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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와 기독교복제기술, 사랑의 법에 관련된다면 허용하되 악한 목적이라면 절대 막아야
오마이갓 | 승인 2005.07.05 00:00

 

장창수(rassvet) lyuboph@hotmail.com

 

 지난 5월 19일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영국의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서 발표한 배아줄기세포 연구 업적은 난치병 치료를 위한 복제 기술의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에 세계를 놀라게 했다. 혹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이로 인해 황 교수는 하루 아침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고, 한국의 국보급 인물이 되었다. 기독교 문화권의 서구 유럽과 미국이 법으로 복제 금지를 하여 연구가 부진할 때 인간과 짐승 사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 불교 신자이기도 한 황 교수는 복제 기술을 법으로 금하지 않는 조국의 상황을 잘 이용하여 거칠 것 없이 연구를 계속한 결과 찬란한 업적을 마련했다.

그의 놀라운 업적에 놀란 세계를 보면서 모처럼 한국인들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한국 기독교계에 문제를 제기시켰다. 한국 교회와 신자들은 애국적인 차원에서 황 교수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 복제를 허용하지 않는 기독교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황 교수를 마냥 지지할 수만 없다.

이렇게 그의 획기적인 성공이 한국 기독교계나 세계 기독교계를 참으로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기독교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자체 내에 큰 혼란과 분열이 생길 것이다. 기독교계가 마냥 침묵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낙태를 반대한다. 카톨릭의 경우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전 세계에 보내는 회칙(回勅)에서 이혼이나 낙태, 피임 기구의 사용, 동성애 결혼을 모두 부정했다. 그 결과 부부애가 없이 형식적으로 사는 카톨릭 신자들이 늘어났고, 그리고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출산하고 자랐으며, 이에 따라 미혼모들도 증가했다. 유교 문화권에선 미혼모를 곱게 보지 않기 때문에 낙태가 공공연히 불법적으로 행해진다.

아프리카의 경우 흑인 남성들이 카톨릭의 회칙을 이용하여 콘돔을 고의로 사용하지 않음으로 에이즈를 더욱 확산시켰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카톨릭 교회의 원론적인 금지가 사회적인 문제를 더욱 많이 일으켰다. 법으로 강압하여 막는다고 모든 문제들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이 세상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며 그리고 인간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위에서 언급된 낙태나 콘돔 사용 문제처럼 인간의 모든 일들은 인간 사회를 위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동시에 갖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원론적인 차원에서, 즉 종교와 윤리 차원에서 인간 복제 기술은 금지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 복제 기술이 금지되면 안 된다. 여기 원론적인 문제와 실용적인 문제 사이 충돌과 갈등이 생겼다.

다른 한편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 복제 기술은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인간이 이미 이 영역을 침범했고 그리고 인간 복제 기술은 계속 발전하여 곧 실용화될 것이다. 이것은 언젠가 악인에 의해 얼마든지 인간 복제 기술이 악용되어 인류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강제로 인간 복제 기술을 법으로 막는다고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원론적인 면 때문에 복제 기술을 법으로 금지시킨다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인권 문제가 첨예화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성경이 금하는 동성애자들의 인권 문제가 법으로 반영되어 이들 사이 결혼이 허용하는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여기 인류 사회의 고민이 있고 해결을 위한 지혜를 요한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이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문화 사명(창1:28)은 내용상 하나는 인간의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한 것과 관련되며 다른 하나는 인간이 자연을 비롯한 피조 세계를 통치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럼 하나님이 명하신 인간의 생육과 번성 그리고 충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명령은 인류의 복지 혜택의 증진과 향상을 위해 인문 사회 과학의 발전은 물론 의학의 발전이 필수적임을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문화 명령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인 일반 은총을 주셨다. 인류 사회는 이 일반 은총을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인간을 인류 사회가 치료해 주도록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기독교 성경은 인간 자체를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의학 발전을 금하진 않는다.

인간 창조론에서 이에 대해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 이 사실은 인간이 신에 버금가는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뜻하며 이것은 곧 인간이 언젠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고 암시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이런 가능성은 더 커졌다. 신적 지혜와 능력을 소유한 채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을 더욱 반역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이를 억제시킬 목적으로 하나님은 일반 은총 차원에서 인류에게 양심을 주었고 그리고 특별 은총 차원에서 율법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인류 사회는 계속 존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악과 규례 차원에서도 이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선악과 규례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처럼 선과 악의 지식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선악과 규례는 인류가 에덴동산 중앙에 늘 있는 선악과를 언젠가 따먹고 선악을 알려고 할 것이란 암시를 준다. 즉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인 선과 악의 지식을 언제가 소유하게 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다.

그러나 그 결과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고통을 당할 것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류는 하나님을 떠났다. 인류는 좀 더 마음 놓고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이방인에게 양심이란 법을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시내산 율법을 주셨다.

우리가 잘 알듯이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결국 율법은 인류가 진정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가 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할 리 없다. 그러므로 인류는 항상 하나님의 주권 영역인 선과 악에 대한 판단에서 잘못을 범해 심판을 받는다.

위의 이런 사실들에 근거하여 율법의 적용 문제를 계속 생각할 것이다. 기독교 성경은 사람 생명과 관련하여 아주 큰 관대함을 보인다. 제사장들만 먹게 되어 있는 진설병(레24:9)을 굶주린 다윗과 그를 쫓는 무리에게 대제사장은 거침없이 나누어 주었다(삼상21:4-6). 금지 규례보다 굶주린 사람을 먼저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식일이지만 배가 고파 길가의 이삭을 비벼 먹는 제자들의 행위를 예수님은 용납하셨다(마12:1-4).

또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마12:9-13).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12:11-12)

예수님은 진설병에 관한 규례와 안식일 규례도 잘 아셨지만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다면 예수님은 금지 조항을 주저없이 깨뜨렸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였기 때문이다. 나중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12:7)

그리고 예수님은 시대가 달라지자 율법을 달리 해석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이 허락하는 일을 금하고 여인을 살렸다(요8장). 생명을 구하려고 오신 세상의 구원자 예수님 앞에서 죄인 여인이라도 죽도록 허락할 수 없었다. 새 포도주는 새 푸대에 담아야 함을 예수님은 보였다(마9:17).

지금까지 살핀 성경의 가르침들은 인간 복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 자체 복제는 절대로 금지해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난치병 치료를 위한 특정 신체 부분의 복제도 금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원리보다 사랑의 법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무자비한 율법주의자나 사랑이 없는 원칙주의자로 나타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규범도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해도 안 된다. 그러므로 복제 기술이 사랑의 법에 관련된다면 허용되어야 하지만 악한 목적을 위해 인간 자체를 복제하는 것이라면 절대로 금지해야 한다.

소명자는 원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그 동기에서 잘 살필 줄 안다. 그렇게 그는 무자비한 율법주의자나 잔인한 원칙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 선하다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기 사항을 깨 사랑을 실천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를 부정할 줄 안다. 여기 자기부정이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에 이르는 길임을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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