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 노동’이란 제목은 불경스럽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교회는, 특별히 한국교회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전혀 노동이 아니라고 힘주어 역설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은 ‘성스런 사역’ 혹은 ‘성무’이지 결코 ‘노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주장이 무조건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성직자들이 하는 일이 노동이었다면, 우리들은 결코 업무들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은 성스러운 일이 아니라, 속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성/속의 이원론은 중세로부터 근대까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성직자들의 영혼 속에 아로 새겨져 있는 사유의 도식이다. 이를 뒤집어서 표현하면, 노동은 전혀 성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 현대로 진입하기 이전의 모든 사회는 ‘노동’을 성스러운 일‘로 간주하지 않았다.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긴 하지만 성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성스러움은 바로 신분의 귀함과 맞물려 있는 개념이었다. 근대 산업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귀족/평민/노비의 신분제는 타파되었지만, 여전히 성스러움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은 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성/속의 이분법을 깨부수고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이었고, 그래서 종교개혁은 유럽문명의 기초를 다시 놓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 종교개혁의 후계들 그러니까 개신교 성직자들에게 바로 이 성/속의 이분법이 더욱 더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들이 하는 일을 무조건 ‘성스런 사역’으로만 간주하기 어려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 동등하다면,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건, 그것이 다른 일과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다. 종교개혁가들의 ‘직업 소명설’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직업은 그냥 밥벌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직업은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성스러운 ‘일’ 즉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 내에서 성직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다. ‘성스러운 사명’으로 감당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한 세속적인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교회 내에서 성직의 일부를 감당하고 있는 소위 부사역자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종교개혁 이전의 성직 개념이 도리어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성직이라는 미명 하에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그들은 ‘일’을 한다. 원래의 개념대로라면, 그들은 ‘사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장학금’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수’를 받는다. 성직을 가도록 격려하기 위한 장학금의 명목으로 주어지지만, 그들은 월급을 받는 파트타임 노동자인 것이다. 이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요즘 일반 종합대 안에 신학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학교들은 어마어마한 위기를 겪고 있다.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라는 추세를 반영하여, 대학들의 구조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취업률이 낮고 교육효과가 없는 대학들을 강제 퇴출시켜서라도,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육효과가 낮은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문제다.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교육부는 아주 훌륭한 대책이 있다. 바로 ‘취업율’이다. 대학을 졸업한 성인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최소한 경제적으로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런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선뜻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취업 안되는 학과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여전히 부모나 형제에게 의존한 채로 살아가는 삶을 현대 사회는 용납하지 않는다. 더욱이 세계적인 경제불황의 여파가 닥치면서, 청년층의 실업율은 사상 최대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수년 전만 해도 종합대학 내 신학과는 효자였다. 왜냐하면 취업률이 거의 100%에 가까운 유일한 학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취업률을 산정하는 기준이 획기적으로 바뀌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로 4대보험 가입여부이다. 취업을 했다는 것은 4대보험을 가입하는 직장에 자리를 얻었다는 것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때부터 신학대학은 천덕꾸러기가 된다. 한때 취업률 100%에서 취업률 0%로 곤두박질 친다. 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들 중 4대 보험 가입율은 거의 0%에 가깝다. 교회 사무원을 고용할 때는 4대보험을 가입해 주는 교회도, 정작 교역자를 특별히 전도사나 인턴을 고용하는 교회들은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성직자의 일은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이런 관행들이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 자체를 유보하고자 한다. 본 연재의 논지를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사회는 ‘직업을 가진 성인’의 최소한의 기준으로 4대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왜 청년 전도사와 인턴들은 4대 보험에서 빠져도 윤리적 도덕적 가책이나 비판을 면제받고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사회에서 제시하는 최소한의 인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해놓고, 그건 성직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21세기 기준에 맞지 않다. 교회는 이런 자신들의 관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성/속의 이분법을 유지할 것, 아니 더 나아가 강화할 것이다. 본 연재는 묻고자 한다. 그게 교회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온당한 혹은 바람직한 방법일까? 미래를 위한 비전을 품을 수 있는 길인가? 

