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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는 언제 오는가<교회개혁 담론투쟁 : 한국교회와 메시아니즘>
김효진 박사(중앙일보) | 승인 2016.07.28 11:29

국제정치사에서 1948년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AD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한 정치공동체가 근 2000년이 흘러 근대 국가의 형태로 독립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유대국가의 탄생을 예언하고 사상적 기초가 된 것은 바로 ‘시오니즘(Zionism)’.

‘시온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르츨의 저작(유대국가, 1896)이 발간된 후 꼭 50년 만에 꿈은 현실이 됐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서구 지식사회의 오랜 연구주제였다. 사실의 시간적 집합이 곧 역사라는 좁은 인식을 뛰어넘으려는 비평적인 시각이 담긴 문제의식이었다. 

역사란 시대의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 등장했던 사상과 사회 운동의 접점을 설명해 내려는 실증적 고민의 총합이라는 자기인식의 결과다. ‘시오니즘’이란 유대민족이라는 혈연 공동체가 시간적으로나 지역적으로 파편화된 현실을 극복해 어떻게 ‘국가’로 형상화됐는지 설명해 주는 키워드다. 

19세기를 관통하는 서구 역사는 제국의 시대였다. 절대적 힘을 가진 국가가 그 시대의 지배적 주류질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상징됐던 고대제국의 위계적 질서가 유럽에서는 근대국가 간 제국의 질서로 재편되는 중이었다. 

‘시대정신’이란 시대 상황과 떨어져 독립적일 수 없다. 상황과 무관한 독립변수로 작동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시오니즘’이 이스라엘 독립국가로 현시된 것 또한 역사를 통해 흘러왔던 유대주의 내부의 이념적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다. 유대적 사상투쟁이랄까? 그 끝에 ‘시오니즘’이 자리잡았다. 

근대의 출발로 개인과 국가의 관계정립에 관한 성찰적 논의가 유럽 철학계의 주요 담론이 됐다.개인은 국민이 됨으로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것이 루소의 성찰이다(사회계약론, 1762).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war of everyone against everyone)’를 벗어나는 구원의 길이 ‘국가의 생성’이었다(홉스, 리바이어던, 1651). 

이런 유럽적 국가의 형성과 질서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돌출된 이스라엘 건국사의 뿌리는 ‘시오니즘’이란 토양 속에서 싹을 틔웠다. 물리적인 유대국가의 탄생을 가능케 한 ‘시오니즘’의 핵심요소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그토록 아주 오래 전 ‘고토(故土)’에 집착하였을까?

1900년대 초반 대영제국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배려하여 우간다와 이집트를 제3의 중간 정착지로 제시했었으나 그들은 거절했다. 왜 ‘이방인’이 주인인 땅 팔레스타인 지역을 고집했을까? 그곳이 ‘시온’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이런 의문은 유대주의(Judaism)가 갖고 있는 독특한 메시아주의 현상을 가리킨다. ‘시오니즘’은 유대 메시아사상의 ‘환유’와도 같다. 시오니즘과 유대 메시아 사상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것이야말로 ‘시오니즘’의 핵심변수이자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고집했던 명분이 된다. 

그 고리가 유대민족의 자기정체성이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획일적 설명은 민족주의(nationalism)로 동일시되기 십상이다. ‘시오니즘’ 또한 유대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되던 경향성이 있었다. 그러나 ‘시오니즘’에만 발견되는 독특한 메시아 사상이 여타 민족주의와 구분되는 차별점이다. 

민족주의는 맑시스트와 계몽주의적 자유주의자들에겐 거부됐다. 제3세계의 근대화와 연관돼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Gellner, Thought and Change, 1964). ‘시오니즘’이 이런 류의 민족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것은 유대민족 고유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그들의 ‘믿음’(Faith)이야말로 메시아 사상을 지탱하고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꿰어 ‘시오니즘’을 매듭짓는 이스라엘 민족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된다(Bright, A History of Israel 4th, 2000). 이스라엘을 타민족과 구별 짓는 요소는 언어도, 습관도, 역사적 경험도, 물질적 문화도 아닌 오직 믿음이다.

