적혀 있었다. ‘열린 하나’, ‘원아시아’의 길을 향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이들의 아픈 역사다.
 
舎生取義（생을 버려 의를 잡으며）
殺身成仁（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安君一擧（안군의 일거）
天地皆振（천지 모두가 진동 한다）

평화로운 ‘원아시아‘의 길을 위한 종교 간의 대화

‘다양성 안의 일체성’이라는 통일된 정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상면의 차이만을 가지고 이질적인 신앙으로 단정하는 것, 감정적으로 그것을 경시하고 배척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신앙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정하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독선적 주장은 용서받기 힘들다. 종교인도 서로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지적 정신적 연대를 강고하게 하여 종교간 대화와 종교협력의 길을 매진해야 한다. 

벽을 넘어 평화공동체로

우리들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민족의 벽, 국경의 벽, 언어의 벽, 역사와 생활의 벽, 종교와 문화의 벽,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벽이 있다. 이 벽은 결코 미움이나 폭력에 의해 부술 수는 없다. 만약 미움이나 폭력으로 부수게 되면, 그 벽은 적의라는 또 다른 벽으로 변모해 벽의 격차는 더 두터워질 것이다. 기독교인의 말을 인용하면 서로 소중한 형제자매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화해를 위한 노력을 거듭할 때 조금씩 이 벽을 넘어 ‘열린 하나’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원아시아’라는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수강생들과의 대화 몇 가지

* 사나다 교수의 강의에 대해 수강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다음 두 가지 질의응답만 소개한다.

사회복지학과 김윤섭 :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아시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용성 선생님과 같은 종교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일관계가 나쁜 것은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를 봐오신 교수님의 경험을 토대로, 한일 관계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소견을 묻고 싶습니다. 

사나다 교수 : 역사적 인식의 차이는 한일 관계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다. 역사문제에 대한 인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9.11사태를 보자. 미국에서는 이슬람의 테러집단이 미국을 공격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고 텔레비전 연설에서 했다. 부시는 이것을 문명의 전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문명이라는 말은 사실상 국제 조약, 국제 헌장에서는 쓰면 안 되는 용어다. 

19세기 말 유럽의 국제법에서는 문명국과 야만국을 나누는 이원적인 생각이 투영되었다. 자신들은 문명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야만인이라고 보았다. 제국주의적 정복도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생각이 부시의 발언 속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무슬림 대표자 연맹에서는 부시의 발언에 대해서 테러는 무슬림의 행위가 아니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무슬림의 가장 중요한 성서인 코란엔 이렇게 써있다.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건 전 인류를 죽이는 것과 동일하다.’ 코란의 이런 구절을 근거로 부시 대통령에게 무슬림과 테러를 간단히 연결시키지 말라고 얘기했던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9.11테러를 문명 간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실제로 중동지역에 대한 전쟁으로 이어갔다. 이런 전쟁은 문명을 자기중심적으로 규정한 데서 벌어진 일들이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평화롭게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적이고 정신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마음의 불일치가 지속되고 있는 것도 양국 국민간의 지적, 정신적 연결점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계신 이찬수 교수를 친구로 생각한다. 같은 교수로서 학문적인 연대가 가능하다. 또한 나는 불자이고 이찬수 교수는 기독교인으로서, 종교는 다르더라도 신앙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연대를 할 수 있다. 이것도 정신적인 연대로 볼 수 있다. 개방적인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타인과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해한다(understand)는 타인 밑에(under) 선다(stand)는 뜻이다. 타인을 위에서 보거나 옆에서 보는 게 아니라 밑에서 봐야 이해가 된다. 역사인식의 차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회과학부 백소민 : 아시아공동체라는 것이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포용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정치와 경제가 저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연대를 한다고 해도 얼마나 크게 아시아 공동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나다 교수 : 공동체의 모범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유럽의 EU이다. EU가 가능했던 것은 기독교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하나의 문명이나 종교가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나가야 한다. 공동체란 말을 먼저 하게 되었지만, 일본은 공동체를 만들어 전쟁을 했던 나라다. 공동체를 만들어 실패한 나라다. 일본이 전쟁으로 하나를 만들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지금 당장 아시아 공동체가 어떤 가시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아시아에 하나의 단일 조직을 만들자는 뜻도 아닐 것이다. 다만 경제적인 교류, 학문적인 교류, 종교적인 교류 등을 깊고 넓게 하다보면 무언가 하나의 큰 모습이 점차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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