사태를 보다 복잡하게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노동’ 개념이 근대의 노동 개념과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노동’은 인간의 기본 조건이면서 동시에 권리로 인식되는 근대가 지나 이제 ‘무엇이 노동인지’를 성찰해야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제국』(2001)과 『다중』(2008)은 바로 이 지구촌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분화되어 가는가를 그리고 고전적인 노동자 개념으로는 이 다양성을 포괄할 수 없는 불가능성을 지적한다.

노동의 권리와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권리는 다소의 구별을 요하지만, 근대는 이 양자를 등가시한 시대였다. 사실 근대 이전 ‘노동’이란 귀족으로 태어난 이들이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귀족/평민/노비 간의 신분제가 무너지고, 모든 사람은 각각 동등한 존재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의식이 종교개혁을 계기로 확산되면서, 노동은 권리가 되었다. 사람으로 대접받을 권리. 그런데 본래 노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노동자 개념은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서 지구촌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다국적 자본의 시대가 되면서 적실성을 상실한다. 사무직 노동자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이들은 본래 칼 마르크스 시대의 혁명의 주체에 포함되지 못한다. 여러 다양한 노동의 현장들이 근대의 산업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이라는 이분법의 틀 속에 담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세기 포스트-휴먼의 시대, 혹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시대에는 근대적 노동 개념으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표현하기가 점점 더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 도래하였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가지 못한다. 제2의 경력을 준비해야 하거나, 혹은 현재 이중, 삼중 혹은 사중의 파트타임 잡을 통해 수입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평생고용이 보장되던 시절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노동자의 권리를 다시금 주창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이런 틈을 타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해야 일 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둘 다 틀렸다. 이미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드러나듯, 인공생명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어렵고 힘들다는 일 즉 고소득 전문직의 일을 훨씬 더 잘 감당한다. 앞으로 실직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은 일용직, 청소직과 같은 소위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종이 아니라, 우리들의 선망이 되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의 직종들이 사라질 위험이 더 높다. 이는 곧 우리가 ‘노동을 통해 인간됨을 확인받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교회 내 노동’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필자는 우리 교회의 관행이 우리 사회의 직업 개념과 심각한 이격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 필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직업 개념이 상당히 오래된 개념 즉 근대적 개념의 노동에 의존하여 구성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21세기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이런 개념에 근거하여 인간의 인간됨 혹은 존엄성을 확보할 수 없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이 두 문제 제기는 서로 잘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게 이 연재에서 주목하고 싶은 근원적 현상들 중 하나이다. 이 불일치는 이제 우리가 근원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미래 사회를 그리고 미래 사회의 교회를 접근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21세기 우리는 이 두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발적으로 ‘교회 내 노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이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어떤 이에게 판단과 정죄를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가오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생각과 패러다임의 ‘성스런 사역’ 개념을 모색해 보고자 함이다. 우리들의 일천한 지식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해답보다 문제가 더 중요하다. 어떤 물음을 던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해답과 오답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안들을 모색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묻자! ‘교회 내 노동,’ 이게 뭐가 문제였고, 앞으로 어떤 대안들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지. 성직의 이름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혜택도 부정당하는 이들은 ‘노동자’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구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들이 선망하는 직업군들을 대체해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사회를 앞두고 그들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 만일 둘 다 아니라면, 앞으로는 어떤 대안이 가능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할 때이다. 성직의 이름으로 인권이 유린당해서도 안 되지만, 이제 급격한 개념적 전환을 요구하는 근대의 낡은 개념에 의존하여 교회 개혁의 토대를 마련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가 소명으로 받은 이 일을 어떻게 개념적으로 재/해석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필자 소개>   박일준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보스턴대학 신학석사, 드류 대학 철학박사. 종교학과 철학과 신학의 접경 지역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며, 특별히 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들을 종교철학적으로 성찰해 나아가면서 ‘인-간’ 즉 ‘삶-사이’를 ‘인간-이후’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속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혼종적 인간론 연구: 화이트헤드의 사건적 존재론과 진화론과 인지과학을 통한 사이-존재로서 인간론 구성’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박일준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