유대민족의 믿음은 두 가지 요소로 채워진다. 신으로부터 택함 받은 백성이란 선민(選民)의식과 메시아가 자신들의 지도자(메시아)가 돼야 한다는 성서적 신념이 유대인의 ‘믿음’을 구성하는 알파와 오메가다. 그들은 ‘오실(to come)’ 메시아를 약속된 땅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모세 5경의 시절부터 예루살렘 멸망까지 자신들의 삶을 규범 지은 신명기적 가치관이 메시아사상의 토대를 이룬다. 하나님이 보여준 규율과 계명대로 살아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엄격한 자기구속의 원리를 갖춘 종말론적 메시아주의가 삶과 죽음을 품고 있는 믿음의 신앙체계인 셈이다. 

종교적 신념이 현실정치 속에서 드러난 희귀한 사례인 이스라엘의 건국사는 메시아주의가 관념의 소산이 아님을 대변한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은 국가 창설을 둘러싼 중동의 이해충돌로 1973년까지 4차례의 주요 전쟁을 겪었고, 그 이후에도 9차례의 분쟁이 발발을 이겨내야 했다. 

세계 대전을 겪으며 서구 지성사는 사상적 광풍을 거친다. 정치 이념과 결합한 신학적 통찰은 정치신학으로 재탄생하여 진보와 보수 간 혈투에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神을 부정했던 진보주의마저 니힐리즘(허무주의)으로 몰락을 재촉하자고 촉구했을 정도다(벤야민, 신학정치 단편). 

영지주의적인 종말론을 전유했던 벤야민類의 동시대 사상가들이 맑스적 혁명의 대안으로 찾은 것이 ‘약한 메시아주의’라면 이에 대한 법리적 반동의 총아(寵兒)가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로 나타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현세를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중간기(interim)으로 규정했다(Schmitt, 정치신학, 1922).

적 그리스도의 활약을 막기 위해서 카테콘(Katechon)이란 이항 대립적 구조가 필요했다. 메시아의 구원이 도래하기까지 지상에서 치러야 할 내전(內戰)의 관리를 맡기자는 것이 슈미트 정치신학의 요체다. 세속적 정치투쟁에 영적 초월성이 개입되는 단서다. 그는 이를 보수의 사명으로 불렀다.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 벤야민과 슈미트 간 논쟁이 실은 상호 무관하지 않다. 뜻밖에도 메시아 사상이 키워드로 작동한다. 메시야가 다스리는 세계가 ‘유토피아’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속의 정치도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여전히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청렴한 관리자’가 되겠다는 호소다. 

역설적이게도 지상에서 구원을 성취한 이스라엘은 여전히 강림하실 메시아를 기다린다. 그들을 독립시켜준 역사 속에서 일하신 메시아를 놓치고 있다. 기다림은 현재를 비어있는 시간으로 만들 뿐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그 ‘비어있음’을 국가의 탄생으로 채워 넣은 사건인데 말이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돼 버린 ‘시오니즘’에게 오늘날 중동분쟁의 총책임을 물릴수는 없다. 그것은 ‘시오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의 책임이다. 인간의 잘못 때문에 메시아 사상이 틀린 것이라고 흠을 낼 수는 없는 이치이다. 

메시아 사상은 거대 담론구조 안에 갇혀 있지 않다. 현대 이스라엘의 실존성은 이념으로서 메시아주의의 구현이 아니다. 그들이 만난 메시아, 다시 만나야 할 메시아의 그림자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일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만개하는 법이다.

그 말씀의 ‘현재성’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며 종말론에 대한 긍정적인 열린 자세로 나아가는 증거가 된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은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메시아는 역사 속에 이미 와 있다.

 

김효진 박사(중앙일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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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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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우 2016-07-30 17:37:28

    시오니즘과 메시야 사상을 국제정치사와 연결한 인상적인 통전적 글이다. 짧고 힘있는 문장으로 입체적인 글쓰기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 필자의 신앙관을 현실 국제정치에 접목하여 자신의 통찰을 개진한 것으로 읽히는데, 연재 중인 교회개혁 담론투쟁 시리즈에 먼저 실린 글들과 시선과 입장은 다른 것 같다. 내부의 좋은 토론과 담론을 기대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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